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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트랜스젠더 수감자 위한 정책 나와야 
 
<필자 장서연님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 변호사이며, ‘구금시설 내 트랜스젠더 인권’ 관련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교도소에 갇힌 MTF 트랜스젠더
 
2007년,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정자체로 꾹꾹 눌러쓴 편지. 남성교도소에 갇힌 MTF(남성에서 여성으로) 트랜스젠더 A씨의 편지였다. A씨는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법무부, 여성부, 국가인권위원회. 그러나 A에게 돌아온 대답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교도소는 A씨가 사용하던 여성용 속옷을 반입 금지하고, 호르몬 치료를 해달라는 요구도 무시했다. A씨의 사정을 알게 된 다른 수용자들은 그를 모욕하고 괴롭혔다. A씨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교도소는 A씨를 자살우려자로 분류했을 뿐 처우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였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지고 난 후, ‘성주체성 장애’(GID)라는 진단을 받고 다른 교도소로 이송되었으며, 여성용 속옷 반입이 허가되었다.
 
A씨가 한 인권단체로 보낸 편지로, 그 사연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구금시설에 갇힌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의 심각한 인권 상황이 드러났다. 한국에는 트랜스젠더 수용자를 위한 관련 규정이나 사회적 논의가 전무한 상황이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감옥인권운동을 해온 천주교인권위원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 단체들은 이 사건에 함께 대응하기로 하였다.
 
교도소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소송
 
2009년 8월, A씨가 자살 시도에 이르기까지 고통 속에 방치한 교도소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트랜스젠더인 A씨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성정체성에 적합한 의복 및 적절한 의료적 처우를 제공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다.
 
2010년 10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가 A씨에게 위자료로 3백만 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판결을 하였다. 담당교도관들이 A씨의 자해와 자살시도를 방지하기 위한 감시, 감독을 소홀히 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법원은 교도소가 트랜스젠더인 A씨에 대하여 여성 속옷 반입을 금지하고 적절한 의료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는 원고 측 주장은 기각하였다. A씨가 입소할 당시부터 성주체성 장애를 겪고 있었다거나, 교도소 측에서 A씨가 성주체성 장애를 겪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남자수형자만을 수용하고 있는 교도소에서 여성용 속옷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다른 수용자와의 형평이나 교도소 내 질서 유지 등의 문제가 있어 부득이 거부하게 된 것으로 보이므로 교도소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법원이 A씨의 고통에 대한 교도소의 책임을 일부나마 인정하였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A씨가 트랜스젠더로서 자살 시도를 할만큼 고통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교도소의 책임을 인정하는데 소극적인 점은 아쉽다.
 
트랜스젠더, 의학적인 진단명인 ‘성주체성 장애’는 사회적으로 아직 낯선 개념이다. 비록 A씨가 입소 전에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단을 받은 바는 없지만, 고통을 호소하며 여성용 의복과 호르몬치료 등을 요구하는데도 교도소 측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용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국가기관의 의무를 게을리 한 것이다.
 
결국 A씨가 자살 시도를 한 이후에서야, A씨는 병원에서 성주체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트랜스젠더(성전환자)는 기왕의 호르몬 치료 여부나 성전환수술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과 욕구가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고려되어야 하는데, 1심 법원은 이를 간과하였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외국 사례를 찾아봤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이미 여러 가지 사례와 논쟁들이 있었다. 과거 미국 법원은 수용자들이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주체성 장애는 심각한 의료적 지원이 필요하며, 성주체성 장애자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주도 하에 정신과 진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결하고 있다. 또 만약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 등이 의료적으로 필요하다면, 이러한 의료조치에 대하여 단순히 비용이나 여론 때문에 거절하는 것은 미 연방 수정헌법 제8조의 잔인하고 비정상적인(cruel and unusual) 처벌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하였다.
 
트랜스젠더의 선택권은 “헌법의 보장 대상”
 

▲ 2011년 4월 15일  <구금시설과 트랜스젠더의 인권>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 제공: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1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인 지난 15일, 구금시설에 있는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를 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트랜스젠더의 성정체성 ‘선택’의 자유는 명확하게 ‘헌법에서 보장되는 기본권’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랜스젠더가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 간의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그에 대하여 어떠한 행위(성전환)로 나아감으로써 그 차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그 자체 자신의 인격적 정체성 내지는 성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 자기결정권-> 인격권-> 행복추구권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우리 헌법 제10조의 보호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루인 활동가(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는 “트랜스젠더에게 의료적 조치를 지원하는 것은 구금시설에서 우울증이나 자살 시도와 같은 위험 상황을 예방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내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의료적 요청이나 특혜가 아니라 건강권/의료권 개념에 따른 당연한 권리”라며, “구금시설이 이에 응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의무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을 배려한 영국의 정책

 
필자는 외국 사례를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도 최근 발표된 영국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았다. 올해 3월, 영국 법무부는 트랜스젠더 수용자에 대한 새로운 지침(The Care and Management of Transsexual Prisoners)을 발표했다. 이 정책은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에 대한 의학적 처우, 교도소 내 배치, 개명(호칭), 신체검사, 복장규정, 물품사용, 안전관리 등에 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침에 의하면, 교도소는 성주체성 장애로 진단받은 수용자들에 대해 만약 이들이 수감되지 않았더라면 NHS(영국 공공의료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로부터 받았을 치료와 동등한 치료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 이는 상담, 성전환수술 전후 관리 및 지속적인 호르몬치료를 포함한다. 만약 수용자가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부터 의학적 치료를 받았었고 지속적인 치료를 요구한다면, 교도소 내 성주체성 전문가가 수용자에게 맞는 다른 치료를 권하기 전까지는 이전부터 받던 치료가 지속되어야 한다.
 
또한 수용자가 자신의 신체 일부분이나 성별과 관련 있는 다른 특징들을 바꿈으로써 성전환을 원하거나, 성전환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경우, “평등법 2010”에 의해 보호받는다. 이들이 성전환을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학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성별에 적합한 의복을 입도록 허용되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름과 호칭을 사용할 수 있다. 수용자는 성전환을 이유로 개명신청을 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에는 ‘Mr’ ‘Ms’와 같은 호칭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수용시설에 배치할 때는, 법적으로 성전환이 인정된 수용자들은 법적으로 인정된 성별에 따라 배치된다. 법적으로 성전환이 인정되기 전의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도 다른 수용자들과의 위험요소, 전문가 의견, 수용자 본인이 어디에서 가장 안전함을 느끼는지 여부 등을 고려하여 재배치할 수 있다. 배치문제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법적인 문제이며, 배치를 목적으로 한 신체검사는 금지된다.
 
구금시설 안의 트랜스젠더를 위한 보호규정 마련되길
 
A씨는 출소한 이후,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직장을 구하고, 안정된 생활을 시작하였다. A씨는 자신의 사건을 계기로, 다른 수용자들을 위해 구금시설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보호규정이 마련되길 바란다.
 
한 사회의 인권수준을 가늠하려면 재소자의 인권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재소자의 인권은 쉽게 침해 당하고 억압당하기 쉽다. 재소자 중에서도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유의 제약과 함께 ‘소수자에 대한 이해 부족과 차별’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한국사회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여 왔다.
 
특히 성별이 남성과 여성 ‘양성’으로만 확고하게 구분된 구금시설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수용자의 배치 문제에서부터 의복 문제, 의료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현황이나 실태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구금시설에 수용된 트랜스젠더가 자유의 제약이라는 형벌 이외에 이중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이들의 고통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도 어느 구금시설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트랜스젠더 수용자가 있을 수 있다. 조속히 구금시설에 있는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을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서연 /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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