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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고리 핵발전소를 멈춰라” 

[필자 정수희씨는 ‘에너지정의행동’(energyjustice.kr) 부산지역 활동가입니다. 2004년부터 고리 핵발전소 문제를 제기해 온 정수희씨로부터 원자력발전소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갈등과 피해,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들어봅니다.]


▲ 4월 23일 고리 핵발전소 1호기 폐쇄와 고리 핵단지화를 반대하는 집회 ©에너지정의행동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한 달 뒤, 부산에서는 고리1호기 폐쇄와 고리 핵단지화를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집회 예정 시각인 오후 두시가 가까워오자,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고리핵발전소 근처 작은 어촌 마을에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조금 늦게 출발한 사람들까지 500여명의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핵발전소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고리 핵발전소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핵발전소가 들어섰고, 가장 많은 핵발전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리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고리핵발전소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나기에 제가 굉장히 무력해져 있었습니다.
 
고리에 핵발전소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수명이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동되고 있는 고리1호기를 과연 폐쇄할 수 있을까? 뜻있는 여러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모색하였지만, 이를 더 큰 사회적 문제로 확장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는 늘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집회를 준비하면서도 염려가 많았는데, 걱정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고리로 달려와 주었던 것입니다. 고맙고 뿌듯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또 다른 긴장과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날 집회에는 고리지역에 사는 마을 주민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들의 부재를 이해하고,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한다는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형평성에 대한 것입니다. 서울과 부산, 부산과 고리사이 발생하는 ‘불평등’ 말입니다.
 
전력량 절반 만들게 될 고리 월성 울진 영광 핵발전소

▲ 우리나라 핵발전소 지역과 현황      
 
일본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일어나기 전, 부산사람들과 매번 이야기한 것은 “우리는 지금 핵발전소 30Km 이내에 살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부산광역시 안에 핵발전소가 5기나 가동 중이고, 3기가 건설 중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민들의 핵발전소에 대한 긴장감이나 관심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습니다. 가끔 반핵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을 만나면, 핵발전소의 존재에 대해 별 문제를 못 느끼거나, 심지어 8기의 핵발전소가 부산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잠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총 28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에 있습니다. 올해 초에 확정된 제5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24년까지 14기를 더 건설할 예정입니다. 현재 전기 생산량에서 핵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31%인데, 2024년이 되면 48%가 될 겁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전체 국민이 사용하는 전기의 절반을 고리와 월성, 울진, 영광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만들어 낼 계획입니다.
 
사람들은 값싸고 깨끗하고 편리한 전기를 그냥 쓰기만 할뿐, 이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부산만 해도 그렇습니다. 고리핵발전소는 부산광역시에 위치해 있지만, 사실 부산에 있지는 않습니다. 부산시와 울산시의 경계에 있는데, 부산 쪽에서나 울산 쪽에서 각기 끄트머리에 있다 보니 시야를 조금만 좁히면 보이지 않거나 사라져 버립니다. 하물며 저 멀리 서울에서는 더하지 않겠어요?
 
핵발전소는 ‘사고가 나면 위험’하지 ‘정상적으로 가동될 때는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핵발전소가 우리 동네 바로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다면, 핵발전소의 위험 따위야 간단히 망상 따위로 치부해버리면 될 일입니다.
 
부산이 그랬습니다. 후쿠시마에서 1기가 아닌 무려 4기의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부산의 고리1호기에 이어 4호기마저 멈추는 사고가 나면서, 고리발전소 가동 이래 처음으로 부산시장이 고리본부를 방문하였습니다. 고리 핵발전소 문제에 대한 시장님의 ‘첫 개입’이었습니다. 부산시는 그동안 고리핵발전소 문제에 한 번도 개입한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부산의 시민환경단체가 많은 지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정부와 핵산업계, 막대한 비용으로 ‘원자력 안전신화’ 만들어

▲5월 진행된 한국원자력문화재단 20회 원자력공모전 내용. 출처: 한국원자력문화재단 홈페이지
 
고리핵발전소에서 주민들 몰래 마을에 핵폐기물을 가져다 묻었을 때도, 핵폐기장이 들어선다고 온 동네가 몇 달간 발칵 뒤집혔을 때도, 신(新)고리원전이라는 웃긴 이름으로 발전소가 8개로 늘어날 때도, 수명이 다한 고리1호기를 계속 가동한다 했을 때도, 부산시는 권한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을 지켰습니다. 시민들에게 고리핵발전소의 존재와 사고 시 대처 방안에 대해 알린 일도 없었습니다.
 
