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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필리핀 보홀 섬 
 

텔리 아줌마네 집 창너머 맹그로브 나무숲이 펼쳐져있다

필리핀에서 지내다 보니 집이 별거냐 싶다. 날씨 탓이 크겠지만 여기 집들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음새마다 벌어진 틈으로 바람이 드나들기 일쑤고, 칠이 벗겨졌거나 아예 칠해지지 않은 집들도 많다. 하지만 다들 개의치 않고 산다. 때 되면 밥해 먹고 날 저물면 몸 누여 쉴 수 있는 곳으로 족하기 때문일까. 하긴 원래 집은 그런 것인데, 살다보니 그 단순한 진실이 자꾸만 어렵고 복잡해진다.
 
보홀 섬 바클라욘(Bohol Baclayon)에 있는 텔리(Telly A. Acampo)아줌마네 집도 내 보기엔 특별하달 것 없는 오래된 나무집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고 잠깐 눈이 휘둥그레지긴 했다. 집의 절반이 바다 위에 걸쳐 있고, 창문 너머 바다로는 맹그로브 나무숲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맹그로브 나무는 바다 속 짠물을 먹고 산다는 해안가 식물인데, 푸르게 잘 생긴 모양새도 대견하지만 나무의 뿌리가 흙을 단단하게 잡고 있어서 한여름 태풍의 방패막이가 되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집 때문에 텔리 아줌마는 지방정부와 삼년 동안이나 길고 긴 싸움을 벌여야 했다. 평생 살아온 집이자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녀온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해안도로를 넓힌다는 것이 철거의 이유였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게 된 열 한 가구의 사람들은 정부의 철거 명령과 싸우기로 작정하였고, 이 싸움은 ‘우리 옛집 지키기 운동’으로  확산되어 결국 정부의 개발계획을 중단시켰다. 그 오래된 집들 앞에는 ‘물려받은 것을 지켜라(Save Our Legacy)’ 라는 문구가 지금도 붙어있다.
 
백 년 이상 된 것은 다 보물이라는 텔리 아줌마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솔직히 백년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백년이라고 해봐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집, 쓰시던 물건들이 다 그 나이 아닌가. 우리 아버지와 삼촌들은 연세 많으신 할머니 편히 사시라고 진즉에 시골집 부시고 시멘트 벽돌집을 올리셨다. 할머니 쓰시던 가마솥이며 놋그릇들도 무겁기만 하다고 양은이랑 플라스틱으로 다 바꿔드렸었다.

'물려받은 것을 지키자'

우리는 이롭고 편리한 것을 위해서라면 집을 부수고, 산을 뚫고, 강을 메우는 것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암암리에 배워버린 것이다. 그런데 물려받은 것을 지켜라, 그 단호한 한 마디가 갑자기 내 등짝을 후려친다. 백 년 이상 된 것은 네 것이 아니다, 까불지 마라 한다.

 
볼일이 있어 보홀 섬으로 건너간다는 마마로사를 졸졸 따라 나온 길이었다. 작은 대학에서 에코투어리즘(Eco Tourism)을 가르치는 마마로사에게 나는 보홀 섬을 ‘에코 투어’하고 싶다고 졸랐다. 그렇게 마마로사의 여행 수첩이 열렸고 몇 명의 친구들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다.
 
시에라 블론(Sierra Bullones)에서 농사짓는 로사 친구 인다이(Inday Liwa) 네 집을 찾아가다가 소나기를 된통 만났다. 6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면서 한 번씩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데, 삼십 분쯤 그러다가는 또 금방 하늘이 멀쩡해지곤 했다. 다행이 비는 그쳤지만 물이 넘쳐 흙길이 패였다. 짐을 이고 지고 진흙탕 길을 걸으려니 여름신발은 찐득한 흙 속에 박혀 나올 줄을 모르고 어쩌다 맨발만 쏙쏙 빠져 올라온다. 막내가 “엄마, 신발이 가기 싫대.” 하고는 혼자 가버려서 내가 막내 신발까지 타일러 데리고 갔다. 사방 우뚝우뚝 서 있는 야자수들만 아니라면 우리네 시골과 다를 바 없는 정겨운 길인데, 걸음이 더디고 힘들다.
 
인다이와 남편 알게 부부는 유기농 쌀과 옥수수 등을 키우며 살고 있다. 십여 년 전 유기농법으로 전환하신 평생 농사꾼 아버지 옆에서 부지런히 농사를 배우는 중이다. 며칠 간 홈스테이를 하고 싶다며 찾아갔는데, 마침 필리핀 TV에서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방영되고 있었다. 더빙이 되어 눈에 익은 한국 배우들이 따갈로그 말로 웃고 우는데,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고 그냥 화면 뒤로 흐르는 한국 거리가 좀 그리웠다.
 

