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다] ‘야스쿠니 합사 싫어요’ 항소심도 패소
오사카지법 “야스쿠니 합사는 종교활동일 뿐” 
 
2010년 12월 21일, 일명 ‘야스쿠니 합사 싫어요 소송(靖国合祀イヤです訴訟)’ 항소심이 오사카지방법원에서 또다시 기각되었다. 정식 소송명은 ‘영새부에서 성명 말소 등 청구 사건’. 야스쿠니 신사에 친족이 합사된 유족 9명(그 중 1명은 항소심에서 원고 본인 소송으로 분리되었다)이 야스쿠니 신사와 국가를 상대로 합사의 취소를 요구한 재판이다.
 
일본 여성언론 <페민>의 회원이자, 오빠들이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져있는 것이 고통스럽다며 합사 취소를 요구한 소송 당사자이기도 한 후루가와 케이코 씨가 항소심 패소와 관련된 소식을 직접 전한다. ―편집자 주

 

▲ 판결 후 기자회견하는 원고단.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후루카와 케이코. 사진 제공-야스쿠니합사 싫어요 소송단  

그날 도쿄 야마구치에서 멀리 떨어진 오사카까지 달려와줬던 많은 방청자들이 비 오는 오사카재판소 현관 앞에서 입장을 위한 추첨을 기다렸다. 2층 대법정에 올라가는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K씨가 “감기 기운이 있어 바로 돌아가야 한다”면서도 나의 찬 손을 양손으로 감싸 덥혀줬다. 고마운 일이다.
 
오후 3시 개정. 마에사카 미츠오 재판장이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본건 각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항소 비용은 항소인들이 부담한다.”고 말하고는 바로 사라졌다. 방청석에서는 “이유를 말하라!”는 성난 목소리가 빗발쳤다.
 
우리들 원고 8명의 주장은 두 가지이다. 첫째, 전후 신(新)헌법 하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에 의해 야스쿠니신사 합사가 추진되었던 것의 위법성. 둘째는 야스쿠니신사 합사와 그 지속행위는 원고들이 합사된 희생자와 가족의 인연으로 느끼는 경애추모(敬愛追慕)의 정에 기인한 인격권의 침해이다. 따라서 영새부(신사, 특히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 사람들의 이름, 본적 등을 기록한 명부-역주) 등에서 아버지나 오빠의 이름을 삭제하라는 것이다.
 
신교(信教)자유 방패로 합사 취소 불인정
 
전후 구(舊) 후생성은 전사자의 정보를 신사에 제공하고, 그 비용을 국비로 충당하여 합사가 원만히 이루어졌다. 이번 판결은 그 점에 대해서는 “합사라는 종교행위 자체를 원조, 조장”하는 것이라고 하여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위반한다고 분명하게 인정했다. 합사가 국가의 적극적인 관여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인정한 첫 사법판단으로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후의 무단합사는 모두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것임에도 우리의 합사취소 요구에 고집스럽게 응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오사카지방법원은 야스쿠니 신사에도 마찬가지로 신교(信教, 종교를 믿는 일)의 자유가 인정된다고 말한다. 합사 및 합사지속행위가 신사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교의와 직결되는 종교활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이 타인에 대한 강제나 불이익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한, 자유로운 종교활동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원고들은 전사자와의 사이에서 느끼는 ‘경애추모의 정에 기인한 인격권’이 ‘전사자를 칭송하고 감사하는’ 야스쿠니 합사에 의해 지속적으로 침해되어 왔다고 주장하지만, (법원은) 사회일반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 합사에 의해 ‘칭송받고 감사되는’ 사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됐다는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전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애추모의 정에 기인한 인격권’은 이 경우 마음 속 자유의 영역에 머무르는 문제로,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권리나 이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알기 쉽게 설명하면, ① 야스쿠니 합사를 국가가 지원했다고 해도 합사 자체는 신사가 자율적으로 행하고 있다. ② 합사는 야스쿠니의 교의에 따르는 신교활동으로 영령을 현창(밝게 나타냄. 칭송하는 행위)하고 모시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의 신교의 자유에 의한 것으로 당신들에게 그것을 강요한 적은 없다. 이는 재판관이 국가와 야스쿠니의 옹호에 열심이라는 인상을 주는 판결이다.
 
“야스쿠니의 감옥에서 풀어달라”

▲ 일본제국 국가신도의 중추였던 야스쿠니신사. 

 
야스쿠니는 패전까지 국가신도(일본제국 정부의 황국사관적 정책에 의해 성립되었던 국가종교)의 중추였다.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에서 하나의 종교법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국가신도 시절의 합사를 전통으로서 계속 유지하고 있다.
 
신(新)헌법으로 획득한 사상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 하에서 야스쿠니의 합사나 전쟁관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유족이라면, 사랑하는 육친이 침략군인인 채로 영구적으로 제대하지 못하고 야스쿠니의 감옥에 갇혀있는 현실을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 굴욕과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번 소송의 원고들은 “국가신도 시대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국가가 준 특권을 받아 합사를 계속해 온 야스쿠니 신사가 주장하는 ‘신교의 자유(모시는 자유)’란 대체 무엇인가.”라고 강하게 반문한다. “나는 삼촌이 천황제와 침략전쟁의 찬미 선전에 사용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야스쿠니는 전쟁신사다.” “전사는 애도되어야 할 뿐 칭송될 수는 없다.” 유족들의 말이다.
 
야스쿠니신사의 합사자는 244만 6천명, 그 중 전후 합사는 37만 5천명, 나머지는 전후의 신(新) 헌법하의 합사이다. 그 중에 한반도 출신자는 2만636명, 대만은 2만7656명이 일본군으로서 모셔졌다.
 
한국인 유족 이희자 씨 등은 현재 도쿄에서 합사취소를 요구하는 재판 ‘노(No)! 합사’를 계정 중이고, 오키나와에서도 합사 취소 소송이 1심 패소를 딛고 3월에 있을 항소심을 준비 중에 있다. ‘야스쿠니합사 싫어요’ 소송은 12월 29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후루카와 케이코)
 
※ 이 기사는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에 실린 2011년 2월 5일자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광고없이 독자들 후원으로 운영되는 독립미디어 일다!  정기후원인이 되어주세요!]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