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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  눈을 감아야 
 
[필자 소개 및 기획 의도] 필자 윤하는 <일다>에서 <다시 짜는 세상>이란 제목으로 에코페미니스트로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다.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이 너무 많다고. 열흘에 한 번씩 연재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눈을 감아야

세상에는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 답답해
어스름 저녁,
딸을 업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아이에게 양말을 신기지 않았다는 것을 안 것은
문득 포대기 속에 손을 넣어 본 뒤였다.

설렁설렁 아이를 들쳐 업고, 제 고민에 겨워
미친년처럼 훠이훠이 밤공기 속에서 숨을 고르던, 그 해 
쌉쌀한 10월 말, 그 서늘함 속에서
차갑게 얼어 있는 아이의 작은 발을 두 손에 움켜쥐고
눈물 바람으로 쩔쩔매며 집으로 돌아오면서야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아니, 이렇게 더는 조금도 살 수 없다고…….

세상에는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겨울 끝 무렵,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잘 가늠할 수 없는
폭풍 같은, 모욕 같은 시절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인간이 얼마나 비겁할 수 있는지에
눈물이 났고, 그 안에서 역시 비겁해 있는 자신을 보면서
가슴 더욱 시렸던,
그래서 더욱 무서웠던 그 시절

무엇을 움켜쥐고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아니,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다시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아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그날도 아이를 업고 있었지.
친정식구들이 모두 자신의 일터로 나간 뒤
둥그러니 우리 둘만 남아 온종일을 있었는데,
딸과 무엇을 하며 그 긴 하루를 보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다만 2월 어느 날, 여전히 가지 앙상한
겨울 먼 들판을 어리어리한 눈으로 바라보면
더는 절대로 봄이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아! 어떻게 사나?
우루루 다리 떨려 고개 떨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는데
발치끝 바로 코앞에 채 녹지 않은 언 땅을
부드럽게 가르며 어린 냉이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렇게 여린 것들도 언 땅을 가르며 일어서는데!

다시 일어나,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앙상한 가지마다 눈곱만한 싹들이 돋아나고 있는,
싹들이 움트며 내는 고요한 함성 속에
그 소란함 속에 내가 서 있었다.

세상에는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황사바람 심하던 4월 한 날
황사바람에 라일락 꽃잎들이 분분하던,
바람 때문에
계속 눈이 아려왔지.

자꾸
눈이 아려……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 주억이며 눈물 떨구는데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작은 손으로 내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날,
그렇게 아이를 보냈다.
세상에는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꼭 18년 전의 일이다. 이혼을 하면서 아이를 보낸 뒤부터 나는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부터 뒤돌아 계속 걸었던 것 같다. 한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늘 너무 멀리와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떨어져 있는 건 아니야. 그 아이는 나니까, 내 살덩어리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잠깐 이렇게 있는 거라고, 우리는 꼭 만날 거라고 수없이 되뇌며 걸었다. 그 세월 끝에서 아이와 만나 행복하게 살 거라는 믿음에 한 치의 의심이 없었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걸었더랬다.

▲ 여기서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 딸을 만나러 간다.  ©일다  

그리고 밤마다 날짜를 세고, 나이를 헤아리며 계산해 온 날들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세월을 훌쩍 넘어 맞닥뜨린 현실은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온 상상은 나 혼자 순진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쓴 드라마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 앞에서 너무나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어야 했다.

 
그런 현실 앞에서야 헤어져 있는 딸과의 관계를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놓아버려서는 안 되었다고, 부대끼면서 딸과 역사를 만들어야 했다고 후회를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 간의 애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쌓이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 나는 딸과의 관계에 그것을 적용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관계 맺기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가 빠져나온 세월과 그 세월 동안 아이 곁에서 애썼을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딸과 꿈꾸고 바라는 미래가 있다는 걸 나는 한 번도 헤아리지 못했다.
 
난 너무, 너무 멀리 떠나와 있었다. 너무 멀리 와, 이제는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을 찾지도 못할 것 같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건 딸을 만나러 돌아가는 길이 뒤돌아 걸어온 그 시간만큼 길거라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기로 했다. 여기서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 딸을 만나러 간다. (윤하)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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