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다] 고제량의 제주 이야기(1)  생명을 살리는 한라산의 품에서 
 
※관광개발로 파괴되는 제주의 환경훼손을 막고 대안적 여행문화를 제시하는 생태문화여행 기획가 고제량님이 쓰는 제주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관광지’가 아닌 삶과 문화와 역사를 가진 제주의 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편집자 주

겨울 한라산에서는 길을 보자

제주도 섬 토박이 고제량입니다.

어렸을 때는 섬이 좁아 뭍으로 나가고 싶어 갖은 애를 썼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섬이 대륙보다 크다고 느꼈던 그 느닷없는 날 이후로 더 이상 섬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대학 3학년 때쯤인가?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는데 한라산이 얼마나 크게 보이던지…….
 
그 날 이후로 한라산은 단순 산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에게 산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 이상일 겁니다. 우주?, 어머니 ? 작은 섬에 있는 산이지만, 그 의미는 큰 한라산. 그 산을 이야기 하며, 제주 이야기를 시작 하려 합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고, 40여년을 살아온 제주를 이야기하며 여러분과 소통을 하고 싶어 글을 시작 합니다.
 
관광 개발로 파괴되는 제주 환경을 보고, ‘관광 문화가 바뀌면 환경훼손도 막을 수 있겠지’라는 단순한 발상으로 생태관광을 시작 했습니다. 현재 (주)제주생태관광(웹사이트 ‘이야기 제주(http://storyjeju.com)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고, 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고, 지역 문화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그리고 생태적 철학을 가진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역사, 문화를 예로 들면서 또 가끔은 자연을 예로 들면서 차근차근 제가 살아온 경험의 제주도를 글로 쓰겠습니다.
 
한라산에서 여신이 보내는 메시지 읽기
 
▲ 멀리, 눈 덮힌 한라산의 모습이 보인다.     © 고제량

 
하늘의 아름다운 여인이 어느 날 흙을 치마폭에 넣고 세상의 바다로 내려와 산과 오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생명들이 깃들어 살게 한다.
 
그 여인은 아주 크다. 도대체 얼마나 큰지 제주사람 누구도 그녀를 본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거대한 여인이 제주에 깃들어 사는 흔적들만 사람들 마음과 눈에 띌 뿐이다. 그녀가 사는 흔적과 이야기들이 제주 사람들에게는 신의 메시지가 되어 위로가 된다.
 
제주사람들은 그녀가 제주를 돌보는 여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삶을 의지한다. 그러나 그녀는 무한의 너그러운 신은 아니다. 잘못하면 벌하고 기쁘면 환희를 내리기도 한다.
 
제주사람들은 한라산이 맑게 보이면 여신이 ‘기분 좋았구나 ’ 여기고, 한라산이 흐려서 안보이면 여신에게 ‘ 잘못한 게 있구나’ 여긴다.
 
바람 많고 돌 많은 섬의 삶이란 게 뻔하여 사람들도 힘들고 여신의 삶도 녹녹치 않다. 결국 여신은 먹을 것이 넉넉지 않은 섬의 존재들에게 자신의 몸을 줘 생명을 살게 한다. 그리고 여신은 편지를 쓴다.
 
우리들이야 종이에 편지를 쓴다지만 여신은 물에다 편지를 쓴단다. 모든 존재들에게 골고루 평등하게 전해질 물이 그녀가 선택한 편지지다.
 
아마도 여신의 쓴 메시지가 닿지 않는 곳은 없지 싶다. 커다란 나무의 잎에서부터 땅 속 깊이 박힌 잔뿌리까지. 그리고 도시 골목길 콘크리트 사이에 홀로 자란 풀에게까지.

신기하게도 여신의 메시지가 닿은 존재들은 모두가 스스로 당당하고 싱그럽다. 여신의 편지는 가끔 우리에게 비로 내리기도 하고 눈으로 내리기도 한다. 겨울 한라산을 오를 때는 눈에 쓰인 여신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그렇게 그녀와 소통하여 어머니의 커다란 품을 느끼는 것. 그것이 한라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이다.
 
해발 1950m의 산은 한라산, 두무악, 영주산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한라산의 뜻으로는 여러 풀이가 있는데, 흔히 은하수를 끌만큼 높은 산이라는 뜻도 있고, 구름위의 높고 푸른 산이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한울산 이라고도 불렸다는데 이는  생명이 생명을 살리는 생태적 의미의 한 가족, 한 울타리의 뜻을 가졌다고도 해석을 한다. 어쨌든 이 모든 뜻풀이는 한라산에 깃든 생명성과 신성하고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유네스코가 인증한 ‘생물권 보전지역’의 의미
 
한라산은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고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유네스코에서의 이런 인증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라산은 2002년에 유네스코에서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2007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생물권 보전지역 지정의 의미는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보전과 이용이 지속가능해야 한다는데 있다.
 
