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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18) 죽어가는 자와 함께 하는 지혜 
 
어머니가 죽음의 바다를 헤엄쳐 다닐 때, 어머니를 지켜보는 우리도 어머니와 함께 헤엄쳐 다닌 것이다. 어머니의 바다를. 그리고 어머니는 떠났다. 하지만 나는, 나는 아직도 그 바다를 헤엄쳐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데이비드 리프, 어머니의 죽음, 9장)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도 넘었을 때였다. 난 비로소, 구석 깊숙이 처박아 둔, 어머니의 일기장을 꺼내들 용기가 났다. 아쉽게도 일기는 몇 편 되지도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글씨체는 늘 산뜻해서 아름다웠는데…… 시력이 약해져 어둠을 가르고 쓴 탓인지 맥이 빠진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 속에서 내 이름만큼은 또렷이 구분해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
 
 
▲ 데이비드 리프의 책 <어머니의 죽음> (이후, 2008)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항상 앓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어느덧 불안을 넘어 강박적인 두려움이 되었다. 내 꿈속에서 어머니는 수도 없이 임종을 맞아야 했다.
 
사실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어머니께서 삶과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는 당시만 해도, 나 자신을 위해 어머니의 삶을 연장시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대면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펼쳐든 <어머니의 죽음(이후, 2008)>에서 수전 손택의 아들 데이비드 역시도 어머니의 암이 세 번째로 재발했을 때, 나처럼 어머니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회피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나 암 투병 이야기는 하면서, 죽음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주제를 꺼내지 않는 한 내가 꺼낼 마음은 없었다. 그건 어머니의 죽음이지 내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어머니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얘기를 한다는 것은 죽을 수도 있음을 시인하는 셈인데,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생존이지 사멸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는 것 말이다. 삶을 지속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어머니가 택한 죽음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 리프, 같은 책, 1장)
 
그가 이 책을 쓴 것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 후여서 일까? 수전 손택이 보통의 어머니와 달라서일까? 아니면 그녀가 일흔이 넘는 나이에 죽음을 맞아서일까? 아무튼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서’어머니의 죽음을 회피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 사후에는 자신이 잘 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아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결국엔 죽어가는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과연 어머니만을 위한 죽음회피였을까? 그의 죄책감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내 경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공부를 중단하고 함께 할 시간을 마련했고 곁에 지내는 동안이라도 잘 돌봐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애쓴 때문인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상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도 못했지만, 그다지 유감스럽지 않았다. 어머니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진짜 이별을 하기까지 내게는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마침내 죽어가던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다 
 
▲ 아이라 바이오크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물푸레, 2010) 

 
어쨌거나 수전 손택 못지않게 내 어머니도 죽는 그 순간까지 삶을 포기하지 못했다. 나날이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지만, 현대의료의 실험적 처치를 모두 동원하는 쪽을 택했다. 살고 싶기 때문에 죽음을 끝없이 연기하려 했던 어머니의 의지, 삶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였다. 죽음에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던 어머니께 ‘죽음’이란 단어는 철저히 금기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감히 죽음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토록 살고 싶다는 어머니께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 냉혹해서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한 무엇이 있다. 진정으로 어머니를 위하지 못했으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어머니가 왜 그토록 살고 싶었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죽어가는 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매기 캘러넌의 <마지막 선물(아름드리미디어, 2002)>을 읽고 난 직후였다. 어머니는 당신이 언제 죽을지 알고 있었지만, 자식들 문제에 붙잡혀 죽음을 늦추고 있었다는 것, 당신의 임종을 지켜봐야 하는 자식들의 부담을 없애기 위해 수면 중 임종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 등.
 
안타깝게도 어머니가 죽어가면서 전달하고자 했던 말들을 난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나만이 아니라 자식들 그 누구도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식들이 어머니의 목숨을 연장하고 있다”는 담당의의 말을 듣고도, 우리 자식들이 정성껏 어머니를 모신다는 칭찬 정도로 흘려들었다.
 
어머니가 생을 마감해야 하는 두려움, 그것도 50대 중반에 삶을 끝내야 한다는 공포감 때문에 삶에 집착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벌써 놓았어야 할 목숨 줄을 끈질기게 잡고 생명을 연장하려 했던 중요한 이유,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는 정확히 알아야 했다.
 
바로 자식들에 대한 염려였다.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어머니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이었다.
 
용서, 감사, 사랑, 그리고 작별인사
  
▲ 메기 캘러넌 <마지막 선물> (아름드리미디어, 2002)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는 동안, 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오해도 풀었다. 또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몸으로 도와드릴 기회도 얻었다.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몸 구석구석을 닦아드리기도 했다.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천상의 과일이라도 따다 드릴 듯 어머니의 수족이 되려고 애썼다.
 
어머니는 이미 나와 이렇게 함께 나누는 시간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감했던 것 같다. 나만 몰랐을 뿐이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자식, 남편, 시부모를 위하는 일로 당신의 평생을 바친 것에 대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당신의 인생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며 한탄하는 말을 내뱉었다. 난 속으로만 안타까워했을 뿐,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난, 어머니의 노고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자식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어머니께 거듭 말씀드려야했다. 어머니가 없으면 상실감이 크겠지만, 앞으로 우리 스스로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게 해드려야 했다. 슬프더라도, 제대로 작별인사도 나눠야 했다.
 
나는 분명 기회를 놓쳤다. 어머니와 내가 평화로운 이별을 할 수 있는 기회, 서로가 성장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오히려 공부를 그만두고 당신 곁에 있으라며 붙잡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나를 잡고 싶어 하던 어머니의 말이 사실은 당신의 죽음을 암시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복막투석 하는 사람들이 2년을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으면서도 8년을 살았다는 기적적인 사례만을 믿기로 고집하며 어머니도 그리 살 것이라 혼자 생각했다. 어머니께 더 이상의 기적은 없었다. 투석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신 채로, 내가 떠난 지 석 달 후, 막내아들이 결혼할 여인을 데려온 직후에 어머니는 이 세상을 뜨셨다.
 
지금도 나는 병상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들을 귀담아듣고 제대로 이해해 볼 노력도 하지도 못했고, 호스피스 의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즉 ‘용서주고 받기, 감사하기, 사랑하기, 작별인사하기’를 만족스럽게 행하지 못해 정말 가슴 아프다.
 
삶의 문제가 무거워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몰랐던 어머니만큼이나 나도 죽어가는 어머니가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잘 몰랐다.
 
다음 기회에 가까운 이가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는 잘 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내 이기심에 갇히지 않고 서로가 죽음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잘 포착해 낼 수 있을까? 아니, 평소 살아가면서 충분히 서로 용서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먼저이겠지만.
 
[이경신 도서관 나들이] 왜 지금, 용산참사를 기억해야 하는가?  |  민주주의의 힘이 강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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