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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소피 브라슴의 <숨쉬어>
 
사춘기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시간으로 기억된다. 가족, 학교, 취직으로 표상되는 사회는 소녀들에게 억압적이고 혐오스럽게 다가온다. 그래서 사회로의 진입은 고단하다.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이니드는 유령과도 같은 답답한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 싫어서, 결국 그곳을 떠나는 버스를 타버린다. 하지만 미리 정해진 규범이 아닌, 자신만의 무엇을 추구하는 것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성장은 그 어떤 것이건 미숙한 자신을 드러내고 부딪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힘들다. 버스를 타고 떠나는 이니드의 뒷모습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열여섯 살의 소녀 작가 안 소피 브라슴의 <숨쉬어>는 살인을 저지른 어느 소녀의 고백담 형식을 취한 소설이다. 화자는 감옥에서 글을 쓰는 열여덟 살의 소녀 샤를렌 보에. 그녀가 죽인 사람은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사라다.

왜 어린 소녀가 살인을 했을까? 이런 궁금증은 독자들을 쉽게 책 속으로 이끈다. 화자는 작가 자신과 잘 구분되지 않는데, 이는 소설이 자신의 열정적인 감정을 마구 쏟아낸 일기장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치료를 위해서 썼다는 샤를렌의 고백처럼 소설은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성긴 텍스트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화자의 생생한 자기 고백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화자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혈기와 열정으로 가득 찬 다루기 어려운 소녀”였다고 고백한다. 사이가 좋지 못한 부모님 때문에 일그러진 가정, 사랑했던 친구 바네사와의 이별, 공부에 대한 중압감 등 마음 편히 발 붙일 곳 없는 상황들 속에서 그녀는 늘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그녀는 ‘여성적’이지 못한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부드러운 몸매와 예쁜 얼굴을 갖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힌 샤를렌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나 그 노력들은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매력적인 여자아이 사라가 나타난다. 사라는 샤를렌에게 친구하자며 다가온다. 그녀는 “다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아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매혹되며, 샤를렌 역시 사라에게 빠져든다. 샤를렌은 사라의 욕망을 관찰하며, 사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쓴다. 그녀는 혐오스러운 이 세상과 자신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 사라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녀에게 사라는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했던, 그 무엇이다. 샤를렌은 “사라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사라는 샤를렌의 미숙함과 의존성을 파악하고 그녀를 철저히 이용한다. 사라는 친구들 앞에서 샤를렌을 무시하고 놀리며 기쁨을 얻다가도, 샤를렌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사과하면서 그녀를 다시 붙든다. 샤를렌은 사라가 미워서 그녀에게 상처 주고 싶은 마음과, 사라를 숭배하고 좋아하는 마음 가운데 갈등한다. 결국 샤를렌은 자신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사라를 향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강박적으로 사라에게 집착하는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사라를 죽인다. 사라를 죽이자 비로소 그녀는 해방감을 느낀다.

독자의 시선에서 사라는 실제로 존재할 법한 리얼한 캐릭터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자의식이 강한 샤를렌의 눈을 통해 투영되는 사라는, 조숙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사악하고 교활한 소녀다. 사라는 샤를렌를 파악하고 분석하며 다그치고 괴롭히는 어른과도 같은 존재며, 한편으로는 샤를렌의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다. 샤를렌은 연애도 잘하고, 어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며, 친구들을 조종할 줄 아는, 무엇이든지 잘하는 사라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이 같은 완벽함은 사라가 예민한 샤를렌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사라와 같은 존재에 대해 애증에 사로잡힌 샤를렌의 내면은 친숙하게 다가온다. 즉 샤를렌을 살인죄로 몰고 간 강렬하고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익숙한 것이다. 진부한 세상에 대한 혐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한 혼란스러움,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에 대한 강한 믿음과 사로잡힘은 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사춘기 소녀들의 혼란스러운 모습 그대로다.

<숨쉬어>는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숙고해서 썼다기보다는, 떠오르는 단상을 단숨에 써낸 습작 같다. 이는 열여섯 살이라는 나이-경험을 반추할 만한 시간이 없다-의 한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숙하고, 지나치게 감정이 흐르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창조해 낸 세계는 자신만의 감수성에 천착하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느낌을 잘 전달한다.

<숨쉬어>가 프랑스에서 출판된 지 사흘 만에 5천부가 팔려나갔다는 것은 이 소설에 자신들의 내면이 있는 그대로 반영됐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입증해 주는 것이 아닐까. (김윤은미)   일다는 어떤 곳?

[필자의 다른 글] 자신을 찾아나선 미국 흑인여성문학 | 순간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찰나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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