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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7)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3월 22일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 물의 날입니다. 올해 물의 날 주제는 “건강한 세상을 위한 깨끗한 물”이라고 합니다.
 
식수를 포함하여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적절하고 적정하게 이용할 권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권리에 속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인해 크나큰 고통과 불편을 겪고 있고, 코스타리카 또한 효과적인 식수의 확보와 관리가 국가적 과제인 나라 중 하나입니다.
 
물 안 나오는 나날들
 

물을 저장하는 소녀. 유엔이 ‘물의 날’을 맞아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 ©www.un.org

우기가 물러가고 건기가 오자, 제가 살던 동네에 물이 잘 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건기에는 비가 잘 안 와서 원활한 물 공급에 어려움이 생기는 모양이었습니다.

 
처음엔 하루 중 오후 두세 시간 정도 물이 안 나오는 정도였으나, 본격적인 건기가 되자 거의 매일 오후부터 밤까지 물이 안 나왔습니다. 이르면 밤 여덟 시나 아홉 시, 때로는 열 시가 넘어야 물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물 부족 사태는 서서히 새로운 생활습관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물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서 계속 물을 저장하게 되는 것이 가장 처음으로 갖게 되는 습관입니다.
 
또한 원래 저는 등교 준비로 바쁜 아침이 아니라 저녁에 샤워를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저녁에 물이 안 나오자 샤워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게 되어, 자기 직전에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는 것으로 생활방식이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 얼른 씻고 머리도 잘 못 말린 채 학교버스를 타러 뛰어나가곤 했습니다. 학교 스텝 중 한 사람은 머리를 감는 중에 물이 뚝 끊겨 버리는 곤란도 겪었다고 합니다.
 
주로 수업 없는 주말 오후에 빨래하던 습관도 바꾸어야 했습니다. 물이 나오면 때를 가리지 않고 집 뒤뜰의 공용 세탁실에 달려가 얼른 빨래를 해두지 않으면, 빨래가 오래 밀리거나 저장해 둔 물로 손빨래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매일 하루의 반 정도는 물이 안 나왔습니다. 집 주인은 우리 세든 학생들에게 물을 받아놓고 쓰라고 큰 양동이를 하나씩 나눠 주었습니다.
 
처음엔 물을 받아놓고 쓰는 게 영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물을 맘껏 쓰지 못하고 세탁기를 자유롭게 돌리지 못하는 불편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흐르는 물로 후다닥 식전에 음식 재료를 씻고 식후에 설거지하지 못하는 것이 참 불편했습니다.
 
시간이 좀 흐르자 받아놓은 물로 살림하는 요령이 차츰 늘어갔습니다. 살림의 지혜랄 게 별로 없었던 저는 불편이 닥치자 비로소 어쩔 수 없이 물을 아끼며 미리 준비하는 자세와 절제하는 태도를 조금씩 배워나갔습니다.
 
밤에 물이 돌아오면, 그러니까 화장실 수세식 변기에 물이 차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찌나 반가운지 얼른 총알처럼 부엌 개수대로 튀어가 물을 틀어 물에 미리 담가둔 설거지거리와 야채과일 같은 것을 신나게 씻고 헹군 후, 새 물을 빈 병과 냄비 같은 것에 잔뜩 받아놓곤 했습니다.
 
가뭄에 논바닥 드러나듯이
 

유엔 물의 날 기념 바탕화면 ©www.unwater.org

일단 적응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물이 잘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일상의 궤도가 다시 또 잘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비해 점점 더 불편한 느낌도 줄어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편으로는 건기가 끝날 때까지 매일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가뭄에 논바닥 드러나듯이 인내심이 점점 동나고 있었습니다. 어떤 해에는 삼일 내내 물이 전혀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하니 상상하기도 싫었습니다.
 
원래 물을 물 쓰듯 쓰며 살다가 샤워도 빨래도 설거지도 맘대로 못 하게 된 불만의 염이 슬슬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결정적으로 불만의 도화선에 불이 붙게 된 연유는, 단지 조금 더 위에 떨어져 있을 뿐인 윗동네는 물 사정이 훨씬 더 낫더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물 안 나오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던 것입니다. 다 같이 고생하는 거랑 그렇지 않은 거랑은 매우 다르더라 이 말입니다.
 
“언제까지 계속 이럴까? 누구누구네 집은 안 이렇던데.” 제 볼이 메었는지,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랫방의 스페인 친구가 깔깔 웃었습니다. “너 슬슬 짜증이 나는구나?”
 
