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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연대의 ‘희망버스’가 희망을 주는 이유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7. 12. 16:03
<여성주의 저널 일다> 2차 희망버스를 타다 
 
지금은 ‘2차 희망버스’에서 내린 지 딱 하루가 지나는 때입니다. 40여 시간을 눕지 못한 후유증으로, 집에 도착해서 16시간을 내리 자다가 간신히 깨어 요기를 하고 또다시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전 일어나 바로 노트북 앞에 앉습니다. 여러분과 ‘희망’을 나누고 싶어서지요.

 

▲ 부산 영도조선소 앞. 85호 크레인 위에서 김진숙씨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6개월 넘게 고공시위를 하고 있다.   ©이충열

 
어느 날 신문에서 우연히 “희망버스”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고, 그 ‘희망’이라는 말에 이끌려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곧 ‘한진중공업’이라는 기업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알게 되었고,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고자 6개월이나 타워크레인 위에서 고공시위를 하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란 이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논리만 앞세운 채, 사측은 어떤 책임도 나누지 않고서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가장 약한 노동자들이 그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상황. 해고노동자들의 편에서 절규에 가깝게 외치고 있는 김진숙씨의 연설과 글을 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달 12일, 김진숙씨와 뜻을 같이하는 ‘1차 희망버스’가 부산 영도조선소를 향했습니다. 연대의 힘을 받고 “살아서 내려가겠다”는 김진숙씨의 뜻을 접하고, 이 귀한 사람을 살려야겠단 생각만으로 ‘2차 희망버스’에 탑승 신청을 했습니다.
 
우리는 왜 희망버스에 탔나
 
7월 9일. 부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탑승자들은 저마다 왜 ‘희망버스’를 타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학습을 통해서든, 자신의 현장 경험을 통해서든, 참여자들은 자본주의의 욕망만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보며, 이들이 사회에 나가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상처를 받거나 더 큰 외면과 타협의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2011년 7월 9일. 서울 시청 앞에 모인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195대의 희망버스에 탑승했다. © 이충열

 
버스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카페에서 제작한 ‘2차 희망버스’ 자료집을 받아보았습니다. 1991년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죽음에 이어 2003년 김주익 노조위원장, 그리고 곽재규 조합원의 죽음이 모두 한진중공업의 횡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한 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그리고 자본의 논리에만 충실한 ‘개발의 이기’가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겠지요. 오직 ‘부자’의 편인 대한민국 정부와, ‘부자’를 욕하면서도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함께 만든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안들에 대한 저의 무관심도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김진숙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본 동영상에서, 김진숙씨는 셀프 카메라로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85호 크레인의 조종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은 2003년 한진중공업이 최종 정리해고 대상 노동자 명단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날,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 김주익씨가 129일 간의 농성 끝에 목을 매달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김진숙씨는 그 작은 공간에서 185일 동안 투쟁하며 화분을 키우고, 트위터로 세상과 소통해왔습니다. (경찰이 전력 공급을 막고, 스마트폰 배터리 공급을 막아버리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연과 함께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그 ‘여유’와 내공 앞에서 저는 용서를 받은 느낌마저 들었지요.
 
필요한 것은 ‘자책하는 것보다 희망을 품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김진숙씨도 앞서 세상을 떠난 분들과 달리,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이 여성적인 힘이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응원하러 가는 길, 오히려 힘을 받으면서 빗속을 달려 6시간 여 만에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최루액 조준 살포…누구를 대변하는 정부인가?
 

▲ 인도와 차도를 모두 가로막은 경찰과 맨몸으로 대치 중인 시민들. 경찰은 이날 최루액을 조준 살포하고, 물대포를 쏘고, 시위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 이충열

 
부산역 광장에서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우비와 우산을 쓴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수의 경찰들도 볼 수 있었지요.
 
