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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김동령, 박경태 감독 인터뷰

 

경기도 의정부 뺏벌/빼벌 마을은 한국전쟁 후 미군부대 주변에 기지촌으로 형성된 곳이다. ‘한번 빠지면 빼도 박도 못한다’고 해서 뺏벌이라고 불린다는 이곳. 여기서 살아남은 여성이 있다. 박인순. “남들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했지만, ‘내가 강해서’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사람. 어릴 적 최초의 기억이 아버지(라 생각되는 남성)가 자신을 지게로 지고 왔다가 버리고 간 것이며, 이후 짜장면 세 그릇에 팔린 사람. 이름도 신분도 없어서 죽은 여자의 이름을 사와 그 이름으로 산 사람. 그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사람.

 

▲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김동령, 박경태 감독, 2019) 포스터 (시네마달 제공)     

 

기지촌 미군 ‘위안부’의 삶을 살아온 박인순 씨의 생애는 단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말로는 담아낼 수 없다. 그의 삶엔 국가폭력의 흔적이, 가난한 여성의 생존 방식이, 이야기되지 못한 많은 존재들의 삶과 죽음이 드리워져 있다.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레이어를 가진 이 삶에 다가간 사람들이 있다. 김동령, 박경태 감독. 이들은 박인순 씨와 세 번 작업을 진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와 부엉이>(박경태 감독, 2003), <거미의 땅>(김동령, 박경태 감독, 2012) 그리고 1월 개봉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까지.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합된 실험적 장르의 극영화로, 사라져 가는 기지촌에서 살아가는 노년 여성 박인순의 삶과 애도된 적 없는 죽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을 통해 이 작품은 이야기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뚝심 있게 기지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김동령, 박경태 감독을 만나 왜 기지촌에 관한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지, 이번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와 한국 사회의 성매매 담론에 대한 솔직한 의견까지 들어보았다.

 

-박경태 감독은 <나와 부엉이>, 김동령 감독은 <아메리칸 앨리>(2009)에서 기지촌 이슈를 다뤘고, 이후 공동 연출한 <거미의 땅>과 이번에 개봉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도 기지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기지촌 이슈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지 궁금해요.

 

김동령: 2000년에 베트남 배낭여행을 갔다가 생각지 못하게 외국인 남성과 어린 베트남 여성 간의 성매매 산업 현장을 너무 많이 보게 되었어요. 한국에 돌아왔을 때 기지촌이 생각나 가보았는데, 제 예상과 달리 한국인 여성들은 없고 필리핀, 러시아 등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가득하더라고요. 놀라면서도 흥미로웠던 건, 기지촌 여성들의 이미지였어요. 고등학교 때 윤정모 작가가 쓴 <고삐>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거기 묘사된 기지촌 여성은 비참하고 악다구니밖에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실제로 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 다큐멘터리 <거미의 땅>에 이어 실험적인 극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공동 연출한 김동령, 박경태 감독. (시네마달 제공)

 

이후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상업영화 판에 가기 싫어서 놀고 있을 때 누가 통역 알바해 보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간 곳이 두레방(기지촌 성매매를 포함하여 인신매매 근절과 군사주의 반대 활동을 하는 단체)이었어요. 알바라고 소개 받았는데 가 보니 임금이 없는 일이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한 1년 넘게 상담사로 일하며 기지촌 여성들을 만났어요.

 

박경태: IMF 이후에, 지금으로 말하면 독립다큐인 비디오 액티비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카메라를 들고 현장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호감이 갔거든요. 카메라를 든 활동가로 촬영을 하러 다니다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하는 집회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연결이 되어 두레방을 알게 되었죠. 2000년대 초였나 1999년 말이었나, 두레방 활동을 하면서 몇 개월 거기서 살기도 했어요. 누님들(기지촌 여성들)이랑 밥 먹고 술 마시고 놀고.(웃음) 컴퓨터도 가르쳐 드리고 그랬죠.

