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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총리의 리더십 16년 (2부)

 

지난 2일 밤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퇴임식이 있었다. 독특한 리더십으로 독일과 유럽뿐 아니라 세계 정치의 중심에 섰던 메르켈 총리의 지난 16년을 돌아보는 글을, 독일 현지에서 정치를 연구하고 있는 김인건 씨가 기고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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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메르켈 총리는 세 번째 총리 임기에 도전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메르켈의 이름만을 내걸고 특별한 공약 없이 연방 하원 선거에 참여했던 기민당은 41.5%의 득표율로 제1당의 자리를 유지했다. 직전 선거보다 7.7% 높은 수치였다.

 

푸틴, 트럼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

 

임기를 시작한 메르켈 총리에게 찾아온 중요한 첫 과제는 우크라이나 문제의 해결이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메르켈 총리는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같은 해 시드니 연설에서, 그는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영향권으로 두려는 러시아의 행위가 국제적 질서와 합의를 무효화하고,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찾아온 유럽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러시아의 이런 행위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동부에 위치한 유럽의 다른 국가에도 큰 위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해 메르켈은 크림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40차례 이상 통화를 했다.

 

이미 유럽연합 내에서 여러 국가 사이를 연결하며 강력한 지도력을 보여준 메르켈이지만, 그가 강인한 지도자로 국제 사회에 결정적으로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푸틴, 트럼프 같은 지도자와 날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007년 메르켈과 푸틴의 회담 자리에 푸틴이 위압적인 검정 대형견을 데리고 나타난 사진은 유명하다. 메르켈은 개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메르켈은 푸틴에게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유럽의 지도자가 되었고, 독일은 푸틴이 제거하려던 정적들의 주요 피난처가 된다.

 

▲ 2018년 G7 행사에서 트럼프를 내려다보는 메르켈, 출처: https://deutschland.de/de/topic/politik/bundestagswahl-in-deutschland-merkels-kanzlerschaft-im-rueckblick

 

트럼프의 등장으로 메르켈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막 수호자로 불리게 된다. 메르켈은 자국 우선주의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국제 질서를 위협하던 트럼프에 대항할 수 있는 국제무대의 유일한 정치인으로 여겨졌다. 2018년 G7 정상회담에서 앉아 있는 트럼프를 내려다보는 메르켈의 사진은 유명하다. 사진 속에서 트럼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정치인들은 메르켈 뒤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2015년은 메르켈 총리를 한 국가가 아닌 국제 사회의 지도자로 각인시켜 준 해일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오랫동안 숨죽여온 독일이 경제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라는 것을 증명한 해였다. 독일이 난민에게 전적으로 국경을 개방한 것은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2015년의 메르켈과 독일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은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Wir schaffen das)이다. 세 단어의 독일어로 이루어진 이 말은 밀려드는 난민 앞에서 메르켈 총리와 독일 시민들이 보여준 우호적이면서도 강인한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메르켈 총리가 처음 이 말을 사용했을 때는 난민에게 국경을 개방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국경의 개방이 결정된 이후, 난민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환영 문화(Willkommenskultur)와 함께 이 말은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된다.

 


베를린의 한 건물 외관에 “Wir schaffen das”(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벽에 적혀 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7588227

 

2015년 8월 31일 메르켈 총리는 여름 기자회견을 한다. 총리의 여름 기자회견은 그 해의 정치적 주요 의제를 설명하는 전통적인 자리다. 난민 문제는 메르켈이 언급해야만 하는 당시의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2014년 이미 독일의 지자체들은 늘어난 난민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15년 5월 독일의 내무부 장관은 그 해 독일로 유입되는 난민 숫자가 45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중해 국가들은 증가하는 난민의 규모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난민의 수가 급증하자, 2014년 구동독 지역에서는 ‘페기다’(Pegida)라는 이름의 난민 반대 극우 그룹이 만들어졌다.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이라는 뜻의 독일어를 줄인 이름이다. 그들은 난민 수용에 대한 반대 시위를 주도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난민이나 외국인을 일상에서 경험해온 구서독 지역의 시민들과 달리, 구동독 지역 시민들은 오랫동안 외국인을 접하는 경험을 갖지 못했다. 구동독 지역의 튀링엔 주의 외국인 비율은 1991년부터 2018년까지 728% 증가했다. 반면 구서독 지역에 있는 함부르크주의 경우, 같은 기간 외국인 비율은 45%만 증가했다. 구동독 지역의 난민 반대 시위는 폭력 사태로 번지기도 했다.

 

난민 문제 해결에 대한 압박을 받은 메르켈 총리는 여름 기자회견에서 난민의 권리를 언급하며, 폭력으로 난민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법치 국가의 공권력으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난민 문제에 대한 실무적인 설명을 이어가던 메르켈은 역사에 남게 된 몇 문장을 이야기하게 된다. “독일은 강한 국가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해낼 수 있습니다.” 그 기자회견 며칠 후 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9월 4일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머물던 난민 일부가 고속도로를 통해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기로 결정한다. 유럽의 난민법은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이 처음 도착한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헝가리의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난민 신청을 제대로 받지 않고 있었고, 난민들은 숙소 없이 거리에서 지내야 했다. 난민들이 실제로 이동하자 빅토르 오르반은 오스트리아 총리인 베르너 파이만에게 전화를 걸어 난민들의 행렬을 멈추길 원하는지 묻는다. 결정의 책임을 오스트리아 총리에게 넘긴 것이다.

