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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역도서관을 서고로 이용해보자 
 
몇 년 전, 고교시절 이후 애지중지 사 모은 엄청난 양의 책들을 정리했을 때만 해도, 이젠 읽고 또 읽을 것들만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왜 그렇게 책 사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라면으로 식사를 때워가며, 때로는 굶어가면서까지 사들인 치열함이 서글펐다.
 

이미지 출처-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

‘세상에 꼭 보관할만한 책은 없다’는 걸 깨닫는데 꼭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렇게 여러 번 책을 정리하고도 내겐 너무 많은 책들이 남아있었고, 또 짬짬이 몇 권씩은 사기도 했다.

 
지난 주에는 그렇게 남아 있는 책들 가운데, 문예이론과 미학 책들을 시를 쓰는 한 친구에게 모두 보내주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책들을 다시 볼 일 없겠다는 마음에서였는데, 그것은 어쩌면 그 동안 포기하지 못하고 있던 문학에 대한 스스로의 포기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책을 사보기 힘들다는 한 지방의 대학생에게도 몇 권 챙겨 보냈다. 요즘 나는 책에 대한 욕심이 정말 많이 줄었다. 책을 읽고 나서 연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아낌없이 지인들에게 주기도 하고, 도서관이나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관심도, 감동도 바뀐다는 사실
 
학창시절의 부모님은 매우 알뜰하신 분들이셨지만, 자녀들의 도서 구입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나 책에 대한 내 욕심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나는 식사값을 아껴가며 책을 사곤 했다. 당시, 점심 한끼 값으로는 시집 한 권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굶어가며 사서 읽은 책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책을 빌려 읽다가 너무 감동적이다 싶으면, 그걸 사고 싶은 마음에 읽는데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빌린 책을 바로 돌려주고 다시 사서 읽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책에 대한 욕심이 하늘을 찔렀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는 그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책값이 너무 비싸다. 빠듯한 유학생활을 하면서, 공부에 필요한 책을 척척 살 수 없다는 경험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책을 사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라야 일주일에 몇 시간 아이들 돌보기 정도였지만, 그래도 난 그 일을 하면서 갖고 싶은 책들을 살 수 있었다. 또 대학 앞에 늘 펼쳐지는 노점 헌책방에서 보물찾기하듯 읽고 싶은 책들을 찾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은, 책을 사는 것이 저축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저축하는 마음으로 책을 샀었다. 그러나 ‘책을 사는 건 돈 아까운 일’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 후 몇 년이 지나,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였다. 대학시절 이후, 책꽂이를 채우고 있는 그 책들을 주욱 훑어보는데, 앞으로 다시 읽을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되는 책들이 정말 너무 많았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먹고, 또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관심과 생각이 바뀐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예전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내가, 예전에 감동하며 읽었던 바로 그 책을 여전히 감동적으로 읽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열중하고 있는 관심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그래서 그것들이 인생 내내 내게 나침반과 같은 길잡이가 될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깨달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좋은 책을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역도서관
 
요즘은 각 지역마다 도서관도 잘 갖추어져 있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의 한 수도권 지역인데, 우리 집에서 이용하기 쉬운 위치에 시립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은 연구를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기에는 부족함 없는 양을 보유하고 있다. 또 없는 책은 신청하면 구입해 주기도 한다. 나는 요즘은 그곳을 내 서고로 이용하고 있다.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자주 들르는 곳도 바로 그곳이다. 동화책은 정말 너무 많다. 지난 6년 간 그곳에 있는 동화책들을 읽으며 ‘어린이 철학 프로그램’을 다 만들었고, 지금은 ‘어린이 독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아직도 그 책들을 다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만나는 학부모님들 가운데는 책에 대한 생각이 예전의 나와 비슷한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동화책으로 한 벽면 정도 채워놓지 않은 집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그런 부모님들께 “세상에 꼭 살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히세요” 라고 말씀 드리곤 하는데, 대부분은 여전히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시다. 아이들이 더 자라 그 책에 손을 대지 않게 되면, 그때서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까?
 
물론, 이렇게 정리를 했다고 해서 내게 꼭 볼 책들만 남은 건 아니다. 여전히 학창시절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았던, 하지만 절대 그 시절의 감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집들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시 그것을 읽을 거라고 여기지도 않으면서 다른 것들과 함께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인진/ 일다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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