문도 없는 인다이네 마을 성당

농사가 바쁜 철이면 일손을 좀 도울까 했는데 모내기 끝내고 쉬는 때라 별다른 일거리가 없었다. 덕분에 넓은 부엌에서 인다이랑 같이 요리만 실컷 하였다. 아직 나무를 때서 밥을 하는 터라 아이들은 하루 종일 불 피우는 일에 신이 났고, 나는 되는 대로 배추를 썰어 오랜만에 막김치를 담갔다. 고춧가루가 없어 결국 허여멀건 김치가 되었는데, 생각 없이 썰어 넣은 필리핀 애기 고추가 어찌나 매운지 칼칼한 김치 맛에 다들 입을 홉홉거리며 먹었다.

  
젖먹이 아기가 있는 인다이는 초콜릿죽을 만들었다. 보기에는 팥죽이랑 똑같은데 카카오 덩어리와 쌀을 섞어 끓인 거라 했다. 설탕을 살살 뿌려 먹으니 쌉싸롬한 맛이 별미였다. 달콤한 주전부리 초콜릿도 여기서는 호박이나 감자 취급 받으며 사는 중이다.
 
우리는 바나나꽃을 따서 스튜도 끓였다. 향기가 진하다 못해 독한 바나나꽃은 아이들 머리통만큼이나 크고 단단한데, 겉잎은 좀 떼어내고 봉오리 안쪽을 듬성듬성 썰어 자작하게 끓여 먹는다. 앞뜰의 라임나무 툭툭 쳐서 후두둑 떨어진 라임들로 마실 거리를 만들고, 말린 코코넛 하얀 속살을 긁어내어 아이스크림처럼 얼려 먹기도 하였다.
 
필리핀 유기농업이 이토록 큰 규모인지 몰랐다. 쌀, 설탕, 기름, 과일 등 품목도 다양하고   생산량이 많아 수출도 매년 늘고 있단다. 무엇보다 생산과 유통을 촘촘히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농사꾼들을 떠받들며 움직이고 있었다. 일 년에 네 번 지을 수 있는 쌀농사를 땅이 지칠까 싶어 두 번만 짓는단 얘기까지 듣고 나니, 비빌 언덕 없는 우리네 농업 현실이 더 안쓰럽다. 덥고 습한 이곳 날씨도 처음으로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동네사람들은 일요일이면 누구나 성당에 갔다. 마실 가듯 따라가 보니 성당은 문짝도 없는 허름한 건물이고, 신부님도 농사꾼이시다. 미사도 그다지 엄숙하지 않아 탁 트인 바깥에 아무렇게나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인사하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코코넛과 엿을 넣어 곤 엿 '라틱(latik)'

미사가 끝나고 나니 동네 할머니들이 작은 보따리들을 펼치신다. 코코넛으로 곤 엿이며 찐 찹쌀밥들이 하나씩 바나나 잎에 싸여 있다. 파는 것이라는데 값이 아주 싼 걸 보면 그저 용돈벌이 삼아 소일하시는 모양이다. 인다이가 딸아이들에게 사주는 걸 한쪽 맛보았더니 단물이 척척 입에 감긴다. 가게가 먼 이곳 꼬맹이들이 일요일을 애타게 기다릴 만하였다.

 
이제 마마로사와 헤어져야 한다. 우리 때문에 보홀 일정이 길어져 마마로사 갈 길이 바빠졌다. 나는 소비하는 게 전부인 관광객이 아니라 삶을 낚는 여행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치며 떠나왔지만, 막막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었다. 마마로사는 내 어둔 여행길을 환히 밝혀준 고마운 등불이다.
 
비상금을 조금 헐어 마마로사 가방에 넣는다. 까미귄 섬 에니그마타의 지붕이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비만 오면 지붕 틈으로 물이 새는 바람에 뚜뻬는 밤새 지붕을 오르내려야 했다. 곧 태풍의 시간이 몰려올 텐데 그 전에 지붕을 고치면 좋겠다고, 나는 에니그마타가 그 자리에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런데 자존심 센 마마로사가 웃으며 나를 꼭 안아준다. 그럼 된 것이다.
 
집이 별거냐 했는데 집은 기억이며 역사였다. 그건 돈이나 그 어떤 논리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집도 그렇거니와 나무와 새들의 집, 물고기와 돌과 모래의 집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내 것이라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진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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