 

그러다가 당시 여성부가 반성매매 교육 홍보영상을 만들어 달라 해서 지원금을 받고 영상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우리가 흔히 아는 뻔한 방식의 교육 홍보영상을 찍으려고 했어요. 근데 생각이 달라져서 기지촌 이야기를 담는 일상적이고 에세이적인 영상을 만들어버렸죠. 여성부에서 기함하긴 했는데(웃음) 그 영상이 생각 외로 뜨거운 반응을 얻어서 잘 넘어갔어요.

 

-지금까지도 기지촌 이야기를 해오고 있으신데요. 박인순 씨와의 작업이 벌써 세 번째잖아요. 한 인물을 계속 이렇게 다루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박경태: 사실 <나와 부엉이>(박인순 씨의 일상과 두레방에서의 상담과 미술치료 일기를 기록했다) 작업이 끝났을 때 인순이 아주머니가 그 영환 안 보고 싶다고 했어요. 나중에 영화를 결국 보긴 했는데 “비참하다” 얘기하시더라고요. 영화제 등에서 상영도 많이 되고 외부 반응은 괜찮았지만, 본인은 그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세요. 창작자로서 그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죠. 현장에서 ‘관계 맺기’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김동령 감독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둘이서 굉장히 많이 토론했어요. 그 고민이 <거미의 땅>과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로 이어진 거죠.

 

▲ 박인순 씨가 그린 그림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박인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라는 제목이 굉장히 강렬하고 독특해서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김동령: 우리 머리 속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창의적인 제목이죠. 인순 언니가 <거미의 땅> 촬영 당시 쉬는 시간에 뭘 그리고 있어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야” 하더라고요. ‘아, 대박이다. 다음 영화 제목은 이걸로 해야겠다’ 생각했죠. 영화 내용이 뭐가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인데 일단 제목은 이걸로 하자고.(웃음)

 

<거미의 땅>이 끝나고 인순 언니가 (미국에 두고 온) 딸을 찾게 해달라고 해서 우리가 본격적으로 수소문을 했어요. 정말 미국까지 가서 언니 딸도 찾았고요. 원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그 내용을 담으려고 했어요. 근데 인순 언니 딸이 한국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연락이 끊기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영화가 안 되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인순 언니가 ‘꿈에 자꾸 저승사자가 나와’ 하더라고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죽음과 싸우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게 된 거죠.

 

많은 분들이 임신한 나무가 여성이고 도깨비가 남성 혹은 미군을 뜻하는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인순 언니가 반복적으로 그려온 것들의 짬뽕이에요. 인순 언니 그림을 보면, 뭐든 임신을 시켜버리거든요. 새든 나무든 뭐든. 워낙 임신중지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도깨비는 인순 언니 본인이에요. 별명이 도깨비였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잘 돌아다녀서 도깨비처럼 돌아다닌다고요. 언니가 그 별명을 되게 좋아했어요. 그리고 미군이 하룻밤 동안 쓰는 달러가 어마어마했던 시절에 포주들이 엄청 돈을 버니까 ‘도깨비가 벌어다 주는 돈’이라고 했었대요. 도깨비라는 말은 인순 언니이기도 하지만 기지촌 문화, 생활 방식하고도 연결된 단어에요.

 

-영화의 형식도 독특해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합되어 있는데요. 처음부터 의도한 건가요?

 

김동령: 이전엔 어떤 삶을 지켜보고 따라다니거나 인터뷰를 하거나 하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보통 어떤 이슈를 알리기 위한 다큐를 만들 경우, 냉정하게 말하자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던 대상은 다음에 쓸모가 없어요. 이미 이야기로 써먹었으니까요. 그렇게 ‘이슈’로서 대상을 찍지 않으려고 저항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운동 차원에서 봤을 땐 ‘기지촌에서 일어난 사건이 얼마나 잔혹했고, 국가는 얼마나 폭력적이었으며,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있는지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찍는 게 맞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영화가 가진 다양한 이야기 방식이 있고, 또한 기지촌 여성들의 삶 자체도 어떤 이슈로 한정하기엔 너무 크고 깊으니까요.