물론 핵문제에 이렇게 무감한 것이 어찌 부산시만의 탓이겠습니까? 정부는 1990년 이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핵에너지가 안전하고, 깨끗하고, 경제적인 에너지라는 ‘찬핵 교육’을 시행해왔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원자력문화재단’을 통해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광고와 각종 경연대회 등을 통해 반핵 여론을 무마시키고 찬핵 여론을 형성해 왔습니다. 학생시절 바닷가 근처에 있는 어느 핵발전소를 단체로 견학한 경험이 있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왜 1990년을 기점으로 나타났을까요?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말 핵발전소 추가 건설과 핵폐기장 건설 문제로 ‘반핵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정부가 핵시설 유치를 추진했던 모든 지역에서 주민들은 치열한 싸움을 벌였는데요. 여기에 환경운동이 가세를 하면서 반핵운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당시 핵산업에 대한 저항이 가히 전 국민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정부가 전국 대부분의 지역을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건설 후보지로 찌르고 다닌 탓도 있지만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로 드러난 핵 위험의 진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반핵 의식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와 핵산업계는 매년 국민의식을 조사하여 추이를 살필만큼 국민 여론 돌리기에 많은 예산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이제와 같은 ‘국민적 무관심’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고리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모의실험 결과 ‘참혹’ 

▲우리나라 핵발전소 주변 인구 ©에너지정의행동
 
그러다 이번에 일본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강한 지진이 그렇게 자주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기술적 자부심과 신뢰로 세계 3위의 핵발전 강국을 일궈낸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통계치를 벗어난 지진이 발생하자 기술자들은 발전소 통제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한 지역에서 6기의 핵발전소 중 4기가 폭발하는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자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이 내려졌고, 이는 차츰 확대되어 발전소 반경 20Km와 30Km까지 주민들에게 소개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체르노빌 사고를 떠올려 보면 1986년 인근 30Km 이내 주민들에게 소개 명령이 내려져, 25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주민복귀가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토양을 비롯한 주변 환경이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됐기 때문입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방사능 낙진이 떨어지는 지역이나 정도가 달라서, 소개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심각한 방사능 오염이 확인돼 뒤늦게 주민들을 대피시키기도 했습니다. 모유에서 세슘이 검출되고, 240Km 떨어진 도쿄에서도 방사능이 검출 되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괜찮지 않겠냐고요? 방사능에 직접 피폭을 당하진 않았지만, 오염된 사람이나 식품, 생산품 등의 유통을 통해 방사능 위험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방사능 비와 일본 수입식품, 한국산 농산물에서 검출된 방사성 물질에 대한 언론 보도들을 통해 어느 정도 실감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리핵발전소 주변 30Km가 폐쇄된다고 가정했을 경우, 320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현재 이 범위 안에 거주자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 수가 320만 명입니다.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과, 조금 더 벗어난 거리의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더욱 커집니다.
 
<신동아> 5월호에서 고리핵발전소를 비롯하여 월성과 울진, 영광 핵발전소에서 체르노빌 수준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망자 수를 측정한 시뮬레이션을 발표하였는데요. 그에 따르면 고리의 경우,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3천863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10년 이내 병사하는 사람의 수가 3만9천1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수는 월성이나 울진, 영광의 다른 발전소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30배 많습니다. 그만큼 고리핵발전소가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산 4개 구의회 ‘고리1호기 폐쇄’ 결의안 채택했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교훈이 되었는지, 이후에 부산 4곳의 구의회(부산시 남구, 북구, 연제구, 해운대구)에서 고리1호기 폐쇄와 핵단지화 철회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고리핵발전소 주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핵단지화를 통해 시민들이 더욱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계도 명백히 있습니다. 부산의 이 4곳의 구의회 외에 다른 구에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부산시의회에서도 역시 이 문제를 책임 있게 다루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핵발전소 문제에 일개 시,구,군의회가 제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핵발전소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발전소를 지을 당시뿐입니다. 그것도 이해 당사자라는 매우 작은 범위 안에서, 극히 제한된 수준으로 말입니다.
 
다른 핵산업 시설의 건설과 운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자체나 지역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권한과 의지는 정부와 주식회사 한국수력원자력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핵산업과 관련하여 ‘국책산업’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국책산업이란, 국가가 소수의 개인과 공동체에 휘두르는 폭력의 다른 말이 되고 있습니다.
 
구의회나 시의회에서 고리1호기 폐쇄를 결정하더라도, 지금의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무력감을 확인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핵발전소 문제가 우리의 삶과 생활에 굉장히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권력이 우리가 개입하고 제어할 수 없게 만들어놓은 장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정수희)

*일다 녹색연합 동일본지진피해여성지원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잘 가라 한국원자력문화재단- 만들자 자연에너지재단”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캠페인을 통해 ‘청정에너지’, ‘필요악’이라는 거짓된 원자력신화에서 벗어나, 재생가능한 자연에너지로 시스템을 전환하도록 촉구해갈 것입니다.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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