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두컴컴한 산속 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머리에는 헤드라이트를 두르고 손에는 전등을 들고서 천왕봉으로 향하고 있었다. 살을 에듯이 바람은 날카로웠다. 그 속에 우리 11명의 일행들이 오르고 있었다. 헉헉대는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오르막의 산길은 힘들었다. ‘앞이 보였다면 조금은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마음을 위로하며 천천히 올랐다. 푸르스름한 새벽기운이 느껴질 때쯤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했다. 정말 내가 종주를 했구나 하는 기특함으로 스스로를 칭찬했다. ‘잘했다. 야리’.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종주의 기쁨이 큰 만큼 아쉬운 하산 길 천왕봉에서 선명하고 맑은 일출은 보지 못했다. 날이 훤하게 밝아오자 우리는 하산을 결정했다. 배낭을 챙겨 매는데 ‘천왕봉’이라고..
지리산을 올랐다. 배낭을 짊어지고 오른 것은 나였지만, 앞에서 뒤에서 끌어주고 밀어준 것은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함께함을 확인했지만 혼자임을 즐겼던 산행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산을 찾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산을 내려왔다. 그러나 함께 간 사람들은 저마다 달랐다. 산에게 기대를 하고 뭔가를 버리기 위해 오른 사람이 있었고, 그저 산이 좋아 오른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지리산 종주를 위해 6주간 산행연습을 했고 지리산 종주 이후에도 산악회는 지속되었다. 지리산 종주를 준비하며 도봉산에 오르다 산을 좋아해서 도봉산을 뒷동산 오르듯 하는 ‘지나지산’은 지리산을 1년에 2번은 종주한다 해서 나에게 부러운 존재였다. 언젠가 그녀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