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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88만원 세대 축에도 안끼는 여성예술가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8. 10. 16:54
여성예술가 전지의 단편만화수필집 <끙>
 
돈을 둘러싼 많고 많은 정의에 조금씩 흔들린다.

난 열심히 돈 버는 게 열심히 사는 것이라는 말엔 명확히 반대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돈 없이 살아가는 자급자족의 삶의 가능함에는 불안함이 든다.
이 만화가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서 독립을 해야겠다…… 는건…… 맞는 결정인가…….
근데, 아르바이트는 진짜 해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
당장의 답이 없구나.                   _<끙>의 작가 ‘전지’의 블로그에서

 
<끙>은 여성사전시관에서 진행 중인 '이걸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전시의 참여자인 여성예술가 '전지'의 단편수필만화집이다. 작가 전지는 88만원세대에 속하는 29살 여성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 바탕을 둔 ‘미술 언저리에서 삶을 꾸려나가며 고민하고 관계 맺고 갈등을 마주하는 스물아홉 여성의 삶’이 만화를 통해 토로된다. 그리고 이 혼란과 고민의 고백은 작가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다른 이들의 토로와 시위를 이끌어내는 꼬드김’이도 하다.
 
88만원 세대 축에도 안끼는 이들의 삶 토로
  
▲ '팔십팔만 원 세대 축에도 안 끼는' 젊은 여성예술가의 삶과 고민을 토로하는 전지의 만화 <끙>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삶을 선택한 작가의 삶은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고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간다.
 
단편만화수필집 <끙>에 수록된 네 개의 에피소드 중 첫 번째 에피소드 <팔십팔만 원 세대 축에도 안 끼는 세대>는 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우연히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작가의 임금은 50만원에서 8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88만원”도 되지 않는 저임금이다. 하지만 작가는 핸드폰비만 내면 충분히 만족하기에 슬퍼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녀의 친구 넙죽이는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아르바이트에 화를 내면서도, 1분을 지각하면 500원씩 임금을 깎는 속옷 공장에 취직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비슷한 상황인 둘은 도시락을 싸서 동네를 산책하기도 하고, 넙죽이네 집에서 뒹굴 거리며 자신들의 처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매번 대꾸를 해주는 쿨한 넙죽이는 작가가 “배배 꼬였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선택을 인정해주는 친구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아니거든>에서는 작가가 평소 꿈꾸던 스타일의 머리를 시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과감하게 삭발을 한 작가는 가족과 생각지도 못한 트러블을 겪게 된다. 어머니는 보자마자 때리며 죽으라고 하고 방안에 들어가 펑펑 우신다. 언니는 밤새도록 작가에게 문자테러를 날린다. 작가의 언니는 삭발하는 것이 얼마나 “부모에게 불효하는 일이며, 미친 ‘똘아이’ 짓이고, 가족을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불쌍하게 만들며, 조카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구구절절 문자로 보낸다.
 
그저 평소에 해보고 싶은 머리 스타일을 한 것뿐인데 불효자와 부적응자로 몰리며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작가는 한 달이 지나서 6만 원짜리 가발을 쓰고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가족들이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와중에도 작가는 연애를 한다. 다른 모습, 다른 삶을 살아도 크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는 것 뿐. 세 번째 에피소드 <이건 연애도 아니다>는 작가의 솔직한 연애담이다.
 
네 번째 에피소드 <빨갱이라 굽쇼?>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조금씩 확신을 갖게 되는 작가가 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호텔 같은 집과 화려한 자동차 따위는 꿈에도 바라지 않는 작가는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에 부모님의 큰 걱정과 비난을 수시로 받는다.
 
‘적게 쓰고 사는 것은 궁상떨고 사는 것으로 보이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야망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나중에 부모를 굶겨죽일 수도 있는 것’으로 오해받는다. 부모님의 가치관 속에서 돈을 적게 쓰고 적게 버는 것에 만족하면 “빨갱이”라 불릴 각오를 해야 한다.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달리는 사회는 ‘지옥’
 
▲ <끙>에 수록된 작품 중 세번째 에피소드, '이건 연애도 아니다' 표지.  

 
다수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은 작가가 바라는 삶이 아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소비에 만족하는 그녀는 쇼핑이나 커피숍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할 야망도 없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원할 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는 어른 여자가 그렇게 살도록 놔두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가 처한 상황과 고민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88만원 남짓한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인 현실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대해 알지 못한다. ‘남들만큼 해야 한다’는 불안함에 굴복당하며 자신의 의지 대신에 사회가 주입하는 기준과 가치에 매달리게 된다.
 
우리사회는 어느새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게 되었다. 작가가 말하는 “백만 인의 꿈”인 좋은 직장 다니고, 안정적인 연봉에 노후를 대비하는 연금과 보험 없이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선 작가는 찌질하고, 하는 일도 없이 빈둥대면서 사회에 별 도움 안 되는 잉여 인간쯤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하며 그렇게 살길 원할 뿐이다. 이런 삶의 방식을 이해 못 하는 이들은 작가의 선택과 삶의 방식에 태클을 걸어온다. 번듯한 직장과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야 한다는 가족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고민할 자격도 없다는 친구, 열심히 참여한 공공미술에 괜히 딴죽 거는 시민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작가는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달리는 사회는 지옥”이라고 말하며 자유롭고 뜨겁게 살기를 다짐한다. 작은 공동체에서 “의미 있는 노동”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준다. 그리고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아간다.
 
그림 없는 지도를 쥐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끙’ 하고 앓는 소리 내면서도 한발 한발 걸어 나간다.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만들어가는 그 소리가 참으로 아프고도 소중하다. (이정아 / 일다)  *전지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mademin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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