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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교육일기] 독후감을 꼭 써야 할까? 
 
성원이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스스로 책 읽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상담을 청한 이후, 몇 차례 통화를 더 했다. 그 때마다 내가 일러드린 대로 했더니 성원이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말씀을 전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늘 감동으로 가늘게 떨렸다.
 
성원이 어머니는 선생님 덕분이라며 나에게 공을 돌렸지만, 말씀 드린 걸 실천한 어머니가 더 대단해 보였다. 상담을 청하는 많은 부모에게 이런 저런 처방을 말씀 드리곤 하지만, 실천한 분은 성원이 어머니가 유일하다.
 
무엇보다 성원이의 빠른 변화에는 나도 많이 놀랐다. 어머니와 의논할 당시,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적어도 1년 이상 또는 2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 드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채 몇 달 되지 않아, 성원이는 혼자서도 책을 뽑아 읽고, 재미있게 읽은 것들은 묻지도 않는 엄마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기고 한다는 것이다.
 
또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가는 날 외에도 혼자 수시로 도서관을 드나든다고 했다. 나도 혼자 책을 읽으러 온 성원이를 도서관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성원이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신 건 <독서 감상문> 때문이었다. 스스로 책 읽는 데 흥미가 부쩍 늘고 있던 성원이는 학교에 제출하는 독후감 쓰기에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독후감은 아이에게 아직 무리라고 판단해서 쓰지 않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성원이가 자기도 이제부터는 독후감을 써서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어머니께 독후감은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묻더란다.
 
아이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리 정인진 선생님께 여쭈어보자!”하며 서슴없이 수화기를 들었노라고 전화 건 이유를 밝히셨다.
 
나는 거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독서 감상문을 쓰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것이 꼭 좋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도리어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나는 성원이가 독후감을 꼭 쓰고 싶다면, 느낀 점을 중심으로 마음대로 쓰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어렸을 때, 내가 싫어했던 것 중 하나는 독후감 쓰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책들이 모두 감동적인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저 그런 것도 있었고, 너무 지루해 다 읽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또 재미있게 읽었어도 느낀 점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고, 줄거리를 간추리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걸 읽고 어떻게 독후감을 써야 할까? 하는 고민에 책에 몰입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
 
다행히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지금처럼 독후감 쓰기를 요구하지 않아, 난 좀더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독후감 쓰기가 힘들어, 책이 절로 재미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경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 잊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쓰게 하면서 줄거리를 간추리게 하고, 느낀 점도 몇 줄 이상 꼭 써야 한다고 틀까지 정해주시는 선생님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학교에서도 은장, 금장 등의 상까지 줘가며, 1년에 수 십 편의 독후감을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모두 독서습관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서 행해진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이렇게 독후감을 제출하려면 책을 읽어야 하니, 상장에 욕심이 나면 열심히 읽을 것이고, 또 담임선생님께서 엄격하게 관리하기라도 하시는 날에는 꼼짝없이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은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의 독후감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는 부모님들을 정말 많이 봐왔다. 학교에서 쓰라고 강제하니 어쩔 수 없어서 쓰게 한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선생님이 너무 심하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안 쓰는 것이 좋겠고, 만약 꼭 써야 한다면 줄거리는 빼고 자유롭게 느낀 점을 중심으로, 쓰고 싶은 만큼 쓰게 하라고 권한다.
 
독후감 쓰는 것에 대해 전혀 부담 없고 재미있어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즐거움까지 인정하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니다. 독후감을 쓰면서 책에 대한 분석력을 높일 수 있고, 내용을 간추리는 능력이나 느낌을 기술하는 능력 등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책을 읽고 느낀 점 쓰는 것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독후감 쓰기를 강요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책은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독서 감상문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책에 대한 감동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또 재미없게 읽었던 것이 바로 감동적인 책이 되지도 않는다. 독후감보다 어린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관련 기사 보기]  “젖떼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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