 

그래서 실험을 하기로 한 거고, <거미의 땅>에서 그걸 시작한거죠. 어떤 외부를 설정해 놓고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외부의 시선에 의해 잘려나가는 게 무엇인지 집중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선 조금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죠. 사실 사전 제작 기간만 4년이거든요. 굉장히 긴 시간이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인순 언니가 “남편의 목을 잘라서 끌고 가고 싶다”고 원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담기로 한 거에요. 근데 실제로 남편 목을 자를 순 없으니까(웃음) 픽션을 가미하게 된 거죠.

 

▲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 박인순과 꽃분 역 배우가 잘린 목을 들고 있다. (시네마달 제공)

 

-박인순 님은 영화에서라도 남편 목을 잘라서 후련해하셨나요?(웃음) 생각보다 담담하시던데.

 

김동령: 그래서 그 장면을 여러 번 찍었어요. 언니한테 “언니, 우리랑 말한 게 다르잖아요” 이러면서.(웃음) 언니는 자긴 열심히 하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엔 목을 자르는 거보다 자른 모가지를 끌고 다니는 걸 하고 싶었나 했는데, 또 그거 끌고 가는 장면 촬영을 귀찮아 하는 거에요. 처음엔 “아이고, 시원하다” 하다가 몇 번 하니까 귀찮다고.(웃음) 그래서 모가지를 버리는 장면도 찍었는데 언니가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극장에서 봤을 때도 엄청 크게 웃으시고. 근데 그 장면을 찍었다고 해서 언니한테 어떤 치유가 되었는진 모르겠어요. 다만 예전보다 확실히 남편 얘긴 덜하는 것 같아요.

 

-박인순 씨 빼곤 배우가 연기를 한 거잖아요. 그런 상황이다 보니 박인순 씨가 말하는 게 실제 이야기인지 픽션인지 헷갈렸는데, 어느 순간부턴 ‘그게 중요한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그냥 빠져든 것 같아요.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했을까 궁금했어요.

 

김동령: 인순 언니는 연기를 할 수 없는 분이에요. 글을 읽거나 문자를 해독할 수 없고, 한번 내뱉은 말을 다시 똑같이 할 수 없으니까요. 인순 언니가 감독들이 원하는 걸 하긴 어려웠기 때문에, 그 부분을 채워줄 배우가 필요했어요. 언니가 꿈에서 본 거, 그동안 있었던 일, 이런 걸 이야기하기 위해선 상대방이 필요하니까요. 그런 상대방을 데리고 와서 “언니, 우리가 카메라를 이렇게 찍을 건데 언니가 그 때 이 사람을 보면 되요, 어떤 행동을 하면 돼요” 라고 알려주면 언니가 자기 하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배우를 섭외할 지가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인순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혹은 행동을 보고 즉흥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연기할 때 자기한테 빠지는 배우면 안 되었거든요. 자기 감정이 중요하고 그 역할에 빠져야 연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순 언니와 교류할 수 있고 능동적인 배우여야 했어요. 오디션을 볼 때 이런 이야기들을 했고, 배우를 선정하고 나선 인순 언니와 산책을 한다던가 집에서 그림을 그린다던가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게 했어요. 정말 좋은 배우들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전작 <거미의 땅>도 그렇고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도 어떤 장소가 단지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동령: 기지촌의 역사나 이야기 속에서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굉장히 커요. 그래서 영화 찍을 때 워낙 자주 다녀서 잘 아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공간 푸티지(일정 길이의 필름)를 엄청 많이 찍었어요. 같은 장소인데 비오는 날 찍고, 맑은 날 찍고, 아침에 찍고, 해질녘에 찍고, 밤에 찍고… 그렇게 찍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상상했어요. 기지촌이라는 공간은 폭력의 역사 안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니까요.