 

빅토르 오르반이 강제로 난민 행렬을 멈출 경우,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파이만은 메르켈 총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난민의 상당수를 독일이 수용하기를 부탁한 것이다. 메르켈은 상황을 납득했고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내각의 책임자들에게 우선 동의를 얻어 정치적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연락을 돌린다. 하지만 너무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는 인물도 있었고, 다음 날 아침에 결정을 내리기에는 상황이 긴급했다. 메르켈은 결국 일부의 동의만을 얻은 상태에서 오스트리아로 들어오는 난민을 독일로 데려오기로 한다.

 

▲ 2015년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를 향해 고속도로 위를 걸어가는 난민의 행렬.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2915460

 

9월 5일 뮌헨 중앙역으로 난민을 실은 첫 번째 기차가 들어왔다. 그곳에는 뮌헨 시민들이 환영한다는 피켓을 들고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고속도로를 걷는 난민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독일 언론은 이런 독일인들의 모습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르켈의 말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한 신문은 메르켈이 아닌, 독일의 풍요로움과 호의가 난민들을 이곳에 오게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미국 타임지는 2015년 올해의 인물로 메르켈을 선정했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메르켈의 결정은 상황에 따른 긴급한 결정이었다. 독일은 기존의 난민을 신속하게 사회에 안착시키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급작스럽게 늘어난 난민을 수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한 번 길이 열리자 난민들은 계속해서 독일로 몰려왔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난민 신청 과정을 신속히 진행하고 원활한 사회 통합이 가능하도록 정국을 주도하지 못했다.

 

2016년 약 75만 명이 독일에 난민 신청을 했다. 이제 각 지역에서 난민의 모습은 더 흔한 것이 되었고,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당은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했다. 기민당과 함께 정권을 이끌던 기사당은 메르켈의 결정을 비판했고, 난민 숫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기민당과 기사당은 지방선거에서 많은 표를 잃었고 독일을위한대안당의 지지율은 높아졌다. 특히 구동독 지역의 상황은 심각했다.

 

퇴임식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혐오와 폭력에 경고

 

2017년 메르켈 총리는 마지막으로 네 번째 총리 임기에 도전했다.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32.9%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했지만, 직전 선거보다 8.6% 낮은 수치였다. 2018년 마지막 총리 임기를 시작한 메르켈은 2015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2015년 메르켈의 결정은 여전히 많은 독일 시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메르켈의 결정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것이었으며, 만약 메르켈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독일 시민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국경에서 일어났을 거라는 평가도 있다. 2015년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통해 독일 여론은 이미 난민에 대한 우호적 모습을 보여줬으며, 메르켈이 독일 사회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있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메르켈은 당시 독일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결정을 한 것이다.

 

2015년의 결정 때문에 기민당의 지지율이 점점 떨어지고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반론이 존재한다. 프랑스나 영국 같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 극우 민족주의나 자국 중심주의 정치가 반향을 일으키는 것에 비해 독일의 상황은 양호하며, 메르켈의 결정과 발언이 그들의 반대편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이다. 기민당의 지지율 하락 또한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기존 정당들의 고정 지지층이 사라지고 다당제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의 정치가 어느 정도 선방한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 12월 8일 마지막 퇴임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앙겔라 메르켈. 출처: https://bundeskanzlerin.de/bkin-de/aktuelles/kanzlerin-grosser-zapfenstreich-1987050

 

메르켈의 마지막 임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가시적인 것이 되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전 세계를 장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상황이 메르켈에게 마지막까지 정치적 힘을 실어주었다. 위기관리의 정치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팬데믹 초기 메르켈은 학자들의 조언을 잘 따르며, 각 주의 총리들과 함께 방역을 위한 조처를 차근차근 실행해갔다. 한때는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치명률을 자랑했다. 방역 정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산업 분야와 직업군에 대한 경제 지원 정책도 신속하게 실행되었다.

 

하지만 현재 독일의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는 매우 높은 수준이며 독일 사회는 긴장 상태에 있다. 코로나19의 극복은 다음 정부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보호, 난민과 이민자의 사회통합, 구동독과 구서독의 격차, 독일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함께 커진 빈부격차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메르켈 총리 임기 후반 뚜렷한 정체를 드러냈다. 이 모든 것은 다음 정부의 과제가 되었다.

 

12월 2일 메르켈 총리의 마지막 공식 퇴임 행사가 있었다. 군악대가 총리가 신청한 3개의 곡을 연주하는 전통적인 퇴임 행사였다. 이 자리에서 있었던 메르켈의 고별 담화 중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비판적 토론과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생명을 유지합니다. 이해관계의 조정과 상호 존중을 통해 생명을 유지합니다. 연대와 신뢰를 통해, 특히 사실에 대한 신뢰를 통해 생명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학문적 지식을 부정하고 음모론을 통해 혐오와 폭력을 확산시키는 모든 곳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혐오와 폭력이 도구로 사용되는 모든 자리에서, 민주시민으로서 우리는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일다]

 

[필자 소개] 김인건. 대안학교에서 철학 교사를 하다가 독일로 유학,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적 평등을 주제로 석사를 마치고 여행가이드를 하며 통번역, 독일 소식을 한국 언론에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환경과 지속가능한 삶에 관심을 둔 사람들과 움벨트(Umwelt)라는 연구모임을 만들어 번역을 하고 글을 쓴다. 역사 속 사회의 변화 과정과 이를 해석하는 이론에 관심이 있다.

 

 

남은 인생은요?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계 미국 이민자인 저자 성sung의 첫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아동기에 한국을 떠난 저자는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이다. 이민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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