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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과 녹색당] 산촌으로 숨어들어간 박혜령씨, 반핵운동가 되다
 
돈을 벌기 위해서, 남보다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사에 지쳐, ‘우리만의 시계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야겠다’며 산골로 들어간 부부가 있었다. 두 사람은 스트레스로 인해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며 딸과 함께 조용히, 느리게 살고자 마음 먹었다. 그러나 9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부부는, 인적이 드문 이 시골마을에 세상의 모든 문제가 집결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정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채 갖은 편법으로 개발사업들을 밀어 부쳤다. 산림이 훼손되고 물이 오염되었다.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농촌은 피폐해졌고, 농민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항생제로 키운 소와 제초제 뿌려 수확한 감자를 내다 팔았다. 시골아이들 역시 입시경쟁에 내밀려 자정이 넘도록 학교와 학원에 잡혀있었다.
 
“이윤 추구의 논리가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아주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게 의미가 없구나,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경북 영덕군 산촌에서 TV도 보지 않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박혜령씨는 이렇게 하여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일에 나서게 되었다.
 
개발로 몸살 앓는 시골지역, 이번엔 핵발전소?
 

▲ 박혜령 영덕핵발전소 반대위원회 집행위원장  © 일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도시의 과도한 에너지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덕 지역에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될 거란 소식이었다.
 
“공식적인 이야기는 없었어요. 남편이 이장을 맡고 있는데, 이장회의에서도 얘기가 없었다고 하고요. 영덕군청 홈페이지에 여론광장이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올 초에 주민 한 분이 의회에서 핵발전소 유치 신청 동의안이 들어와서 군수가 유치 신청을 했다고 글을 올려놓아서 알게 되었어요.”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2022년까지 고리, 울진, 월성에 12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예정에 더하여, 신규 원전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올해 초 경북 영덕군과 울진군, 그리고 강원 삼척시 3개 지역에서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때만 해도 박혜령씨는 지역 주민들의 여론이 핵발전소를 들여오지 못하게 막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덕 지역은 2005년에 핵 폐기장 반대운동이 활발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조용한 거예요. 핵발전소 들어온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석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듣는 척을 안 해요. 답답해하던 차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거예요. 그런데도 움직임이 없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같은 생각 가진 사람들이 만나야겠다 했어요.”
 
이렇게 해서 모인 사람이 열 명 남짓. “관공서 공무원들과 이해관계가 전혀 얽히지 않은 사람들만” 모였고, 그나마도 드러내놓고 핵발전소 유치 반대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었다.
 
박혜령씨는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 투쟁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영덕뿐 아니라 울진, 포항, 경주 등 동해안 일대 ‘원자력 클러스터’ 유치 움직임에 공동 대응하는 한편, 대구와 서울 등 대도시를 오가면서 반핵 운동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아쉬워요. 핵발전소가 영덕, 울진, 경주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잖아요. 전체의 이야기이고, 공존의 문제인데 서울에 사는 분들, 대도시에 있는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안 한다는 것이죠. 대구에 나가 시민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에너지 어차피 우리가 써야 하니까 (원자력발전소 운영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해요.”
 
박혜령씨는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앞도 뒤도 없는 생각”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가정 경제를 살아도, 지갑 안에 100원이 있다고 해봐요. 그럼 100원 안에서 쓰겠지요. 전기가 100이 있으면 100 안에서 써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계산을 아무도 하지 않고, 내가 100을 가지고 있는지 200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식으로 100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없는 거죠. 그런 부분을 이때까지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은 막연하게 ‘지금 쓰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이제라도 우리가 어떻게 전기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지금 얼만큼 쓸 수 있으며, 앞으로는 얼만큼 쓸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 지역에서 ‘반핵’ 목소리를 크게 내어주어야 하는 또 다른 큰 이유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들임에도, 시골주민들은 관공서가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기 때문이다.
 
“지역 여론은 ‘유치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죠. 그런데 나서서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농사를 짓건 장사를 하건 관공서와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자기가 속한 작목반이나 단체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지원비 같은 게 끊긴다는 거예요. 게다가 시골은 점점 고령화가 심해지고 남은 인구가 적어서, 개발을 반대해도 소수의 이야기고 힘이 없어요.”
 
녹색당, 우리 사회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 올해 6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영덕 강구항을 방문해, 반핵운동에 힘을 실었다.  ©사진-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 투쟁위원회

 
박혜령씨는 지역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녹색당’을 통해 찾고 있다. 녹색당은 ‘탈핵’을 전면 내세울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풀뿌리 민주주의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집중적인 기존의 정치에 대해 그 한계를 많이 느낀 분들이 녹색당을 시작하고 있잖아요. 각 지역의 녹색당이 만들어져 하나하나 다 존중되는 속에서, 전체의 녹색당이 형성되는 거죠. 중앙 대도시에 예속되어 있는 변두리가 아니라, 그 지역마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해요. 저는 그 전환점을 녹색당이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녹색당에 “농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자신처럼 귀농을 한 사람들, 여성들, 그리고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을 정치로 끌어내는 다리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지금까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남성 위주로, 권력 지향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소한 일 처리 방식도 맞지 않고 정서도 안 맞았죠. 그래서 아예 모든 걸 닫고 10년 사이 더 꽁꽁 숨었어요. 녹색당이 당의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기존의 정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행보에 따라 지금 숨어있는 분들의 힘이 어느 순간 드러나게 될 거라고 봅니다.”
 
박혜령씨는 지금 힘들더라도 “지속적으로 의지를 꺾지 않고 이야기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모일 것”이고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힘을 발휘하여 ‘3%’(비례대표 의석을 획득할 수 있는 지지도, 소수정당의 정치적 역량을 가늠하는 기준)를 채울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솔직히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더 이상은 답이 없다’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조이여울 기자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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