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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묻혀져 있던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농사이야기, 환경이야기, 먹거리이야기, 농부로 살아오면서 겪은 여성들 삶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미래의 대안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농업과 생태감수성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도-농 격차와 여성농민이 겪는 차별과 소외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필자 이수진님은 충북 괴산에 귀농한지 3년째 되는 농부이며, 올해 딸을 출산해 부모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지역농민들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농부학교’를 기획, 진행하는 등 풀뿌리 환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일다>
 
①나에게 귀농이란
 
2006년 12월, 이곳 괴산으로 내려왔다. 함께 살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결혼 전 유럽과 아시아의 생태공동체를 여행하면서 막연하게 ‘돌아가면 시골로 가자’ 했다. 물론 아주 현실적으로는, 날로 치솟는 서울의 전세 값을 쫓아갈 수 없었고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었던 동네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귀농’이란 말은, 낭만의 정서와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꽤나 강하다. 아마도 그건 삭막한 도시의 이미지와, 살아가기 퍽퍽하고 고달픈 현실에 대한 대항의 정서가 드러나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 귀농에 있어서 낭만과 아름다움은 스스로 시골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채워질 수 있는 것이지, 시골 그 자체가 낭만과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 시골생활은 더더욱 그렇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이지만 농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전근대를 벗어나려면, 아마도 수 십 년은 더 흘러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생활이 더 좋은 이유는 아니,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자연이 품어주고 자연이 말해주는 살아있는 배움의 공간이자 쉼의 공간이 이곳 농촌, 시골이기 때문일 것이다.
 
②첫 시골생활. 겨울 그때
 
마음의 결정과 달리, 막상 짐을 챙겨 내려올 때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진짜 잘 해낼 수 있을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과연 먹고 살 수는 있는 걸까? 너무 일찍 내려온 건 아닐까? 도시가 주는 무한한 문화적 혜택에 소외되는 건 아닐까?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너무 쉽게 포기한 건 아닐까? 등등 셀 수없이 많은 걱정들이 오버랩 되었다.

 
시끌법석한 이사를 마치고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후 적막함과 고요함이 긴긴 겨울의 일상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추위와 외로움과 예상치 못한 우울함까지. 앗! 낭만과 아름다움은 다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현실은 추웠고, 심하게 불편했으며 한없이 펼쳐진 나른하고 고요한 일상으로 순식간에 변해있었다.
 
한동안 우린 몇 가지 현실 1)혹독한 추위 2)외로움과 그리움 3)새로운 관계 4)막연한 시골생활과 같은 난관에 부딪쳤고, 그것을 하나하나 헤쳐 나가는데 그 해 첫 겨울을 보냈다. 시간이 약이기도 했고, 급한 마음이 독이기도 했으며,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는 우리의 습성이 화를 불러왔지만, 역시나 조금씩 천천히 긍정하는 자세가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③할머니로부터 배운 지혜

 
“할머니, 콩은 언제 심어요?”

“모를 내야 심지.”
“모는 언제 심어요?”
“고추를 심어야 심지.”
“고추는 언제 심어요?”
“내가 심을 때 심어.”
 
이 말은 내가 귀농한 첫해 농사를 계획하면서 동네할머니에게 물어보던 중 나왔던 마주이야기 같은 거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띵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으며 이해도 안 갔다. 언어의 체계가 다른 것 같기도 했고, 숫자에 익숙한 나의 이해방식에 한 방 맞은 느낌이랄까?
 
지나고 보니, 그때 난 할머니로부터 수십 년 동안 쌓인 지혜를 배웠고, 농사를 해가면서 할머니의 말이 정답임을 알았다.
 
그 후로 간혹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갑자기 집으로 들어와 새벽잠을 방해할 때도 있고, 뭔가 분위기 파악 못하시고 마실 오셔서 오랫동안 놀다 갈 때도 있다. 약 안치고 농사짓는다고 잔소리를 듣기도 했고, 농사를 그렇게 져서 우짤라고 그러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사실 무지하게 듣기 싫고 어떤 때에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냥 듣는다. 거기에는 관심이란 놈도 있고, 그분들의 삶도 있고, 내가 배워야 할 지혜도 있기 때문이다.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 땅의 농사를 지켜온 이들이다. 그분들이 관행농사(농약과 화학비료를 이용하는)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땅과 맺은 평생의 인연을 쉽게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존경스러울 뿐이다.
 
토박이 이웃들을 경계하기보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초보 귀농인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설사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분이어도, 그/그녀가 가진 지혜는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것이니까 말이다.
 
