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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들을 통해 배운 권리의식  
 
아이들은 내게 많은 말과 질문을 한다. “선생님, 생각이 안 나요!” “오늘은 저희가 일찍 왔으니까 일찍 끝나나요?” 등등, 지나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온갖 요구 사항들 앞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너희들은 ‘생각 안 나요’라고 말할 권리가 없어. 이 수업은 생각하는 공부니까, 생각날 때까지 열심히 생각해라!”, 또 “그럼! 5분 일찍 시작하니까, 너희들은 5분 일찍 끝내달라고 할 권리가 있어.” 등등.
 
‘권리가 있다’, 또는 ‘권리가 없다’라는 말을 아이들이 잘 이해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이 이해하든 말든 그렇게 말하곤 한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 표현은 프랑스에서 아이들을 통해 배운 것이다.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해 피 흘린 조상을 둔 국민답게 프랑스 사람들은 권리의식이 발달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권리를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 ‘권리’를 자주 들먹인다는 것이다.
 
세 들어 살던 집의 부모가 모두 외출해, 내가 아이들을 돌보던 어느 날 밤의 일이다. 세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양치질도 마쳤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놀이를 즐기던 중, 만 세 살인 뤼시가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마룻바닥에 머리를 찧은 뤼시는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뤼시를 안고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아이가 울음을 그칠만한 여러 것을 제안했는데, 그 중 하나가 “사탕 줄까?”였다. 뤼시는 그 와중에도 도리질하며 울면서 말했다.
 
“흐흑.. 아안 돼! 나나는 양치질하면 흐흑.. 사탕 먹을 흐흑.. 권리가 없어!”
 
한편, 프랑스 아이들을 재우는 건 정말 쉽다. “애들아! 자러 가자!” 내가 이렇게 말하면, “조금만, 조금만 더 놀자!” 아이들은 조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흠! 무슨 소리! 아이들은 9시 넘어서 놀 권리가 없어! 자, 그만 자러 가자!”
 
나는 이 말을 두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말이 끝나면, 아이들은 바로 풀이 죽어 잠자코 나를 따라 나선다.
 
게다가 프랑스 어린이들은 횡단보도를 혼자 건널 권리가 없다(아동보호 정책으로). 그래서 혼자 뛰어 가다가도 건널목 앞에서는 항상 멈춰 선다. 한번은 에띠엔느와 뤼시를 어린이 집에서 데려오고 있었다. 뤼시는 내 손을 잡고 걸었지만, 만 7세인 에띠엔느는 혼자서 씩씩하게 뛰어갈 때가 더 많았다.
 
그런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횡단보도 앞에서 바로바로 멈춰 나를 기다리던 에띠엔느가 찻길을 맘대로 씽씽 건너는 것이었다.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에띠엔느, 멈춰! 멈춰!”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뛰어가 찻길을 건넌 에띠엔느를 잡아 세우고는 무섭게 “혼자 찻길을 왜 건넜지?” 하고 다그쳤다. 나의 다그침에 에띠엔느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생일이 지났기 때문에) 어제부터 난 찻길을 혼자 건널 권리가 생겼어!” 나는 그 말에 “그랬구나!”하고 바로 수긍을 했다.
 
하지만 이런 권리가 내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집 밖에서 ‘인라인 스케이트타기’가 바로 그것이다.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 앞은 바로 차길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게 하지는 않았다. 그럴 때면 에띠엔느는 “인진! 나는 우리 집 앞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권리가 있어!”하고 주장했다.
 
“나도 알아! 그러나 권리가 있어도 안 돼! 그 권리는 네 부모님이 계실 때 요구하도록 해라! 나하고 있을 때는 절대로 안 돼! 너는 여기서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야 돼!” 나는 대문을 나서지 못하게 하고, 한 5미터 남짓 되는 복도를 가리켰다. 에띠엔느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대신 복도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자신의 권리가 행사되지 못하는 것을 몹시 억울해 하며 앙앙 울었다. 그렇게 울거나 말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는 절대로 집 밖에서 타지 못하게 했다.
 
우리 아이들과도 생활 속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넓은 의미의 ‘인간의 권리’나 ‘아동의 권리’에 대해서는 공부하고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삶 속에서의 권리는 공부하지 않고 있다. 생활 속에서 나는 어떤 권리가 있고, 또 어떤 권리가 없는지, 그것은 합리적인지, 또 앞으로 더 획득되어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 등.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함께 공부를 해봐야겠다.
 
권리의식이 잘 형성된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정인진의 교육일기일다 -> 세상에 배고픈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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