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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 2. 남의 일에 무슨 상관이야! 
 
*<하늘을 나는 교실>을 통해 정인진 선생님이 지난 7년간 직접 만들어 가르치고 있는 어린이 창의성, 철학 프로그램을 상세히 소개하여, 독자들이 직접 활용해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 편집자 주
 
이번 시간에는 지난번보다 좀더 어려운 것을 공부해 보자. 오늘은 ‘개입’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할 것이다. 자기는 상관없지만, 어떤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끼어들어 잘잘못을 가려주는 것을 ‘개입’이라고 한다. 다음에 제시된 글은 승민(초등 3학년)이라는 아이가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만든 예문이다.
 
<승민이의 학교에는 토끼가 있습니다. 토끼들이 풀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승민이와 친구들은 토끼에게 풀을 자주 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승민이는 친구들과 함께 토끼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한 남학생이 토끼장에 손을 넣어 “토끼야, 이리와!”하며 친근한 태도로 토끼를 불렀습니다. 토끼 한 마리가 상냥하게 자기를 부르는 소년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토끼가 가까이 오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손바닥으로 토끼의 뺨을 세게 ‘팍!’ 쳤습니다. 그렇게 뺨을 맞은 토끼는 질겁해서 도망을 쳤고, 소년은 “하하하!!” 매우 즐겁게 웃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승민이는 “왜 토끼를 괴롭히는 거니?”하고 그 소년에게 따졌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네가 남의 일에 무슨 상관이야!”하며 도리어 큰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들과 이 예문을 읽은 후, 첫 번째로 <가만히 있는 토끼에게 상냥하게 접근해서는, 막상 토끼가 안심하고 다가오자 그를 때린 소년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했다. 물론, 이 질문에 소년이 잘했다고 대답하는 어린이는 하나도 없다. 5학년인 광진, 세영, 지원, 형철이도 하나같이 소년의 행동은 좋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거론한 이유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것은 토끼도 사람처럼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 또 입장 바꿔 소년이 그 토끼였다면 기분이 어땠을까를 되물으며 생각을 펼쳤다. 충분히 좋은 의견이었지만, 모두 비슷한 이유를 든 것은 개성이 부족해 보여 안타까움이 있다.
 
이제 두 번째로 승민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못된 짓을 하는 소년을 옆에서 바라보던 승민이는 용기 있게 소년에게 그가 한 짓이 옳지 않다고 지적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착한 어린이가 된 것처럼 대답하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관심 있는 것은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이지, 착한 아이의 생각은 아니다.
 
이에 대해 광진이는 “그 소년이 내 친구라면 승민이처럼 따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행동은 확실히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소년에게 지적해주면 앞으로는 이런 나쁜 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의견에 나는 “그럼, 친구가 아니라면 따지지 않을 거니?” 물었다. 광진이는 조금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대답을 흐렸다. 광진이에게 친구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건지가 추가되면 좋았겠다고 평가를 해 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지원이는 분명하게 잘 표현했다. 지원이는 “일단 따진다. 그리고 그 소년이 나이가 어리면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야단치고 나이가 많으면 부드럽게 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거의 다 욕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제시했다.
 
형철이는 1-6학년까지라도 다 따지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1-4학년은 교장실로 끌고 가고, 5-6학년은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 주위 어른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왜냐하면 살이 많은 우리가 뺨을 맞아도 아프다. 근데 살이 인간보다 적은 토끼가 맞으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러므로 난 지적해 주고 반항하면 위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밑줄 친 부분은 첫 번째 질문의 대답으로 더 좋았겠다. 형철이에게는 나쁜 행동을 한 아이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제시해야 더 적확한 대답이 된다는 말을 해 주었다.
 
한편, <승민이의 지적에 소년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대응했습니다. 소년의 이런 태도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고 물었다. 이 질문에서는 남이 자기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도 네 아이들 모두 ‘자기의 잘못을 잘 생각해보고 뉘우쳐야 하는데, 도리어 더 크게 화를 낸 것은 잘못한 행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예로, 세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잘못했다. 왜냐하면 소년에게 잘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말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승민이에게 따졌기 때문이다. 잘못을 지적하면 지적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화를 냈다. 지적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잘못한 점을 알고 고칠 수 있다.”
 
위의 밑줄 친 부분은 문제에서 이미 제시된 것이어서, 결국 중언부언이 되고 말았다. 세영이에게는 질문이나 텍스트의 내용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이유를 펼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승민이가 소년에게 잘못을 지적해 준 것이 바로 ‘개입’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싸울 때 선생님이 등장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나 동생과 다툴 때, 어머니께서 혼내주시는 것도 모두 개입이다. 이처럼 개입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개입의 예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 찾아볼까요?> 물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부모님께서) 잘하고 있는데, 더 잘하라고 지적할 때
2) 친구의 의견이 부족할 때, 보충해 주는 것
3) 내가 친구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컴퓨터 그만 하라고 할 때
4) 친구와 내가 문자를 하고 있는데, 형이 끼어드는 것
 

이제 마지막 문제다. <좀더 좋은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남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하고 물었다.
 
광진, 지원, 형철이는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어린이들은 “잘못하고 있을 때, 지적 받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을 고쳐야 사회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가 일을 저질렀는데 아무도 지적을 안 하면 그 사람은 그 짓을 계속할 것이다. 또 그런 것이 크게 되어 (문화재를 불태우거나 음주운전을 하는 등)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세영이는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 안 하기도 하다고 했는데, “남이 나쁜 행동이나 단점을 지적해 줄 때는 필요하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친구가 어떤 생각을 말했을 때 ‘그건 아니야’ 라고 말했다가 그 친구가 기분이 나빠져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으면, 좋은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이 묻힐 수도 있다”고 이유를 제시했다.
 
자칫 개입이 다양성을 해치는 방향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어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개입은 나쁜 행동을 지적해주는 것 외에 나쁜 짓을 거드는 것도 포함한다. 한 예로 나쁜 학생과 한 패가 되어 함께 약한 학생을 왕따시키는 것도 개입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개입을 하는가에 따라 좋은 세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결정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걸 아이들이 꼭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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