2시간 여 빗속을 걸어 한진중공업이 있는 봉래동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부당한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전국에서 온 195대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저는, 김진숙씨를 만나기는커녕 높은 차벽과 위압적인 불빛, 그리고 ‘물대포를 쏘겠다’는 경찰의 안내방송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차량이 통제된 거리에 서있었을 뿐인데도 이미 불법이 되어 있었지요. 희망을 품고 달려간 사람들의 수만큼 무장된 경찰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경찰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대한민국 정부는 누구를 대변하는 정부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로는 차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인도는 경찰이 방패로 막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길을 뚫고 가기 위해 맨몸으로 무장한 경찰과 맞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곧 최루액이 뿌려졌지요. 살충제처럼 된 스프레이 최루액은 먼 거리까지 조준해서 맞출 수 있었습니다. 너무 많이 뿌려대서 구호만 외치고 있는 저까지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시민들은 최루액의 고통과 원통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물이 필요하다고 외쳐댔고, 뒤에 있던 시민들은 물을 앞으로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되었을까요? 내리치는 비와 뿌려지는 최루액, 절규 담긴 구호와 냉정한 안내방송이 뒤엉킨 생지옥 속에서, 경찰들은 차벽 위에 올라 시민들을 계속 채증하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시민이 차벽을 두드리자 최루액으로 쏘아 맞췄습니다. 경찰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최루액으로 맞추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눈에 최루액을 맞아, 시민들이 옮겨다 준 물로 씻어냈는데 정말 무섭고 아팠습니다. 함께 있던 친구는 우비가 뜯어져 최루액을 맞은 곳에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앞쪽에 있던 시민들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고, 아마 뒤쪽에 있던 시민들은 물을 사다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긴 대치 후, 저는 지쳐서 근처 병원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뒤쪽은 가족 단위로 오거나 연세 있으신 분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계셔서 그나마 안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집에서 ‘칼라티비’를 보고 있던 친구가 위급한 상황이라며 전화를 주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경찰들은 시민들이 차벽을 넘기 위해서 쌓은 벽을 막으려고 물 대포를 쏘면서 치고 나와, 시민들을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희망버스를 탔다는 이유로 이 많은 시민들이 파란 물로 낙인 찍히고, 다치고, 최루액으로 숨쉬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운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잘못된 상황을, 이 끔찍한 현장을 누가 알까요? 방송 3사에서 이 상황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인터넷에도 별 기사가 없었습니다. 서울에 가면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이 이 상황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연대’할 수 있는, 연대할 수밖에 없는
 

▲ 7월 10일 오전 11시 해운대경찰서 앞. 강제연행에 대해 항의하며 집회를 하는 대학생들 © 이충열

 
새벽 내내 경찰병력과 대치하며 시민들은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 지친 몸을 쉬었습니다. 이 때 따뜻한 희망이 전달되었습니다. 감자를 삶아 커다란 고무 통에 담아 나눠주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커다란 연잎으로 싼 맛있는 밥을 나눠주었습니다. 가스버너를 가지고 와서 국밥을 데워 나눠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가지고 온 과자를 나누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이뤄진 ‘나눔’이라는 것에 뭉클했습니다.
 
긴 새벽을 견디고 드디어 아침이 되어 ‘기자회견’을 가졌고 작은 문화제도 열렸습니다. 경찰은 끝내 차벽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희망버스 시민들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나서도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연행당한 사람들이 있는 다섯 개 경찰서로 항의방문을 가기로 했습니다. 저와 함께 있던 대학생모임은 꽤 멀리 있는 해운대경찰서에 갔습니다. 부산 시민들이 먼저 와서 간식을 나눠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유 발언과 구호를 외치며, 대표자 접견을 청했습니다.
 
땡볕 아래 집회를 마치고 한진중공업 앞으로 다시 돌아오니, 김진숙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전화기 넘어 김진숙씨은 또다시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2차 희망버스’를 제안하신 송경동 시인은 눈물을 삼키며 ‘3차 희망버스’를 제안했고, 저는 마음 속으로 또 신청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전에는 ‘단결’을 외쳤다면, 이제는 ‘연대’를 외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 다수는 개인 시민 자격으로 온 것이라고 합니다. 문화제에서 구호도 제각각, 행렬도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그 산만함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각자의 목소리와 각자의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연대’할 수 있는, 연대할 수밖에 없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망버스’를 타고 가서 김진숙씨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주고 싶었는데, 거꾸로 제가 힘을 받고 희망을 배우고 온 것 같습니다. 부디 ‘3차 희망버스’가 꾸려지기 전에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방침이 철회되기를 바랍니다. 김진숙씨가 건강하게 살아서, 제 발로 내려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저는 또 ‘3차 희망버스’를 탈 것입니다. 저와 함께 희망을 배우러 가지 않으시겠어요?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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