 

▲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 등장하는 장소 중 하나인 클럽 뉴웨이브 모습. (시네마달 제공)

 

박경태: 성매매 공간에 가면 그곳이 어떤 성매매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기지촌의 경우는 판타지 같은 유사 타운으로 만들어져 있죠. 미군이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처럼 느낄 수 있게, 식당도 있고 옷가게도 있고 당구장도 있고요. 한국형 집장촌이 오로지 섹스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기지촌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성구매자가 생활 공간처럼 느끼게 하는 거죠. 성구매자가 자신이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걸 계속 탈각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미군의 시선에선 ‘연애’거든요.

 

지금은 폐허가 된 공간이 많아서 판자촌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로 공간의 단면만 보여주면 문제가 될 수 있겠다, 그냥 배경으로만 등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의 허구적인 장치가 아니라 진짜 사연이 있는 공간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걷는 장면도 많이 넣었죠. 실제로 <거미의 땅> 촬영할 때 안성자 씨(기지촌 출신 혼혈인)가 걷는 장면을 찍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걸어다녔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혼혈인들이 이 기지촌을 배회하고 떠돌아다녔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 전하고 싶었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시작 부분에 등장했던 나레이션 “남들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했지만, 여자는 강해서 라고 했다”는 말을 곱씹게 되더라고요.

 

김동령: 그 말은 인순 언니 본인이 하는 말이에요. “죽을 고비가 여럿 있었는데 내가 너무 강해서 살아남았다. 난 강해서 저승사자하고도 이길 수 있다”고. 인순 언니는 힘든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한 원망은 있고 억울하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게 자기연민이나 자기혐오로 이어지지 않는 사람이에요.

 

예전에 어느 방송국에서 인순 언니를 인터뷰하러 (영화에 등장하는) 인순 언니 집에 왔는데 피디인지 누가 한숨을 쉬더래요. 그러곤 언니 손을 꼭 잡고선 ‘원래 출연료가 없는데 내 돈으로 주겠다’며 10만원을 줬다는 거에요. 나중에 방송을 보니까 ‘굉장히 열악한 곳에서 소외된 여성이 살아가고 있는’ 걸로 찍었더라고요. 언니가 저한테 “우리 집이 비참해 보여? 여기 오면 내가 불쌍해 보여?” 하더라고요. 사실 언닌 집 꾸미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 예쁜 것도 걸어놓고 그러거든요. 남들이 봤을 때 거지같은 집이라고 해도요. 제가 “여자는 비참함을 이제 비장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라는 대사를 썼는데, 언니의 태도는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박경태: 인순이 아주머니는 1990년대 기지촌 여성으로서 얼굴을 드러낸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한 이유는 미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알리기 위해서예요. 미군 남편의 폭력 때문에 미국에서 집을 나올 때 자식들한테 상황을 설명하는 녹음 테이프는 남겼지만 어디로 간다는 말은 못 했던 거죠. 그런 사연 때문에 방송에 응했고, 충분히 이야기가 많은 사람인데 더 조명을 받진 못했어요. 사실 아주머니의 말이 너무 과격하고 욕도 많이 하고 인지능력도 좀 떨어지고 하니까 방송에 내보내기 어려웠던 거죠.

 

방송은 어떤 곤란을 극복하고 서민의 애환을 담아내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도 하고요. ‘피해자답지’ 못한 거에요. 한국 사회에선 피해자에겐 도덕적인 것들이 요구되는데 인순이 아주머니는 그렇지 않죠. 복수하고 싶어하고요. 사실 기지촌에서 생존한 분들은 정말 ‘쎈’ 분들이에요.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죽었죠. 거의 일주일에 한 명씩 자살했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죽음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피해자스러우면’ 안되요. 피해자 정체성을 가지게 되면 죽음으로 다가가게 되는 거라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저도 박인순 씨를 보면서 피해자다움이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여전히 성판매 여성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담론이 ‘자발이냐 비자발이냐’ 같은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경태: 오랫동안 고민해 온 부분인데요. 기지촌 여성들을 만나보면 사실 자발과 비자발이 뒤섞인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 봤던 한 분은 인신매매로 7년 동안 감금생활을 했어요. 그 분이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 때 성폭력을 겪었고, 그래서 고향에서 계속 지낼 수 없으니까 취업을 하러 밖으로 나왔는데 취업사기를 당하고 인신매매가 된 거에요. 그리고 나선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거죠.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한 사람의 삶에 자발과 비자발이 다 있거든요. 근데 우리 사회는 ‘창녀’에 대한 낙인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계속 자발, 비자발을 묻는 거죠.

