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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고윤정의 멘토 찾기(3) 문화인류학자 송제숙 
 
일촌과 이웃이 난무하는 시대다. 자기 운동화 꼭지에 내려앉은 똥파리 사진까지 페이스북으로 소중히 공유하고, 데이트 외식 메뉴와 헤어스타일까지 꼼꼼히 카톡으로 지도 받을 만큼 우리는 ‘친구’를 쉽게 만나고 많이 나누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외로운 걸까.
 
소소한 수다까지는 흥겹게 맞장구치나 뭔가 암울하고 의미심장한 글에는 답글 달기 망설여진다. 타인의 부정적 에너지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무슨 일 있어?’ 혹은 ‘힘 내’ 말고는 뭐라고 해야 할지 적절한 어휘를 찾지 못한다. 반대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에게 ‘잘 할 수 있어’, ‘화이팅’ 외 진심어린 리액션을 전달하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과도한 네트워크에 갇혀서 인적 자본으로써 친구 쌓기에는 능해지지만, ‘위로’와 ‘격려’의 소통 방식에는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A 아니면 B’가 아니에요. ‘A와 B’도 있어요.”

 

▲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인류학자 송제숙씨.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2006년쯤 그녀의 비혼 여성 주거 문제 연구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당시 대학과 취업으로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던 차였다. 독립이라 할 만큼 거창할 것은 없었지만 여자 혼자 살면서 세상의 각박함은 익히 느끼고 있었기에 쉽게 인터뷰에 응했다.
 
술 취한 아저씨가 자기 집인 줄 알고 ‘문 열라’ 난동을 부려도 고스란히 감내해야하는 주거환경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인터뷰는 내 삶의 깊숙한 고민꺼리까지 토해낼 정도로 진지해져갔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2000년대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현황, 교육‧복지‧정치 전반의 문제의식에 걸쳐 세상이 좀 더 합리적이 될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함께했다.
 
당시 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쟁 사회’에서도 ‘비경쟁 사회’에도 끼지 못한 채 배회하는 내 모습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국가의 녹을 먹으며 일하고 있지만, 시민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신념대로 살고는 있었다. 하지만 ‘최저 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시민단체 친구들’과 ‘좋은 아파트에 살며 안정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집단’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것 같았다. 한쪽은 미안하면서도 안타깝고 한쪽은 부러우면서도 치사하고.
 
“윤정씨는 세대와 세대, 문화와 문화를 잘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겠군요.”
 
그녀가 나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연결자? 단 한 번도 연결자라는 역할이 있을 꺼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A 아니면 B라는 공식뿐이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A&B의 영역을 찾아줬다. 그녀는 그 이후 내 삶에 어떠한 반향이 일게 될 것인지 알았던 것일까?
 
자고로 사회복지는 사람을 향한 실천학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한 분야만 줄기차게 파보는 근성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학문을 이해하고 접목해보는 연결 활동 역시 너무나 중요하다. 그녀의 조언을 통해 나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올해 초 부산에서 난다 논다 하는 사람들과 문화예술 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랬다. 신나게 놀지도, 멍하니 살지도 못하는 나는 ‘난 뭘 잘 할 수 있지?’ 라고 되물으며 의기소침해 했다. 그 때 그녀는 “사회문화적 외교관”의 필요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교육, 복지, 문화, 철학 등의 다 영역을 내 식대로 융합하고 소화시켜나가며 미약하나마 각 분야와 영역 간 외교관으로써 자질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할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선택들은 여전히 비판을 받기일쑤다. 어떻게 보면 이것 아니면 저것을 택하라는 강박 때문에 세대는 더욱 분열되고 분야별 괴리감은 더욱 커졌을 수도 있다. 세대를 이어주고 분야를 엮어주는 연결자가 있다면 연대는 더욱 쉬워질 수 있겠다는 것을 그녀의 구체적인 위로와 격려 속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지지를 보내는 방식은 항상 이렇다. 대단하다, 멋지다, 매력적이다라는 형용사만 가득 찬 칭찬보다 “~점이 당신에게 있군요!, ~게 실천하는 능력이 있어요!” 라며 갖고 있는 강점을 스스로 발견케 한다. 내 고민을 내 안에만 가두지 않고 객관화 시켜주는 그녀의 지지는 그래서 항상 나를 한 뼘 더 성장시켜준다.
 
처음에는 그녀가 문화인류학자라서, 인터뷰에 능해서 그런가 생각 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연구실천가로 활동하면서 한국과 북미 유럽 문화를 두루 아우르는 직관력을 키워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 나누는 위로로 친구가 되다
 

▲ 그녀와 나. 그녀와의 대화는 항상 즐겁고 신난다.    

 
자신을 의무적으로 상세히 알려야 하는 자리가 아니고서는 그녀는 항상 자신을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송제숙’으로 소개한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도 한참 후에 제 3자에게서 그녀가 명문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라는 것을 알았다.
 
하물며 그녀는 내게 단 한 차례도 말을 놓거나 훈계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며 흥미 있게 받아 주는 터라 이야기에 빠져 예상 시간을 훌쩍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녀와의 대화는 항상 즐겁고 신난다.
 