세계자연유산 역시 후세까지 건강하게 물려 줘야할 자연자산의 의미가 있다. 2007년 유네스코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주제로 한라산과 용암동굴계, 그리고 성산을 세계유산에 등재 시켰다. 한라산의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1950m 에 따른 다양한 식물 분포가 학술적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난대 식물의 북방 한계선에서 자라는 솔잎란, 파초일엽, 손바닥 선인장 등에서부터, 한대 식물의 남방한계에서 자라는 갯대추 등의 식물의 다양성이 제주에는 있다.
 
결국 이런 지정들은 모두 생물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생명들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인간의 이용이 절제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식물의 다양성에서 보나, 여신의 메시지에서 보나 한라산은 온 생명을 품고 키우는 어머니임에 틀림이 없다. 한라산을 오르면서 그 깊은 어머니의 품을 느끼고, 그 생명성을 소중히 여긴다면 한라산을 찾는 기쁨이 더욱 크겠다.
 
눈 덮인 ‘겨울 한라산’의 특별한 매력들
 
▲ 마른 듯이 잎을 돌돌 말아 축 늘어뜨린 굴거리 나무     © 고제량

 
겨울 한라산에서 새겨 봐야할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겨울 한라산은 어쩌면 작은 것들의 진지함을 찾아 볼 수 있다.
 
먼저 하얗게 쌓인 눈을 보자. 거대 여신의 메시지가 쓰인 눈 위를 몇 시간을 걷다 보면 상상치 못했던 감흥이 몸을 놀라게 한다. 굳이 정상을 목적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맞이하는 겨울 산의 풍경들이 심장을 이상하게 움직이게 할 때가 있다. 숨이 차서 벌렁거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있을 때 두근거리는 그 현상도 아니다. 무언가 깊은 무의식의 속에서 함께 했던 통하는 에너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행여 걷다가 눈 위에서 넘어지는 것도 두려워 말자. 넘어지면 그냥 누워서 하늘도 보고, 나무 끝도 보고 그렇게 쉬어 가도 좋겠다.
 
겨울 산에서의 또 하나의 매력은 나무들의 겨울나기이다. 앙상하지만 가지 끝에 불그레 여물고 있는 꽃눈과 잎눈들이 있다. 마치 잠을 자는 듯 고요 하지만 4계절 어느 때 보다 치열하게 생존 운동을 하고 있다.
 
다음은 상록수들의 겨울나기이다. 한라산에는 상록수로 굴거리 나무, 꽝꽝 나무 등을 볼 수 있는데 어쩌면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마른 듯이 잎을 돌돌 말아 축 늘어뜨리고 꼼짝 않을 듯 서 있는 굴거리 나무의 모습이라니……. 아마도 잎을 펴 놓는 에너지마저도 절약하여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겠다는 의지 같기도 하다. 잎은 가죽옷을 잎은 듯이 두텁고 반질반질 표면을 코팅 처리 하고 있다.
 
겨울 한라산에서 혹독하게 겨울을 나는 것은 굴거리만이 아니다. 구상나무와 주목들 침엽수 역시 눈을 가득 짊어지고서고 푸른 고고함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겨울 산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 속에 묻혀 생명의 깊이를 가다듬는 수많은 식물들. 그리고 동물들을 떠올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눈에 덮여 잠자코 있지만 이제 눈이 녹고 봄이 오면 나름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함께 있기 때문임을 겨울 산에서는 잊지 말아야 하겠다.
 
무엇보다 겨울 한라산에서는 길을 보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어깨가 부딪힐 만큼 가느다란 길을 겨울 등반가 들은 끝도 없이 걷는다. 어느 밤 대설 경보가 내리고 눈이 높이 쌓여 아무도 들어서지 못할 산길을 처음 길을 내며 걸었을 그 누군가의 거친 숨결도 길 위에 있다. 등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를 러셀 이라고 한단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우리들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 한라산에 오르듯이 그렇게 세상 존재하는 것들과 소통하자.
 
한라산은 여신이 깃든 산이다. 어쩌면 여신이란 모든 생명을 살리는 또 다른 생명이다. 생명이 생명을 살리고, 생명이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는 우주의 뜻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귀하디귀한 내가, 고귀하고 고귀한 다른 존재들 간의 소통을 산은 말없이 이루어 주고 있다. 산을 오르는 우리는 한라산이 그러 하듯이, 여신이 그러 하듯이 만나는 모든 것에 마음을 내어줄 일이다. (고제량)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광고없이 독자들 후원으로 운영되는 독립미디어 일다!  정기후원인이 되어주세요!]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