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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 봉사활동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며 

[저는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조금 전 우리가 보는 가운데, 머리를 깎아주던 한 사람에게서 심한 악다구니를 당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발 기계를 잘못 다루어서 머리칼이 뽑히자 그 사람은 바로 아버지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희들 알겠지.”] (피에르 신부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바다출판사. 2000. 102쪽)
 
며칠 전 피에르 신부님의 책에서 본 구절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몇 년 전 봉사활동을 다녔던 보육원을 생각했다. 우리 시에 있는 한 보육원에 1주일에 한번 씩 가서 <창의성, 철학 프로그램>을 가르치려던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지만, 워낙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떨어져 1년 내내 <생각 연습> 기초 프로그램만 가르치고 말았더랬다.

 
내가 그 보육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곳은 크고 멋진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건물이 세워지는 걸 내내 지켜보면서 그곳을 다녔고, 신축공사 기념식에도 초대되어 갔었다. 건물이 완성되면 아이들이 쾌적하게 공부할 공간이 마련될 거라는 게 그곳 관계자들의 이야기였다.
 
당시 제대로 공부할 데가 없어, 조명도 공부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휑한 예배당 한 켠에서 꼬박 1년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렇게 완공된 멋진 건물 안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원장실 이하 각종 사무실과 회의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아이들의 공부방은 예전의 예배당 건물 1층 귀퉁이에 마련되었다.
 
꼭 그것이 서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마련된 공부방은 손바닥만한 창문에 햇볕도 잘 들지 않아, 한낮에도 불을 켜야 했다. 봄이 지나도록 으스스한 한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결국 이런 모든 조건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1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도, 보육원 원장은 그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직접 살피러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 보육원 창립일이나 신축건물 완공식 같이, 보육원에서 열리는 행사는 참으로 대대적이었다. 물론, 후원자들을 격려하고 또 지속적인 후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들의 비유를 맞춰야겠지만, 부차적인 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이유를 들어 그 일을 그만 두었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이것이 봉사활동으로부터 흥을 떨어뜨린 이유가 되기는 했지만, 내가 보육원 관계자들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어린이들과 관련된다.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잘 한다고 나한테 칭찬과 격려를 받던 아이들이 어느 샌가 건방지고 버릇없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많은 어린이들을 가르쳐 보았지만, 어디에서고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의 태도에 불쾌감이 커져 갔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받는 애정과 사랑에 그렇게밖에 반응할 수 없었던 걸까?’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한참동안 의문과 불쾌감으로 마음이 상했다.
 
보육원에서의 경험은 앞으로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당시의 나는 봉사활동을 멋지고 고상한 길로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아니, 피에르 신부님의 책을 읽기 바로 전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을 돕는다는 것은 하찮은 대우와 모욕을 가장 처절하게 느끼는, 자기를 가장 낮추는 일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교육환경과 시설관계자들의 관심을 문제 삼으면서 계속 가르칠 수도 있었다. 더 쾌적한 곳에 공부방을 마련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할 수 있었고, 원장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우리 공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이, 애정과 관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몰라서 보이는 서툰 행동을 이해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때부터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단다” 하면서, 애정을 어떻게 주고받아야 하는지 가르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자는 아무나 될 수 없나보다.
 
결국, 온통 나의 부족함만을 드러내고 끝낸 봉사활동 경험이었다. 그러나 남을 돕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지금이라도 깨닫게 된 것이 기쁘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봉사를 하러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성숙한 태도를 보일 수 있길 소망한다. (정인진) 관련 기사 보기 : 후원과 기부의 정신은 ‘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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