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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머릿속에 아이들은 없다
대입자율화, 특목고 확대…
 


한 아이가 이런 말을 내게 했다. 체육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달리기가 싫어요. 바보처럼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꼴등으로 달리는 애가 불쌍해요.”

왜 달리기를 할까?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고 아이들을 구경하게 한다. 꼴등은 울상을 하고, 1등은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2,3등이거나 꼴등이다. 2,3등은 그래도 꼴등은 아니라고 위안하거나 1등을 질시한다.

작가 박완서씨는 꼴등에게 박수를 치자고 하고, 이문열씨는 1등이 누군지 드러내고 치켜주어야 사회와 개인이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때, 나는 다 자란 아이들과 ‘서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아이는 서열의 상층부에 있는 아이다. 교만함은 없지만, 서열에 익숙하고 경쟁에 익숙한 아이다. 우리 사회가 길러낸 반듯하고 자존감 있는 모범생이다. 이변이 없는 한, 지방의 명문고를 나와 명문대 법대를 들어갈 것이다.

다른 아이는 총명하지만 경쟁에 무관심하다. 무서운 글쓰기에 밤새우는 재미있는 아이다. 이 아이는 평범한 학교에서 꾀부리며 적당히 공부할 것이고,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글쟁이가 될 것이다. 모범생은 평범한 집안 아이요, 꾀쟁이는 지방에서는 재산가라 부를 만한 집안의 아이다.

“특목고를 늘리면 못하는 아이도 특목고생이 되잖아요.”
모범생의 말이다.
“특목고 가기 싫은데 가게 되겠네요.”
다른 아이도 입을 비죽 내민다.

지금도 전국의 고등학교는 민족사관고와 강남의 학교들 뒤로 줄 서있다. 학원도 알아서 자신들끼리 줄을 선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 줄에서 몇 번째인지를 손꼽으면서 조바심 친다. 흘깃거리며 눈치를 본다. 다른 사람은 어디쯤에 있나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 우뚝우뚝 세워질 수백 개의 특목고 역시 서울 진입을 위한 수백 개의 계단을 만들어 우리는 누군가의 위에, 누군가의 밑에 있게 될 것이다.

특수한 목적은 무엇이며 얼마나 월등한가, 어떻게 자율적인가. 말은 있으나 가리킬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학원가는 ‘이명박 특수’라며 때를 기다린다.

이명박 당선인을 비롯한 보수주의자, 평준화 반대론자들은 ‘무한경쟁시대에 걸 맞는 인재를 기르려면 잘 하는 아이는 특수하게 키워야 한다. 그 인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 1등을 질시하고 기득권을 응징하는 사회에서는 발전의 동력이 훼손되게 마련이다’라고 한다. 이명박 당선인은 특목고 수의 확대가 사교육 열풍을 잠재울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들이 누구를 위하여 이런 모순된 말들을 쏟아내는지 알만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이들은 없다.

평준화이든 비평준화이든 간에 이것이 최선의 교육환경인가? 아이들을 달리게 하는 것, 한 명의 1등을 위해 나머지 아이들을 좌절시키는 것, 이게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아이들은 욕지거리를 한다.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상욕을 한다. 우리는 욕먹고 있다. 우리는 다 너희를 위한 거라고 얼마나 고생해서 뒷바라지를 하는데 이러냐고 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몰려가고 있을 뿐이다. 마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벌레들의 탑처럼 우리는 기어오르고 있다. 기어오르게 하고 있다.

이 맘 때 고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들은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숨을 못 쉬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나고 안절부절 못 하기도 한다. 어른들은 ‘질풍노도의 시기’이거니 ‘사춘기’가 늦느니 하지만, 그로써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모두들 자신의 영토를 찾아낼 수 있는 나라를 바란다. 그 곳을 경작하고 자신만의 계절을 겪고 성장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무한경쟁시대라는 거창한 시간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08/01/15 [05:27] 여성주의 저널 <일다> 기사 바로가기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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