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5) 나는 서울로 외출할 때마다 멋을 부리거나 평소보다 좀 더 외모에 신경을 쓴다. 그것은 몇 달 전 아이의 새엄마를 통해 아이가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뒤부터였다. 손녀의 대입여부가 궁금하셨던 어머니는 아이의 새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 했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그녀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어요” 하더란다. 이어서 어머니는 어느 대학이냐고 물으셨는데, “찾아올까봐 그건 가르쳐 줄 수 없다”고 그녀가 딱 잘라 말하는 바람에 더 묻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손녀가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흡족해 하셨다. 어머니는 손녀의 새엄마에게 “찾아가긴 누가 찾아가?”라고 말했다고 하셨다. 그..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4) 만나고 싶지 않다는 딸의 편지를 받고도 매달리지 않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아휴! 아이를 키우지 않아, 모성애라고는 없어서…” 라고 탄식의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딸과 관계를 풀어나가는 것도 서툴렀던 것 같다. 많은 여성학자들은 주장한다. 모성애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그렇다면 나도 모성애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1년 반 남짓 되는 양육을 경험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성애는 이 정도의 경험으로는 충분하게 형성되지 않나 보다. 만나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편지를 받고도 찾아가 나를 설명하지 않았고, 만나야 한다며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처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