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이주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나의 독일 이주는 ‘헬조선’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페미니즘 매체 기자와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젠더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더 키우고 싶었고, 몇 차례의 국외 출장을 통해 외국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었다. 이후 여러 자료 조사 끝에 프리랜서로 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열려 있는 독일로 오게 되었다. 독일에 온 후, 그동안 내가 입고 있던 학력이나 직업 이력 등의 옷이 모두 벗겨지고 철저하게 다시 알몸이 되어 삶을 일궈나가야 했을 때 고통스러웠다. 어딘지 잘 모르는 작은 나라에서 온 ‘아시아 여자애’가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일상에서는 지하철에 앉아있는 나를 긴 시간 훑어보는 옐로 피버(Yello..
아마도 비혼의 싱글맘이었을 생모를 찾습니다“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해외입양인 나의 인생 ※ 일다에서 보도한 연재 시리즈를 보고, 한국에 체류 중인 네덜란드 입양인 김은영 씨가 보내온 기고문을 싣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바로가기 “보통 사람들”과 다른 해외입양인들의 삶의 시작점 내 이름은 김은영, 소냐 반덴베르흐(Sonja van den Berg)이다. 성장하면서, 난 내가 태어난 것이 “보통 사람들”처럼 내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건 내가 태어난 것, 배경, 그리고 부모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입양서류에 따르면, 나는 서울 성북구의 한 파출소에서 버려진 아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국 입양기관이 내가 태어난 날을 추정했고, 1978년 12월 9일이라고 했다. 1979년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