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영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태일’이라는 세글자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항거한 그의 외침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노동자에게 울림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도 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후 그의 뜻을 이어가고자 한 이들이 그 해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를 만들었고,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등을 외치며 투쟁을 이어나갔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1977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가였던 故 이소선 여사가 구속되었을 때 석방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으며, 자신들의 노동교실이 강제 폐쇄되자 그곳을 되찾기 위해 점거 투쟁을 벌였다는 것. ..
봉제 노동자는 지금도, 미싱을 돌린다 미싱사 홍은희 씨의 이야기 (류현영 기록) ※ 는 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여성노동자들의 ‘일’을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싣습니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바로가기 봉제업, 방직공장 풍경은 옛날 얘긴 줄 알았는데… 봉제업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시다, 재단사, 미싱사, 평화시장, 동대문, 그리고 1970-1980년대 노동운동의 불씨를 당긴 전태일 열사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이후 봉제업은 저임금 노동에 기반한 수출 위주 산업으로 호황을 누리다 1990년대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옮겨갔고, 그렇게 국내에서 봉제업은 역사의 뒤안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