④작물을 키우고 동물을 기르는 기쁨
  
내가 만일 시골에 와서 작물을 키우지 않았다면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었을까? 70세 할머니가 어느 날 당신 텃밭에 심어놓은 채소들을 보고 “신기하지?” 하신다. “요놈들 자라는 거보면 참 예쁘고, 신기하고 재밌어.” 와, 농사가 재밌다니 참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사실 시골노인들은 농번기에 죽도록 일하신다. 해 뜨고 질 때까지 쉴새 없이 몸을 움직이시는데, 그 사이에 재밌다는 표현은 좀 오버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농사라는 세계에 조금씩 발을 담그면서, 키우는 재미에 빠지고 먹는 재미를 느끼고 거기에 나누는 기쁨까지 누리려니 그 말이 조금씩 이해되었다.
 
우리는 첫해 토종 닭 2마리를 키웠는데 그놈들이 알을 낳고 병아리를 까더니 연실 우리 집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주고, 훌륭한 거름까지 돌려주었다. 작물을 키우고 동물을 기르는 것이 인간의 심성을 이토록 천진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참 놀랐다.
 
귀농을 생각하면서 겁 없이 큰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아주 소심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다. 내 생각엔 큰 농사든 작은 농사든 상관없이, 평소 키우고 싶었던 채소들을 길러보고 그놈들에 대한 공부도 하고, 그러다 보면 병충해에 대해서 거름에 대해서 자연스레 공부하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내가 먹는 음식, 똥 그리고 순환식 농법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허접하더라도 1년 농사를 짓다 보면, 그 다음해 농사를 계획할 때 내가 지난 1년간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 자기 자신에게 무척 놀라게 될 것이다. 겁내지 말고 이것저것 키우고 싶은 거 키우기.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커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⑤그대의 꿈 그리고 나의 꿈, ‘자급자족’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씀이, 시골에서는 굶지는 않는단다. 뭐 도시에서도 마찬가진데 웬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지 했는데, 여기서 굶지 않는다는 말은 ‘사서 먹을 일이 없다’는 거다.

 
귀농 첫해 300평 밭에 50가지 넘게 심었다. 덕분에 겨울이 될 때까지 정말 바빴다. 근데 재밌는 건 다음해 양념을 거의 사지 않았다는 거다. 고추장, 된장, 간장을 담갔고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마늘, 파 등의 기본양념은 농사를 통해 얻었고, 흰콩, 서리태콩, 쥐눈이콩, 땅콩에 팥까지 죄다 수확한 놈들로 그 다음해 꽤 오랫동안 먹었고, 심지어 조금이지만 팔기도 하고 나누기도 했다.
 
이 정도면 50%는 자급인가? 거기에 감자를 비롯한 각종 채소들이 철마다 나왔고, 산나물 들나물 자연산 버섯까지 따지면 꽤나 웰빙스런 식단이 넘실댔었다. 자급이라고 말하기엔 굉장히 소박하지만, 여하튼 두 식구 사는데 큰 걱정이 없었으니 이 정도면 훌륭하다 생각한다.
 
자급자족은 ‘그대의 꿈 그리고 나의 꿈’이지만, 꽤 단시일에 이루어지니 이 정도면 누구든 도전해 볼만 할 것이다.
 
⑥시골에 온지 3년, 현재
  
시골에 온지 만 3년이 되었다. 설렘으로 시작한 시골생활에서 점점 구체적인 것들을 고민하게 되었다.

 
터전을 마련하는 일과 농사의 내용과 규모, 시골생활을 풍성하게 해줄 문화와 즐길 거리, 가깝게 지내며 마음을 나누게 된 형님/언니들과 배우고 나눌 거리,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던 ‘마을에너지 자립’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등에 대한 것들이다.
 
터전을 마련하려다 보니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가지고 있는 돈이 별로 없으니 욕심을 줄여야 하고, 욕심을 줄이려니 그게 쉽지 않다. 3년을 보내고 나니 농사도 보이고, 살아가면서 취할 것과 버릴 것, 잊지 말아야 할 것과 놓아도 될 것들이 나뉜다.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라 상처도 주고 상처도 받고 신뢰와 믿음도 나눴다.
 
때때론 일이 너무 힘들어 내가 이 짓을 왜하고 있지? 반문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도시로 돌아갈 이유가 되진 못한다. 조금 가난하고 조금 불편하지만 그 또한 도시로 돌아갈 이유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⑦귀농에 정답은 없다. 천천히 조금씩
  
누군가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 자리에서 큰소리로 ‘네’라고 대답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소박하더라도 값진 보물이 참 많은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귀농에 정답은 없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는 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100명의 귀농인에게 100가지 색이 난다면, 그만큼 시골은 풍성할 테니 말이다.
 
만일 당신이 귀농을 원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부딪히길 권한다. 도시에서 돈을 마련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기술을 배우며 준비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부딪히며 헤쳐 나가고 몸은 고달프지만, 조금씩 천천히 시골을 알아가고 일상을 채우다 보면 어느새 당신은 당신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 3후, 5년 후, 10년 그리고 20년 후 우리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이수진의 귀농이야기]
 
[농업] 농사짓는 십대, 땅과의 인연| “얼굴있는 생산자가 되고싶어요” |토종씨앗은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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