 

기지촌 문제가 국가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검찰 측에선 일본군 ‘위안부’와 비교하며 기지촌 여성들은 총칼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게 아니지 않냐는 얘길 하거든요. 그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하니까 부득이하게 비자발적 성매매임을 증명하기 위한 증언을 모으게 되었고, 피해를 ‘증명’해야 했어요. 근데 우리가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묻지 ‘네가 피해를 받게 된 동기가 뭐냐?’ 묻지 않잖아요. 그런 질문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또 말이 안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자발, 비자발 구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거에요.

 

성매매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둥 그런 얘기를 하지만, 사실 성매매 여성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말도 없어요. 한국에서도 창녀, 갈보, 매춘부 등으로 불리다가 성매매 여성, 성판매 여성, 성노동자 등의 말이 나오지만, 당사자들 반응은 별로에요. 성노동자 어떠냐고 하면 “우리가 언제 돈을 벌었냐”고 웃고, 성노예 라고 하면 “졸라 열받네” 이러시거든요. 성매매생존피해여성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성매매라는 용어조차 이해를 못할 때도 있어요. 그 말들이 자신에게 와 닿지 않는 거죠.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니들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지 않냐”고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이름이 없다, 언어가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부터 상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현장에서 기록하고,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것부터요.

 

▲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어두운 밤 속에 서 있는 박인순 모습 (시네마달 제공)

 

-영화에 윤금이 씨 시신 사진이 나오는데요. 워낙 충격적인 이미지라 논란이 많았잖아요. 사진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거미의 땅>을 봤는데, “사람들은 여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해요” “아니요, 그들은 어차피 보는 순간 잊어버릴 거에요”라는 대사가 꽂히더라고요.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건 뭘까 생각하게 됐어요.

 

김동령: 사람들이 이미지를 대부분 ‘증거’라고 생각하고 이걸 보는 순간 뭔가 알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전 그게 착각이라고 생각해요. 이미지는 이미지 자체로 존재하는 거지 그걸 본다고 자동적으로 그와 관련된 상황이나 정보를 알게 되진 않거든요. 윤금이 씨 사진이든 다른 종류의 사진이든 간에, 이미지는 사각형의 작은 프레임 안에 찍힌 부분만 나오잖아요.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그 프레임 안의 대상한테 집중을 하죠. 거기 시체가 있다, 옷을 벗었다 등의 것에요 하지만 프레임 밖의 세계, 그러니까 누가 이걸 찍었고 왜 찍었으며 카메라 뒤의 사람이 사진 안의 존재를 어떻게 대했는지 등을 생각하지 않죠. 이미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었어요. ‘당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는 이런 거지만, 어차피 봐도 또 잊어버릴 거잖아’라는 걸요.

 

그리고, 기지촌 여성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윤금이 씨 시신 사진 이야기를 빼곤 그들의 죽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창녀’를 향한 지독한 혐오를 보여주는 사진이니까요. 그걸 통해서 이 여성들의 노동 환경과 고통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론, 윤금이라는 이름이 본명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사진 속 이미지만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여성이 실제로 어떤 이름을 가졌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모른단 말이에요. 지금도 검색하면 사진을 충분히 찾을 수 있어요. 금지한다고 해서 금지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이 사진을 똑바로 보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었어요.