새처럼 지저귀며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수다를 떠는 이 깜찍한 친구는 영어와 스페인어 다 유창해서 미국인 아저씨와도 코스타리카인 아주머니와도 대화가 좀 되는 사이였습니다.
 
다 웃고 나더니, 이 친구 진지하게 “얘, 아프리카에서는 물 한 동이를 길러 더운 날 얼마나 오래 사막을 걸어야 하는지 모른대. 그에 비하면 우리는 고생이랄 게 없잖니” 라고 저를 타이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맙소사 ‘얘, 난 아프리카가 아니라 저 윗동네 이야기를 하고 있다구!’ 아마 그 순간에는 그냥 입만 쑥 내밀고 저렇게 응수해 주진 못한 것 같습니다.
 
물을 찾아서
 
학교에는 자체 물탱크가 있는 건지 공공 건물이라 물 공급을 우선적으로 해 주는 건지 물이 계속 잘 나와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정말 물 잘 나오는 동네-깨끗하고 널찍한 새 아파트가 많은 곳-에서 새로 하숙집을 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집 주인 아주머니가 저의 짜증을 눈치 챈 듯-대화가 되는 스페인 친구가 스페인어로 전달한 눈치입니다- 계속 이렇진 않을 거라고, 정 안 되면 집에 물 탱크를 새로 설치할 거니까 걱정 말라고 제 방까지 찾아와 저를 안심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실제로 그로부터 며칠 후, 집 주인의 말대로 물 사정이 극적으로 나아졌습니다. 평일에는 물이 계속 나오고 주말의 하루 정도만 물이 안 나오는 수준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주말의 어느 날에는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물이 안 나온다고 사전 통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예정보다 물이 늦게 나갔다가 훨씬 빨리 돌아왔습니다. 이러면 횡재한 것처럼 하늘을 날듯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정이 확 좋아지게 된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관청에 강력히 항의한 결과였습니다. 물 수급 관리를 하는 지역 관청이 윗동네에 비해 우리 동네에 대한 물 공급을 불공평하게 현저히 줄여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 동네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소동의 와중에 어느새 건기도 막바지에 이르고 간간히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우기가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코스타리카의 식수 문제

 
작년에 유엔 인권이사회는 코스타리카 국민들이 안전한 식수와 위생에 대한 권리를 잘 보장 받고 있는지에 대해 특별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런 조사가 실시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코스타리카의 식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조사결과보고서는 코스타리카의 식수실태에 관해 그간의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각한 불평등이 발견된다고 지적하면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1) 국민의 약 18%가 여전히 관련 인프라의 부재로 먹을 물을 쉽게 구하지 못하고, 인간배설물과 폐수의 63%가 직접 강과 하천으로 배출되며, 폐수 중 단지 3.5%만 자연환경으로 배출되기 전에 적정하게 처리된다.
 
2) 토착민, 사회빈곤계층, 이민자, 아프리카계 주민 같은 이른바 사회 약자들은 종종 먹을 물과 위생을 누리지 못한다.
 
3) 코스타리카(특히 북부 해안지역)에서 현재진행 중인 부동산 개발과 관광산업이 현지 주민들의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고, 장기적으로 수자원과 자연환경 보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그러고 보면 코스타리카에서는 재활용쓰레기를 따로 구분해서 버리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도착해서 집 주인에게 재활용쓰레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여기는 그런 거 구분 안 한다고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수도 산호세 시내로 가는 길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던 풍경도 떠오릅니다. 길 막히고 시끄럽고, 이른바 개발의 현장이었던 셈입니다.
 
물 좀 주소!
 
올해 1월 초 코스타리카 국내 뉴스에 발표된 수도 산호세 주변 물 수급관리대상 지역목록에서 제가 살던 곳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아무쪼록 올해에는 윗동네 아랫동네 사이에 불공평하게 물이 공급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스페인 친구의 말이 맞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코스타리카 해안지역에서, 세계 각지에서 안전한 식수를 구할 수 없어 분투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가 겪은 일들은 고생이랄 게 없었습니다.
 
공평하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물을 나누고 평화롭게 자연과 공존하기 위하여, 우리 각자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천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물의 날”입니다. 
ⓒ일다 www.ildaro.com  다른 기사 보기-> 코스타리카의 ‘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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