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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메건 디 스탤리언, 변화의 목소리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은 현재 가장 존재감이 큰 래퍼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자극으로 소비하는데 급급하다. 뛰어난 랩 실력으로 곡을 끌고 가는 힘이 절대적으로 큰데도, 섹슈얼한 이미지로만 포장하며 그에게 성적 어필이나 보여달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메건 디 스탤리언은 자신의 음악을 통해, 혹은 음악 밖에서도 흑인 여성을 대변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다.

 

성적 대상화를 자처한다고? 남성 지배적 생태계를 전복시키다

 

2017년 데뷔해 이듬해부터 인지도를 모으기 시작한 그는 2019년 1월에 발표한 “Big Ole Freak”이라는 곡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지난 2년 간 메건 디 스탤리언은 크게 성장했다. 2020년에는 정규 앨범은 물론 여러 싱글이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는 2021년에 BTS의 “Butter” 리믹스에 랩을 더하며 많이 알려졌다.

 

▲ 카디 비(Cardi B)와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이 협업한 곡 “WAP” 커버. 2020

 

특히 래퍼 카디 비(Cardi B)와 협업하여 발표한 곡 “WAP”는 2020년 타임지 선정 최고의 노래 10선 중 2위, 빌보드 선정 2020년 최고의 곡 5위를 기록하는 등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4주 간이나 빌보드 1위를 기록했고, 뮤직비디오 재생 수가 4억5천만 뷰에 달하는 등 흥행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Wet-Ass Pussy’, 잘 젖은 음부라는 뜻을 지닌 이 곡은 사회적 파급력도 컸다. 여성이 섹스를 긍정하고, 자신의 성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곡인데, 이러한 콘셉트의 곡이 처음 세상에 나온 건 물론 아니다. 1990년대에 이미 릴 킴(Lil Kim)이라는 래퍼가 시도했고, 2010년대 초중반에는 니키 미나즈(Nicki Minaj)가 있었다. 니키 미나즈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의 음악과 행보에 대해 ‘과잉성욕’, 하이퍼섹슈얼리티(hypersexualit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점차 그 단어는 ‘성적 적극성’(sex positivity)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고 있다.

 

*Cardi B & Megan Thee Stallion - “WAP” M/V https://youtube.com/watch?v=hsm4poTWjMs

 

오랜 세월 동안 남성은 ‘너와 섹스하고 싶어’라는 얘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이 성적 욕망을 드러내면 그 자체로도 큰 이슈가 되곤 한다. 이제 이러한 문화를 여성 래퍼들이 바꿔나가고 있다. 메건 디 스탤리언 뿐만 아니라 시티 걸스(City Girls), 사위티(Saweetie), 리코 내스티(Rico Nasty) 등 많은 래퍼가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다.

 

그렇다고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이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성 관객은 여성 래퍼를 존중하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소비한다. 그것에 상처를 받는 래퍼도 있지만, 메건 디 스탤리언은 자신의 콘셉트와 음악적 행보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중이다. 2019년에는 “Sex Talk”를, 2020년에는 “B.I.T.C.H”, “Savage”, “Body” 등을 선보였다. 이어 올해는 세계 여성의 날이 있는 3월(미국 ‘여성 역사의 달’)에 맞춰 팝 스타 두아 리파(Dua Lipa)와 협업하여 “Sweetest Pie”를 공개했다.

 

그가 파이프를 가진 걸 알아, 새어나올 때까지 부수게 놔둬

베개 같은 엉덩이, 자는 동안 쓸 수 있지

난 케이크를 가지고 있고 맛보고 싶어하는 거 알아

난 그 야하고 못된 물건을 원해

-Sweetest Pie 중에서

 

*Dua Lipa & Megan Thee Stallion - “Sweetest Pie” M/V https://youtube.com/watch?v=K7JrX7PHGBE

 

올라타서 나는 달리고 싶어,

그게 안에 있는 동안 케겔 운동을 할거야

-WAP 중에서

 

메건 디 스탤리언은 가사를 통해서 섹스를 긍정하고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만, 야한 가사만 있는 건 아니며 자기과시에 그친다고 할만큼 단순하지도 않다. “B.I.T.C.H”라는 곡에서는 ‘근데 지금은 2020년이야, 난 트월킹에 관해 왈가왈부하지 않아’라는 문장을 썼는데, 이는 당시 트월크라는 춤에 관한 논쟁에 관한 생각을 명료하게 담아낸 한 줄이기도 하다. 엉덩이 털기 춤이라고도 얘기되는 트월크(twerk)에 대해, 누군가는 여성이 성적 대상화를 자처하는 움직임이라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흑인 여성에게는 아프리카에서 온 ‘자신들의 춤’이다.

 

‘넌 트월크나 춰라’는 식으로 무시하는 이들도 여전히 있지만, 북미 지역에서는 이제 이러한 견해는 줄어들고 있다.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메건 디 스탤리언을 비롯한 흑인 여성 음악가들이다. 이들은 트월크를 소셜 미디어 속 챌린지(춤, 메시지 등 특정 행동에 동참하는 연속적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이자 표현 수단으로 온전히 점유하는 데 성공했다. 챌린지라는 형식을 통해, 굳이 잘하거나 뛰어나지 않아도 각자가 그저 춤을 추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유도한 것에 주목하게 된다.

