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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전시 성노예 범죄에 관한 여성국제전범법정 10주년을 돌아보다 
 
2010년 12월 8일은 여성국제전범법정이 있은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000년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여성을 전시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일본정부에게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고,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 열린 국제민간법정입니다.

일다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의 여성국제전범법정 10주년 특집 기사 중, 여성국제전범법정이 남긴 역사적 의미와 향후 과제를 살펴보는 기사를 옮겨 싣습니다. 
글쓴이 쇼지 루츠코씨는 VAWW-NET JAPAN(바우넷 저팬.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일본여성네트워크) 여성국제전범법정 10주년 실행위원회 대표입니다.―편집자 주
 
여성들의 힘으로 연 ‘민중법정’
 

▲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  [사진 제공: 페민]    
 
여성국제전범법정(이하 ‘법정’)은 여성들의 힘으로 연 민중법정이며 더욱이 성노예제도의 가해국에서 열린, 역사에 남을 사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법정은 故 마츠이 야요리씨(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이자 여성운동가. 바우넷 저팬의 대표를 지냈으며 여성국제전범법정이 열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를 비롯한 전 세계 여성들의 노력, 그리고 정의를 요구하는 피해여성들의 호소로 열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피해여성들로부터 ‘전시 성폭력뿐 아니라 전후에도 계속해서 방치되어 온 참혹한 인권침해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워 ‘법정’을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해외에서 200명, 일본 국내에서도 100명의 기자가 이 법정을 방청했지만, 판결이 정확하게 보도된 곳은 외국 언론뿐, 일본에서는 단 두 개의 언론에서만 보도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법정’을 소상히 보도할 예정이었던 NHK가 정치압력에 의해 판결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증언과 전 일본군의 가해증언까지 삭제하고, ‘법정’을 부정하는 발언을 큰 폭으로 늘린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우리는 갈등 끝에, 이 과정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재판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NHK 재판 도중, ‘정치인에 의한 압력이 있었다’는 내부고발이 있었습니다. 고등법원에서는 획기적인 승소를 거뒀지만, 대법원에서는 패소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언론의 역할 등을 되물을 수 있었던 점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국제전범법정 이후 우익들의 공격 거세져
 
▲ 여성국제전법법정에서 가해 행위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는 전 일본군 병사.   [제공: VAWW-NET 재팬]  

 
여성국제전범법정 이후 우리들은 엄청난 역풍을 만났습니다. 여성들이 하는 일이라 무시했더니, 야스쿠니신사 부근의 구단회관에서 ‘쇼와천황 유죄’라는 판결을 내고, 매일 천명 이상이 ‘법정’을 방청하는 상황에 우익들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익의 공격은 엄청났습니다. 공공시설을 빌리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몇 년간 빌릴 수도 없었습니다. 교과서 문제가 발생했고, 중고교 역사교과서에서는 ‘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삭제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법정’을 지지하는 여성들의 힘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법정’이 끝난 후 떠안고 있던 막대한 빚은 속속 답지하는 여성들의 기부로 갚을 수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여성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힘도 컸습니다. 한국에서는 ‘법정’에 의해 필시 일본정부의 태도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죠. 하지만, 일본정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썰물처럼 지원자가 줄고, 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몇 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위안부’ 결의안 채택, 과테말라 민중법정 개최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습니다. 일본정부는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하고 많은 피해여성이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1995년-2002년)에 의한 보상금 사업을 펼쳤지만 피해자의 존엄성은 회복되지 않았으며, 진정한 사죄와 보상이 없으면 화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뿐입니다.

▲ 호주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한 활동 중, 모네쉬대학서 강의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길원옥씨.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하지만 효고현 다카라즈카시(市) 시의회를 비롯한 36개 시의회에서 ‘사죄와 보상’ ‘교과서 기술’ 등의 조기해결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도쿄 이외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피해여성들의 주체적인 활동에 힘입어 미국, 캐나다, EU, 네덜란드 의회도 일본정부에 공식사죄 등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국제서명활동도 이루어지고 있고,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중심이 된 운동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법정’에 전력투구했던 故 마츠이 야요리 씨의 유언이기도 한 ‘액티브 뮤지엄 -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도 설립되었고, 전시품이 동티모르나 중국 산시성에서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0년 ‘법정’에 참가하여 자극을 받은 과테말라 내전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민중법정을 개최한 것도 멋진 일이었습니다.
 
더욱 활발히 ‘법정’이 남긴 과제 모색할 때
 
‘법정’ 이후 10년을 되돌아보는 심포지엄에서는 당시 ‘법정’에서 간과했던 사실에 대해 시야를 넓혔습니다.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한반도나 대만 여성들이 다수 연행되어 피해를 당했고 이것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로 인해 현재 일본 안에 민족차별과 그에 따른 성차별이 존재하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여성국제전범법정을 함께 했던 우리가 공통적으로 원하는 바는 ‘하루라도 조속히 정부가 공식 적으로 사죄와 보상을 하는 것’입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앞으로 더더욱 활발히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쇼지 루츠코 | 정리-아카이시 치에코 | 번역-고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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