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이경신의 [죽음연습] 6. 서양 철학자와 동양 승려가 전하는 지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문학사상사, 1996)를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찬장 속에는 과연 질레트 레몬 라임 향 면도용 크림과 쉬크 면도기가 들어있었다. 면도용 크림은 절반 정도 남아 있었고, 뚜껑 부근에 하얀 거품이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죽음이란 그렇게 면도용 크림 절반 정도를 남기고 가는 것이다.” 그렇다. 이 소설 속의 도서관 직원 남편처럼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을 쓰다 말고 남겨둔 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가 맞게 될 죽음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생전에 어머니가 듣던 가요 카세트테이프들이 떠올랐다. 상자에서 오래된 가요테이프를 하나 꺼내서 틀어보았다. ..
내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마침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생일이 지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지만, 그동안 서로 만날 약속잡기가 쉽지 않았다. 난 미리 준비해 둔 생일선물, 삼백초로 염색해서 손수 공구르기를 한 명주스카프를 잊지 않고 챙겨 나갔다. 친구는 스카프를 걸쳐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를 안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공간이 달라지면 친구도 달라져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내게는 참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같은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았던 짝, 집과 학교를 같이 오갔던 길동무, 서점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함께 책을 읽던 책친구,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 운동장에서 어울려 뛰어 놀던 놀이친구가 있었다. 또 대학생이 되자, 기숙사에서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