내가 아는 많은 교수 분들은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사석에서도 꼬박 ‘교수님’이셔서, 같이 대화라도 나눌 때면 난 항상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실천가일 뿐인 경우가 태반이다. 아마 그녀가 외국 명문대 교수라고 미리 소개 했더라면 나는 내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채 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일 이년 마다 부산에 와서 한국 사회 여러 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지켜보면 고위 책임자보다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중에서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노력과 처우 개선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명한다.
 
우리나라 학문 토양은 대체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국가 정책이나 공공 서비스를 실천하는 영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가치는 중요하다. 그런데도 이들의 노력과 처우를 언급하면 정치적 견해에 따른 ‘좌파 연구’로 몰이해 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녀가 대학 졸업 후 여성 노숙자 관련 연구를 했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수년이 지났음에도 그때 느낀 불합리와 가슴 아픔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를 만난 내 주변 여성 노동자들은 “만나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간 건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가슴 찡한 ‘위로’를 받은 것 같다”고.
 
위로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충전 효과 같은 것이 아닐까. 자동차가 방전 됐을 때 타인의 차 배터리와 연결해 에너지를 얻는 것처럼, 힘을 내보라는 조언도 좋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타인과 나누고자 할 때 회복이 더 빠른 것 같다.
 
그녀를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여성 노동자들의 인사를 여러 곳에서 받았다. ‘잘하고 있고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지지를 받아 기뻤다는. 그러나 무엇보다 ‘연구 활동을 통해서라도 꾸준히 힘을 보태겠다’는 진심어린 마음 때문에 든든한 친구를 얻은 기분이랬다.

나에게도 그녀는 든든한 사람이다. 올해 초 부산 교육복지사 해고 문제로 동분서주 할 때 급한 마음에 캐나다에 계신 송제숙 선생님께도 관련 소식을 전했다. 어떤 활동을 해 달라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주변 학자와 국내 언론사는 물론 나와는 말도 통하지 않을 아시아 담당 뉴욕타임즈 기자에게까지 시급히 알려 여러 곳에 보도 기사가 나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나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연구자로서도 실천가로서도 의미 있다고 격려하며 언제든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그녀. 이보다 더 고마운 백그라운드가 있을까.
 
내가 선 자리, 그림을 그리게 되다
 

▲ 두서없이 조각조각 뱉어 놓은 내 오감과 영감의 구슬을 꿰고 있는 희미한 선을 그녀는 용케도 잘 찾아 준다.   

 
내 20대 시절에 대한 후회 중 하나가 외국 생활을 못해 본 것이다. 당시 내가 발 딛고 있는  주변의 한국사회는 유치하고 구질 했다.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나댄다’는 것으로, 각종 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밤 길 조심하라’는 협박으로 응수 받던 시기였다. 부모님 얼굴과 영어에 대한 무한 울렁증, 불특정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침 퉤 뱉고 어느 나라 건 떠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고 마음이 조금씩 바뀌었다. 한국 사회를 1인칭과 3인칭 시점으로 고루 보게 한다.
 
청년 실업 문제를 이야기 하다가 융통성 있는 창업 지원이 필요하다 했더니 그녀는 청년의 창발적인 아이디어를 값싸게 사서 자본 증식을 하는 고도 지능형 금융자본 흐름에 대해 알려줬다. 아동 학대에 대한 대응 체계의 빈약함에 대해 토로 하면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통합 접근 형태의 가능성을 제기해준다. 그녀와 있다 보면 좀 더 크게, 좀 더 깊이 보는 시선을 가지게 된다.
 
“선생님이랑 이야기 하다 보면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라고 한 적이 있다. “MBTI 성격 유형 중 N 기질을 타고 직관이 좀 더 발달되었나 보다”며 그녀는 웃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일을 벌려 놓기 일쑤”라며 웃었다. 두서없이 조각조각 뱉어 놓은 내 오감과 영감의 구슬을 꿰고 있는 희미한 선을 그녀는 용케도 잘 찾아 준다.
 
그녀는 내게 부산은 참 멋있는 곳이라고 했다. 반겨주는 사람들 멋진 여성들이 많은 부산에서 살아가고 실천할 나를 응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대 외국행을 원한 것은 한국 사회에 대한 대안 없는 비판이었을 것이다. 이 사회가 날 받아주기에 그릇이 작다는 막된 자신감이었을 테다. 그 상태로 떠났다면 서양 문화가 대세이고 진리인양 경도되었거나 내 그릇 크기만 확인한 채 패배감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애국의 대상으로도 비난의 대상으로도 아닌, 그냥 ‘한국사회’를 보고 있다. 그녀의 조언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지구적으로 생각하며 천천히 튼튼한 줄로 구슬을 꿰어가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녀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 진다. 나누고 싶은 것들도 샘솟는다. 발전된 내 사고, 실천 경험들, 좋은 책, 멋진 주변 사람들, 그녀의 변화된 생활 이야기 등등.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그녀와의 만남과 건강을 기원하며 오늘 하루도 아자! (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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