 

박경태: 한창 윤금이 씨 사진이 반미운동의 상징으로 쓰이고, 그 사진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일었을 때, 기지촌의 한 누님이 같잖듯이 “그게 뭐가 잔인하냐”고 하더라고요. 자신들은 그런 폭력에 대한 공포를 늘 가지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그 사진을 금지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화를 내셨어요. 자신들이 겪는 폭력과 범죄가 무시당하는 느낌이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어떤 형태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재현한 이미지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런 입장에선 하나의 표상으로써 여성 전체를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흥미로운 건, 기지촌 외부에 있는 여성들은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과 아픔에 동일시를 하는 것에 반해, 기지촌 누님들은 바깥에 있는 여성들과 전혀 동일시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인순이 아주머니도 항상 (자신과) 구분 지어서 얘기해요. 일반 여자 혹은 부자 여자 이런 식으로요.

 

과연 이 이미지를 허용하고 금지하는 건 누구이며, 그 기준은 무엇이고 그 또한 어떤 권력의 담론은 아닌지, 그런 지점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만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건, N번방, 소라넷 등에서 만들어진 불법촬영물을 공유하는 건 범죄 행위입니다. 금지해야 하고요.

 

▲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 등장하는 저승자자들 (시네마달 제공)

 

-죽음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 영화가 이야기도 없이 사라진 이들을 기리는 추도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동령: 제 전작 <아메리칸 앨리>에 K 할머니라는 분이 나오는데, 굉장히 약하고 연세도 많아서 그 집에 갈 때마다 사실 좀 무서웠어요. 내가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하는 첫 번째 사람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던 거죠. 나중에 결국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제가 당시 20대여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게 거의 처음이었어요. 그 일 이후에 박경태 감독 영화에 등장했던 분도 자살로 돌아가시고… 그런 죽음들을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거기다 이 죽음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요,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도 거의 없죠. 기지촌 언니들도 장례식장에 안 가려고 하더라고요. 거기 가면 그 죽음이 자신한테 묻어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워낙 고립된 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자기도 그렇게 될까봐 무서운 거죠. 그렇게 애도하는 이가 없는 걸 보는 게 참 절망스럽더라고요. 어떤 죽음에는 애도의 물결이 일기도 하는데… 애도에도 어떤 위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동일시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계급적 위치에 들어가야만 그것을 인간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애도하는구나 싶은 거죠. 애도라는 행위가 굉장히 정치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영화에서 죽은 자들을 계속 소환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싶어요. 죽은 자들은 말이 없잖아요. 하지만 그들에게도 많은 이야기, 기구한 사연들이 있었겠죠. 그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박경태: 사실 고통을 느끼는 건 다 똑같잖아요. 재벌 회장이 화상을 입어서 아픈 거나 기지촌 여성이 화상을 입어서 아픈 거나. 근데 그걸 치유해 가는 과정이 다른 거에요. 사람들이 그 고통을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게 다르고요. 치유가 되려면 그 고통이 기록이 되어야 하고 이야기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걸 하고 싶었어요. 애도가 없다는 건, 그 삶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이 없다는 거니까요.

 

-두 분의 다음 작업도 궁금합니다.

 

박경태: <거미의 땅>에 나왔던 바비 어머니(박묘연)가 저한테 “미군이 카메라로 날 찍은 적이 있다”고 했어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바비 어머니가 기지촌에서 하숙을 하셨는데 그 때 아가씨와 미군 커플이 세 커플 정도 있었나봐요. 그 미군 중 한 명이 필름 카메라로 당시 일상 생활을 찍었던 거에요. 항상 김동령 감독이랑 이 누님들 젊었을 땐 어땠을까, 그 때 기지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하며 이야기했었는데 그걸 찍어놓은 게 있다니까요. 우리가 그 필름을 수소문해서 찾았어요. 미국까지 가서 기증 받아 왔거든요. 그 영상을 토대로 바비 어머니의 일대기를 다뤄볼까 싶어요. 올해 안에 편집을 끝내려고 하고, 빠르면 가을 중에 공개할 수도 있어요.

 

※ 영화 <거미의 땅> 예고편: https://youtu.be/yZYIwQXqqYk

 

※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예고편: https://youtu.be/XkM2AvK-l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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