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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원전수출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대만한국
이제라도 “핵 없는 세상으로!” 결의할 때 

 
<필자 이정필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편집자 주>
 
3월 11일, 일본 대지진 소식을 접했다. 언론은 9.0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지진해일)와 그 영향에 대해 ‘최악’, ‘궤멸’, ‘두절’, ‘사망’, ‘실종’, ‘패닉’이란 표현으로 전했다. 물론 이번 사태가 경제와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다.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 그리고 정신적 공황, 이 모든 것들에 인간적 애도를 금할 수 없으며 조속히 ‘정상’ 상태로 복구되길 바란다.
 
원전은 자국민을 향한 원자폭탄을 품고 있는 것
 
그러나 이 정상상태에 결코 포함돼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핵 발전인데, 순화해서 말하면 원자력발전이다. 사실 엄청난 손실에 대한 걱정 다음 찾아온 불안이 바로 원전에 대한 것이었는데, 결국 비극은 원전 공화국인 일본을 비껴가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일본 주류 언론조차 ‘원전 안전 신화 붕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겠는가.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의 건물이 폭발했고, 현재 3호기도 폭발 소식이 전해지고 있으며 노심용해(melt down)가 진행 중일 가능성도 보도되고 있다. 인근 원전들 역시 크고 작은 비상사태를 겪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전사고 등급 8단계 구분법 중 일본 측은 잠정적으로 4단계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원전 사고의 대명사 격인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 사고(5단계)와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7단계)에 비교하면, 혹자는 낮은 수준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사고가 끝난 게 아니라 진행 중이고, 7.0 이상의 여진이 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더 위험한 우라늄-플루토늄 혼합연료(MOX)를 사용한다는 원자로의 상태도 불안하다.
 
부디 위험 단계가 상승하지 않길 바라지만, 아직까지 모든 것은 불확실하기만 하다. 지진의 규모를 8.8에서 9.0으로 상향조정한 것처럼, 원전 사태도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일본 국민들은 지금 쓰나미 충격에 더해 원전 공포에 빠져있다. 인근 주민들이 정부의 늑장 대응에 비난하고 정치권도 정부의 대응능력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환경단체들도 정보 공개를 주장하는 등 원전을 둘러싼 논란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번 사태는 일차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쓰나미로 인한 냉각시스템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이런 비극을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더 진보된 과학기술로 극복해야 할 문제로 넘기면 될까?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라도 시급히, 철저히  피해대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고, 현재 별 피해 없이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해 보다 엄격한 보호수단을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원자력에서 벗어나는 ‘탈핵’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원자력에 의존하는 에너지정책이 대재앙 예고해
 
▲ 부안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투쟁은 이후 등용마을의 대안에너지를 통한 에너지자립운동으로 이어졌다. © 일다 - 윤정은 기자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는 독일의 생태경제학자 프란츠 알트는 “원자력 정책이 바뀌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대형 원자력 사고가 일어나야 하는가?”라고 경고했다. 역사에서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일본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자력의 대규모 인명 피해와 환경 파괴의 속성 그리고 군사주의, 비밀주의, 권위주의적 요소는 환경단체의 구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교과서에 기록된 대형 사고뿐만 아니라 세계 원전 국가와 지역에서 무려 400개가 넘는 사고들이 발생했다. 54기를 보유한 일본에 쓰나미의 여파로 14기가 가동이 중단됐다고 한다. 가히 자국민을 향해 원자폭탄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주장했던 것처럼, 시한폭탄처럼 “기술적으로 발생 가능한 것은 모두 언제가는 발생한다.”
 
실제 자연재해에 대한 인간과 문명의 취약성은 각종 사회경제적 요소들에 의해 달렸다. 기후변화처럼 자연재해 자체가 인재인 경우도 있고, 인재의 요소가 없는 경우에도 자연재해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2005년), 인도네시아 쓰나미(2004년), 아이티 대지진(2010년) 등 여러 역사적 경험이 증명하듯이 국가 내 그리고 국가 간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이번 대재앙은 안타깝게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지만, 조금 냉정하게 보면 일본 특유의 사회 문화적 배경과 안전망으로 그 피해를 줄이는 대비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30년 동안 완성했다던 방조제도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하지만, 만약 인도네시아나 아이티에서 발생했다면 재산피해는 몰라도 인명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또한 뉴올리언스처럼 빈곤층이 큰 타격을 받은 재해 불평등도 일본이 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이들과 다른 점은 바로 원전이다. 이번 사고의 2막은 자연재해의 파괴력을 증폭시켜버린 일본의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비극의 씨앗에서 잉태됐기 때문이다. 바로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인재가 결합됐기에 가능한 사건 전개이다. 여기에 추가하여 석유․가스라는 전통적인 화석연료도 조연으로 등장했다. 동부 연안에 정유설비가 42% 몰려 있는데, 화재가 나거나 가동이 중단돼 연료 수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원전수출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한국, 성찰의 계기 삼아야
 
그렇다면 일본은 이번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또한 다른 원전 보유국들에 어떤 영향을 줄까. 많은 국가들이 대형사고 발생의 두려움으로 원자력 확대정책에 소극적이었다. 나아가 환경의식을 갖는 유권자의 성장과 친환경적 정권의 등장으로 단계적 폐지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역전돼 소위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원자력 업계의 줄기찬 로비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청정한 대안 에너지로 원자력 띄우기에 나선 것이다.
 
심지어 스리마일 사고 이후 원전 증설을 하지 않았던 미국에서, 하필(?) 올해 2월에 오바마 정부는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경제성장에 열을 올리면서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자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 역시 두고 볼 일이다. 
 
만약 일본이, 아니 피해 지역만이라도 원자력이 아닌 태양과 바람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살아가고 있었다면 이번 공포는 반감됐을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는 도쿄와 수도권의 전력공급 부족 사태로 인한 단전 조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산형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지역이 많아질수록, 해당 지역보다 에너지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대도시에 제공하는 목적으로 건설되는 위험천만한 에너지 시설이 설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 원전에도 불똥이 튄 것 같다. 경주 방폐장 문제가 여전히 논란인 가운데 신규 원전 부지 선정으로 제2의 ‘부안항쟁’을 걱정하는 시점에서, 한국 원전 안전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80기 원전을 수주해 세계 6번째 원전수출국 대열에 합류하고자 한다. 이미 ‘저탄소 녹색성장'의 또 다른 치부인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계약이 그 시작이 됐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일본 방사성 물질 국내 이동에 대해 대비하면서도 국내 원자력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한다.
 
그런데 정작 한국 언론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공식에 참여할 목적으로 순방길에 나선 것에 대해, 석유 개발․생산 MOU 체결을 정식 계약인양 ‘자주개발율’ 타령을 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또한, 이번 원전의 난(亂)을 보면서도 우리는 법률로 규정된 ‘녹색기업’에 원자력(한국수력원자력 월성, 울진, 고리원자력본부)이 작년 12월에 포함된 사실을 묵과하고 넘어가야 하는 걸까? 사람 잡는 원전, 환경 잡는 원전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서 ‘핵에너지’를 저지하지 않고 녹색이 될 수 없다고 밝힌바 있다.
 
이제 우리 정부와 국민도 바다 건너 폭발 구경할 것이 아니라 ‘녹색’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고 핵 없는 세상인 ‘에코토피아’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이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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