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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몸 이야기: 성폭력, 몸에 새겨진 공포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1. 1. 14:00

<일다> 몸 이야기 다시 읽기: “뭐 피해본 거 없죠?” 
 
몸에 스미는 공포에 몸이 떨렸다. 다행히 할머니가 하는 가게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마중을 나오라고 하고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지만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자 내 몸에 새겨졌던 공포가 스멀거려 아프다.

그 날은 친구들과 골목 입구에서 헤어져 걷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 터라 가로등에 비춘 실루엣을 보고 발걸음을 일부러 늦췄다. 그런데 그는 멈칫하다가 나를 지나쳐 갔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의 젊은 남자였다. 그나마 술에 취한 것 같지도 않아 다행이다 싶어서 마음을 놓고 다시 걷는데, 나를 앞질러 갔던 그 남자는 바지를 내리고 자위를 하면서 나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소위 ‘바바리맨’으로 불리는 남자를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여학교를 졸업한 나는 등교 길에서 종종 보아왔고 그럴 때면 매번 놀라기도 하고 불쾌했다. 물론 이번처럼 나의 동선을 미리 읽고 계획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더욱 놀랐다. 게다가 이 일 있기 얼마 전에, 내 방 창문을 여는 누군가의 손을 봤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 모른다. 방범 창 시설까지 되어 있는 창을 맨 손으로 굳이 열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나에게 그런 일들로 인한 ‘공포’는 ‘성폭력과 연결’되어 있다. 그 일들 자체도 상황적으로는 충분히 성폭력이라 볼 수 있지만, 그 일이 내 안에선 분절된 어떤 사건 하나로 존재하기보다는 ‘연속된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된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범인을 잡기 어렵고, 경찰이 이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라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순찰이라도 자주 돌면 좀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혹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참고 자료라도 됐으면 해서다. 역시나) 경찰들의 반응은 냉랭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몸의 권리가 다시 한 번 존중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가 내 방 창문을 열려고 했던 일이 있을 때는 집에 혼자여서 112에 바로 신고했다. 전화를 받은 경찰은 나에게 “뭐 피해본 거 없죠?”라고 물었다. 물론 물리적인 피해를 말한다는 것을 알지만, 내 공포나 불안한 마음 따위는 안중에 없는 경찰과 ‘소통되지 않음’에 답답했다. “피해 받은 거요? 그런 거 없어요. 그치만 무서우니까 빨리 와주세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체 피해라는 게 무엇일까. 나는 그 일 이후로 지금까지도 창문을 열지 못하는데.

그리고 이번에 나를 따라와 성기를 노출한 남자를 보고 나서 이틀 후, 친구와 파출소에 방문했다. 이상하게도 밤에는 경찰이 없는 파출소였는데 인터폰을 하니까 5분 후 경찰차가 왔다. 경찰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왜 불렀냐고 물었고, 나는 대강 설명을 했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다가 나와 친구를 보고 경찰이 말하길 “근데 아가씨들 뭐 하는 사람이에요? 학생이에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니 학생이 왜 밤 늦게 다니나? 그러게 일찍일찍 다니지.”라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왜 하는 거냐고 항의했다. 경찰은 나쁜 의도 아니었고 기분 나쁘다면 미안하다고 (무마하려는 듯 성의 없는 태도로) 사과했다. 오히려 신고자인 나를 비난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여성들의 밤길 되찾기를 위한 시위는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여자보고 일찍 다니라고 하는 너! 너나 일찍 다녀!”, “여성들도 밤길 다닐 권리가 있다!”, “여자 단속하지 말고 안전한 거리를 만들자.”라는 외침과 함께. (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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