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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4) *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코스타리카의 아레날 화산 ©출처- arenal.net

지난 달 9일 저녁 집에 있는데 바닥이 쿨렁 하고 흔들렸습니다. 무엇이 왔는지 바로 감지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땅이 흔들리는 것, 지진입니다. 1978년에 지진 계기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수도권에서 규모 3.0 이상의 지진은 처음이라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작년 2009년 1월 코스타리카에서도 집이 흔들렸습니다. 서울에서와 달리 훨씬 굵고 강했습니다. 마치 덤프트럭이 와서 쾅 하고 건물을 박고 달아나 버린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도 6이 넘는 꽤 큰 지진이었습니다. 스물 다섯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화산이 움직인다
 
코스타리카는 지진이 잦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화산고원지대와 해안저지대로 이루어진 코스타리카에서 지진은 화산의 움직임으로 직결되기도 합니다.
 
잠잠해 보이는 화산이 언제 어떻게 활동을 개시할지 알 수 없습니다. 화산의 침묵은 종종 대단히 길어서 완전히 호흡을 멈춘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느닷없이 실은 그렇지 않다고 소리 내며 지축을 뒤흔들어 세상을 경악하게 합니다.
 
코스타리카의 유명한 관광지인 아레날 화산은 자그마치 400년 동안 침묵하다가 1968년에 돌연 폭발하여 근처에 있던 세 개의 마을이 용암으로 뒤덮여 사라지고 주민 87명의 목숨을 앗아간 괴력을 보인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 1월에도,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수도 산호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145년 만에 어느 화산이 폭발하여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코스타리카 최초의 여성대통령 라우라 친치야
 

코스타리카 대통령 라우라 친치야 ©laurachinchilla.com

한국 수도권에서 지진이 나던 날로부터 이틀 전인 2월 7일 코스타리카에서는 그 나라 역사에 또한 라틴 아메리카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날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코스타리카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된 라우라 친치야는 코스타리카뿐만 아니라 중미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중남미 전체에서는 통산 다섯 번째 여성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 정부의 부통령 및 법무장관으로서 현 대통령 오스카 아리아스(중미 내전 종식을 위한 노력으로 198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여당후보, 중도적 시장경제주의자, 가톨릭 신자, 낙태 및 동성결혼 반대자.
 
당선 직후 보도된 프로필과 인터뷰로 드러난 내용을 보건대 그녀는 코스타리카 체제 전반의 지각변동을 불러오기보다는 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고 기존 주류의 사회문화적 전통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국정 운영을 해 나가리라 예측됩니다.
 
◇“칠레 전체가 젤리처럼 흔들렸다”
 
삼월을 목전에 둔 지난 달 27일에는 칠레가 “마치 젤리가 흔들리는 것처럼(AFP 통신)” 휘청거렸습니다. 칠레 해안지역의 어느 도시에서는 "땅이 흔들리고 채 몇 분 만에 바닷물이 집으로 쏟아져 들어와 목까지 물이 차 올랐다"고 합니다.
 
아이티 역시 올해 1월 강진으로 인해 엄청난 재해를 겪었습니다. 아이티와 칠레의 이번 지진사례를 비교해 놓은 언론기사를 보면, 두 나라에 닥친 지진의 특성이 다르고 지질 환경이 다른 것도 주요한 이유이지만, 칠레는 역사적으로 지진을 자주 겪어온 국가이기 때문에 지진에 대비하는 시스템이 여러 모로 갖추어져 있어서 지진피해가 아이티에 비해 훨씬 적었다는 분석이 나와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아이티 지도자와 칠레 지도자, 구체적으로 말해 대통령들이 보인 행보도 크게 달랐다는 점이 지적되어 있습니다. 아이티 대통령은 지진 직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나타난 이후에도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반면, 칠레 대통령은 직접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국민들에게 계속 지진상황을 속보로 알리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는 것입니다.
 