 

▲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의 앨범 [Good News] 커버. 2020

 

흑인 여성 래퍼들, 우린 ‘대체’하지 않고 함께 성공한다

 

메건 디 스탤리언은 2020년 GQ와의 인터뷰에서, 긴 시간 동안 남성이 섹스를 점유해왔지만 “WAP”를 통해 자신들이 ‘이봐, 이건 날 위한 거야, 난 즐겁고 싶어’라고 말하여 남성들을 두렵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 팝 스타 두아 리파(Dua Lipa)의 팟캐스트 “At Your Service”에 직접 출연하여 흑인 여성에 대해 사회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편견과, 단순화되어 비춰지는 이미지에 관해 비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흑인 여성들을 굉장히 강한 무리인 것처럼 생각하며, 흑인 여성이 뭔가를 요구하면 ‘공격적’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는 것이다.

 

같은 해 <뉴욕 타임즈>에는 지금까지의 행보에 관하여 메건 디 스탤리언이 직접 글을 써서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남성 지배적인 음악 생태계를 비판하며, 여성 래퍼 간 경쟁을 부추기는 미디어의 시선에 경종을 울렸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니키 미나즈와 카디 비, 두 명의 훌륭한 엔터테이너이자 강한 여성들과 겨루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대체자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독특하다.(따라서 같이 잘 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메건 디 스탤리언은 니키 미나즈, 카디 비와 협업하여 함께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난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두려워하지 않으며, 흑인 여성이 겪는 구조적 피해에 대해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슬로건이 ‘논쟁’이나 ‘인종 갈등’, ‘젠더 갈등’으로 교묘하게 치부되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최근 함께 싱글을 발표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두아 리파 역시, 메건 디 스탤리언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뮤지션인 두아 리파는 자신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그를 초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메건 디 스탤리언은 “WAP”의 가사가 노골적인 성적 표현의 향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한때 남성 래퍼들이 썼던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옴으로써 전복적 의미를 지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도 남성 래퍼들은 여성을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여성이 발화하는 이 한 곡에 대해서 ‘괜찮지 않다’고 여기는 시선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두아 리파는 자신의 뉴스레터 서비스인 “SERVICE95”를 통해, 저널리스트 캐시 이안돌리(Kathy Iandoli)의 글을 기고 받아 여성 힙합 음악가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은 여전히 ‘여성혐오’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 올해, 3.8세계여성의날이 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여성 역사의 달’로 기념하는 3월에 맞춰 두아 리파(Dua Lipa)와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이 함께 선보인 곡 [Sweetest Pie] 커버

 

여성 힙합 음악가들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WAP”이 발표되기 한 달 정도 전에, 메건 디 스탤리언은 동료 남성 래퍼 토리 레인즈(Tory Lanez)가 쏜 총에 맞았다. 한 파티에서 두 사람이 실랑이가 붙었는데, 화가 난 토리 레인즈가 메건 디 스탤리언의 발에 총을 쏜 것이다. 사람에게 총을 쐈음에도 토리 레인즈는 여전히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다. 메건 디 스탤리언은 총에 맞았음에도 노이즈 마케팅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여성 래퍼들은 남성 중심의 힙합 음악 시장에서 투쟁 중이다. 좋은 성과를 거두면 혐오도 그에 비례한다. 성공한 여성 래퍼에게도 일상은 투쟁의 연속이다.

 

“WAP”가 프랭크 스키(Frank Ski)라는 디제이의 “Whores in This House”(창녀들이 이 집에 있다)라는 곡을 샘플링한 것이 문제처럼 제기된 적이 있다. 해당 곡이 나왔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 곡을 샘플링하니 문제가 된 것이다. 니키 미나즈(Nicki Minaj)가 “Anaconda”를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대상화한 곡은 신나게 즐겼으면서, 그걸 샘플링해서 여성 래퍼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이야기하면 그때부터는 ‘논란’이 된다.

 

다행인 건, 메건 디 스탤리언 혼자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도 점점 더 생기고 있으며, 지지와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여성 래퍼가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참고 자료]

-미국 종합매체 바이스 산하 음악매체 <노이지> “메건 디 스탤리언 같은 래퍼들이 새로운 페미니스트 규율을 쓰고 있다”(테일러 호스킹, 2019년 8월 21일)

온라인 학술지 <글로벌 힙합 스터디> “시티 걸스, 핫 걸, 힙합과 디지털 공간에서 흑인 여성의 재이미지화”(케샤 제닝스, 2020년 6월 1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즈> “메건 디 스탤리언: 왜 나는 흑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가”(메건 디 스탤리언, 2020년 10월 13일)

-미국 음악 잡지 <피치포크> “메건 디 스탤리언이 심볼이 된 해”(라위야 카메이르, 2020년 12월 9일)

-미국 패션지 GQ, “메건 디 스탤리언: 오랫동안 남성들은 섹스를 점유해왔다, 이제 여성들은 “나는 즐거움을 원한다”고 말하는 중이다”(조나단 히프, 2020년 12월 21일)

-텍사스 대학교 교지 <애프터글로우> “여성의 음악: 카디 비, 메건 디 스탤리언, 그리고 블랙 페미니즘”(마히나 애덤스, 2021년 12월 6일)

-두아 리파의 팟캐스트 서비스95, “메건 디 스탤리언 - 에피소드 5”(두아 리파, 2022년 3월 11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메건 디 스탤리언이 두아 리파에게 자신이 ‘공격적’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에 대해 터놓고 말하다”(잉가 파켈, 2022년 3월 18일)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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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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