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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추은혜의 페미니즘 책장(1)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일상의 반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20대 여성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고민과 그 해답을 찾아가는 페미니즘 책 여행이 시작됩니다. 폭력의 시대에 평등과 자유의 꿈을 꾸는 여성들의 생각과 삶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필자 소개-추은혜.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에 더 익숙하고, 돈이 되는 것보다 돈 안 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20대 여성. 스무 살 언저리에 들었던 ‘radical한 사고의 전환’을 마음에 담아두고, 이 땅의 멋진 언니들을 보며 꿈꾸는 걸 낙으로 삼고 있다. 현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젠더학을 공부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언젠가의 서른을 꿈꾸면서 살았다, 나는. 나의 이십대는 불안하고, 때로는 지겨웠다. 머물렀으면 하는 시점에 달아나고 있었고, 벗어났으면 하는 시점에는 붙박인 채 어느 곳으로도 떠나지 않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스무 살 이후에 만난 수많은 이 땅의 멋있는 여성주의자 언니들은 가슴이 두근두근 하고 머리가 싸해질 정도의 신선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들은 혁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성주의는 근본적인(radical) 사고의 전환을 요청했다.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었고,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다는 선언들이 거짓임을 일깨운 외침이었다.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울만한 또 한명의 멋진 언니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도 그런 언니들과의 만남 이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성차별에 반대하는, 여성이 벌이는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들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내 인생은 이제 전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페미니스트이자, 작가이며 편집자이다. 그녀 역시 68혁명의 열기가 전 세계를 감싸던 무렵 여성운동에 뛰어들었고, 미국 페미니즘의 제2물결을 선도한 주역이기도 하다. 그녀는 주류 사회의 숱한 냉소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초의 여성운동 잡지 「미즈Ms.」를 창간하고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를 공동설립하기도 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변하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일상의 반란>(Outrageous Acts and Everyday Rebellions)(2002, 현실문화연구)은 그녀가 수십 년간 여성운동을 하면서 써 왔던 글들의 모음집이다. 그녀가 어떻게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는지, 운동을 시작했던 초기의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들까지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여성운동에 대한 경험까지 세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중 ‘왜 젊은 여성이 더 보수적인가’라는 꼭지는 이 사회의 젊은 여성군에 속해있는 나를 비롯한 나의 친구들에게 ‘그녀도 그랬구나’와 같은 일말의 위안을 주었다. 더불어 새삼 내가 갇혀 있는 잠재적인 인식의 벽을 느끼게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내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나의 대학시절은 불안과 보수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날 부양해줄 수 있는 부잣집 남자를 찾으려 할 때도 그랬고 급진적인 남자에게 내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 줄 때도 그랬다. 남자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어른답게 그리고 동시에 여자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갈팡질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젊은 시절에는 용감하고 늙으면 겁 많은 보수주의자가 된다고 믿었고, 나만이 별종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의 반란, 133쪽)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늘 함께 들었던 불안감은 일종의 인지부조화에서 기인했다. 가령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을 꿈꾸면서 페미니즘의 주장들과 선언들을 동경하면서도 나 또한 그것이 내 삶의 실질적인 영역으로 들어오는 데는 여전히 머뭇거려졌던 것이다.
 
학술적인 글쓰기가 아닌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기존의 가부장제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말한다거나, 사소하게는 더 예뻐 보이고 싶은 욕망까지-언니들의 구호와는 동떨어진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페미니스트에 붙는 여러 편견들과 여전히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은 이 사회의 현실에 부딪히면서, ‘진짜’ 페미니스트로 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더불어 남들 하는 대로 소위 ‘정상성’의 울타리 안에 도로 머무르고 싶은 마음도 슬그머니 드는 것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꿈꾸게 된 우리가 전혀 변하지 않은 일상의 현실에 부딪쳐 좌절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면 용감하게 다시 학교에 들어갔는데 매년 학력이 높아지는 여성 실업자군에 속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직장에 다니지만 집안일은 항상 여자의 몫이다. 아이들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만 이 사회의 문호는 아이들에게 일률적인 성역할만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남자와 평등한 관계를 맺고 상호적인 지지와 사랑을 만들어보려 하지만 결국 자신감이나 권력의 불균형이 그것을 가로막는다.” (271쪽)
 
청춘을 수식하는 몇 개의 말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불투명한 미래와 방황. 어쩌면 젊음을 보수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청춘의 불가피한 속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젊음의 시기는 미래를 위한 담보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꿈많던 여성들이 '좋은 사람 만나 빨리 시집이나 가야지'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여성이 이 사회에서 남성과 경쟁해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누군가의 ‘피부양자’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을 낳는다. 때로는 보다 나은 조건의 ‘부양자’를 만나기 위해 젊음을 통째로 소비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나의 안정적인 미래’는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하나의 신화를 체득하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보라
 
여전히 나는 이십대이다. 세상은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것만 같고 스스로도 어딘가 고장 난 것만 같은, 그런 도대체 익숙해 지지 않은 ‘부적응’으로 매일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나는 성차별적 인식에 기반을 둔 기존 교육/사회화의 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리고 끊임없이 그것이 온당한 가치라고 주장되는 성의 위계질서가 확고한 사회 환경 안에서 매일을 살아나가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일견 당연하게 여겨졌던 그 모든 것들이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서 조금씩 불편하게 여겨지게 된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나는 실상 이 사회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은 애초에 부재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휴머니스트가 아닌 페미니스트이기를 자청하는 까닭은 결국, “삶에 있어서나 언어에 있어서나 평등한 권력이 없는 통합은 위계질서 안에서의 우리의 예전 위치로 곧장 돌아가게 만(91쪽)"들기 때문이다. 한 쪽 성에 무게의 중심이 여전히 쏠려 있는 이러한 비대칭의 사회 속에서 휴머니스트가 되기에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멋있는 언니들의 외침처럼, 모든 여성들은 필연적으로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남성 주류의 사회 인식과 페미니스트적 인식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나 같은 'B급' 페미니스트를 포함해서 말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언니의 말처럼, 보수적이지만 해를 거듭해가면서 더욱 용감하고 당당해져 갈 나를 기대해본다.
 
“운동을 하는 동안 우리는 진짜 삶을 위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서 여성운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사의 나선형적 발전 과정을 보지 않아도 우리가 여행한 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현재의 나보다 불완전한 사람이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교훈이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296쪽)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하나의 화폐단위로 환산 가능한 사회에서 젊음이라는 말은 사치라고들 말한다. 언젠가 보았던 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정말 ‘개청춘’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개청춘은 동시에 개(開)청춘이다. 이 시기의 불안과 방황과 혼란은 고통임과 동시에 무한한 변화와 다양성을 시도할 수 있는 열림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보다 더 급진적(radical)이어야만 하고, 더 근본적인(radical) 사고의 전환을 감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추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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