◇칠레 최초의 여성대통령 미셸 바슐레
  

‘여성의 건강과 취업’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칠레 최초의 여성대통령 미셸 바슐레 © daylife.com

"자연의 힘이 다시 우리나라를 덮쳤습니다." 1960년에 이미 사상 최악의 지진을 겪은 칠레에 다시 대지진이 닥쳐왔음을 확인하며 칠레 대통령 미셸 바슐레가 한 말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국방장관 시절에 모자를 눌러쓰고 탱크를 탄 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덮친 홍수 속에서 구조작전을 지휘하여 이미 칠레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습니다.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로 부르는 미셸은 세 자녀를 둔 싱글맘으로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를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칠레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호칭과 더불어 세계 언론으로부터“전직 국가원수나 정치지도자의 아내가 아니면서도 선거에 의해 당선된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호칭 또한 얻었습니다.
 
칠레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기 전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부터 지낸 미셸은 보건장관 시절에는 성범죄피해여성들에게 사후피임약을 무료공급하는 조치를 취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14세 이상의 여성에게 부모의 허가 없이 사후피임약을 무료공급하는 대통령령을 발하여, 논란의 한가운데에 기꺼이 섰습니다.
 
‘여성의 건강과 취업’을 공약의 전면에 내세워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그녀는 정치인 모임에서 “인생에서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 꿈이 뭔지 알고 싶나요? 아주 심플해요. 연인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니는 거죠.”라고 답하여, 함께 자리한 남성정치인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고 합니다(2005년 11월 22일 영국 가디언(Guardian)지와의 인터뷰).
 
◇칠레 현대사와 미셸의 개인사
 
미셸의 개인사는 칠레 현대사와 더불어 설명되어야 합니다. 1970년에 선거로 선출된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장군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1973년 군사쿠데타로 피노체트가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고 난 뒤, 망명을 거부하고서 반역죄 죄목으로 몇 달 동안 감금된 상태에서 고문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 뒤 미셸과 그녀의 어머니도 쿠데타세력에 의해 감금되고 가혹행위를 당하였으며, 결국 호주로 망명했다가 동독을 거쳐 1979년에야 다시 조국 칠레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미셸이 대통령 업무를 시작한 첫 해인 2006년 12월에 피노체트는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2006년 3월에 취임한 미셸은 높은 지지율을 자랑해왔지만, 칠레에서는 대통령의 연임이 금지되기 때문에 오는 3월에 4년의 임기를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미셸의 뒤를 이어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남성은 지난 선거에서 그녀와 맞붙었다가 패배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마침내 대통령의 꿈을 이룬 칠레 최고의 부자 금융기업가입니다.
 
◇흔들리는 대지
 

미셸 바슐레 대통령이 지난 2월 지진이 발생한 현장을 방문했다. © daylife.com

3월 1일 현재 칠레는 여진의 공포 속에 있습니다. 대지는 여전히 흔들리고 생명은 아직 위태롭습니다. 칠레의 신임 대통령 당선자가 벌써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고는 하지만, 미셸 바슐레 대통령은 이임의 그날까지 지진피해 현장을 계속 누비고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미셸은 칠레의 강진 일주일 전인 2월 20일에 아이티를 방문하여 여성부 장관과 여성단체활동가들을 만나, 재해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을 근절하고 재해 이후의 질서회복과 사회건설에 여성의 참여기회를 보장해야 하는 점을 강조하면서, 재해 상황에서 더욱 취약하고 열악해질 수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려하는 양성평등적 관점의 재해정책 수립을 촉구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대통령 당선자 라우라도, 미셸이 아이티를 방문하여 그랬던 것처럼, 칠레의 지진피해현장을 방문하여 재해의 와중에 벌어지는 성폭력과 성차별을 직면하고 자연의 힘이 덮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한 ‘자매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진정한 라틴 아메리카적 연대와 자매애를 몸소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위의 글 중 칠레의 대통령 미셸 바슐레의 삶과 이력에 대한 내용은 en.wikipedia.org와 daylife.com으로부터 참조했습니다. 프랑스 혈통인 미셸 바슐레는 자신의 아버지가 발음한 대로 불어 식 발음으로 이름이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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