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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의 책장] 삼촌 작가 웹툰 『귀곡의 문』

 

※이 리뷰는 웹툰 『귀곡의 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성의 세상에서 여성은 절대적인 타자, 미지의 존재였다. 사회는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고, 여성의 상태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대신 무조건 문제로 치부했다. 타인의 시선으로도, 자신의 진단으로도 풀리지 않는 ‘언어 없음’의 상태는 필연적으로 공포와 닿는다. 이로 인해 소수자들은 괴물, 기괴함 같은 말과 어울리며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공포라는 장르는 여성주의와 가깝다. 몇 년 전부터 공포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감독 아리 애스터(영화 <미드소마>)나 조던 필(영화 <겟 아웃>, <어스> 등)이 장르를 다른 방향으로 들여다보고 문법을 깬 것이 반차별의 맥락과 닿아있는 것처럼.

 

▲ 데뷔작 『이런 영웅은 싫어』 연재를 마치고 일상, 공포, 코미디 장르로 복귀한 삼촌 작가 웹툰 『귀곡의 문』 2화 낯선 방문자 中

 

네이버 웹툰 『이런 영웅은 싫어』를 통해 데뷔와 동시에 유명세를 탄 작가 ‘삼촌’은 장르를 다시 보고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영웅은 싫어』는 세계관 최강자에 가깝지만 소시민의 삶을 살며 범인의 가치관을 가진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대의, 희생과 같은 히어로물의 중심 키워드들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삼촌 작가는 2018년 10월, 6년간의 연재를 마치고 『귀곡의 문』이라는 일상, 공포, 코미디 장르의 웹툰으로 복귀했다.

 

『귀곡의 문』은 ‘서울시 황천구 삼도천동’이라는 가상의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황천(사람이 죽으면 가는 장소), 삼도천(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강)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심령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같은 이유로, 서울 내 쓰리 룸에 월 10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게 저렴한 집값을 기록하고 있다.

 

평범한 청년 여성 ‘나랑’은 출근하기 편한 입지와 저렴한 집값에 낚여 삼도천동 귀족 빌라에 이사를 오게 된다. 이 빌라에는 나랑이 청소년기부터 친하게 지내온 ‘기신’, ‘서리’, ‘화담’ 그리고 ‘비나’가 각자의 방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간판이 깨져 귀족 빌라가 귀곡 빌라로 보이는 것이 무언가 암시라도 한 것처럼, 나랑은 이사를 마치자마자 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이 찬장 안에서 문을 닫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나랑은 소스라치게 놀라 카페로 나가 밤을 새우지만, 기신은 영감이 전혀 없어 영적 존재를 볼 수 없고, 그 전부터 삼도천동에 거주하던 서리와 화담은 이미 이런 일이 익숙하다. 나랑 또한 귀신 때문에 결근을 할 수는 없다며 심령현상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생계의 중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잠이 들어도 가위가 눌리고 편히 잘 수 없는 상태가 24시간 지속되자 버거움을 느끼는데, 이때 다섯 명의 무리 중 막내인 비나가 도움을 준다.

 


“쉭! 쉭! 훠이! 나가, 빨리!” / “아오 놀랐네... 그냥 평소랑 똑같아.” 『귀곡의 문』 132화 우선순위 中

 

비나는 사실 영적 능력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 뛰어난 자질을 갖춘 퇴마사다. 심령현상, 영적 존재가 실재하는 세상에서 비나와 같은 영매사들을 모아 육성하고 영적 흐름을 관리하는 집단 ‘영매사 연맹’도 있다. 비나는 그중에서도 문무를 두루 갖춘 천재로, 차기 회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무던하고 욕심 없는 성격의 비나는 연맹을 통해 충분히 성장한 이후 빠르게 퇴사하고, 부탁받은 일만 외주의 형태로 수행한다. 삼도천동에 친구들과 함께 거주하며 사람들에게 해가 될 만한 악귀를 퇴치하고 이외의 시간에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고 있다.

 

『귀곡의 문』은 뛰어난 영매사와 이러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 섞여 일상에서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영적 현상을 대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매사 연맹에서도 설명하듯 영적 존재나 현상은 사람의 심리, 대중의 보편적 정서에 큰 영향을 받는다. ‘아무도 없는 곳에 노크하면 누군가 진짜로 생겨버린다’는 괴담처럼 사람의 공포가 영적 존재의 힘을 키우기도 하고, 시체의 이미지로 인해 귀신 또한 체온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낮을 것이라는 상상이나 흔히 소복을 입었을 것이라는 통념이 귀신의 실제 모습을 구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혼이 없는 무생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면 이로 인해 실제로 그것에 무언가가 씌고 만다. 불가사리 모양의 인형이 비 오는 곳에 버려져 있는 사진을 보면 괜히 그것이 팔다리가 달린 인형으로 보이고, 불쌍하다거나 불길하다는 감상이 모여 실제로 그 인형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 느낀 공포를 인간형 탓으로 돌리고 의미 부여하다가, 진짜 무언가를 불러들일 수 있거든. 그래서 일부러 깊게 생각하지 않게 했던 거야.” / “그럼 그걸 말해주지!” 『귀곡의 문』 62화 사람의 생각 中

 

귀족 빌라 친구들은 비나와 영매사 연맹을 통해 위와 같은 영적 현상에 대한 지식을 쌓고 점차 새로운 방식으로 귀신을 대하게 된다. 이에 호응하듯 오래된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들도 21세기의 환경에 적응하며 세상의 일부로 살아간다. 사람들이 돌멩이로 탑을 쌓고 소원을 빌면 깃드는 ‘서낭신’은 자신이 머무는 뒷산을 깎아 공원을 만든다는 소식에 새 거처를 찾지만, 변해가는 환경에서 전과 같은 거처를 찾기는 어렵다. 귀족 빌라 친구들은 어딘가 임시 거처에 머물다가 공원이 완공되면 핵심이 되는 돌을 깎아 기도석으로 세우고 나머지는 조경용 석재에 섞어두는 것을 제안한다. 서민에게 호의적인 서낭신은 흔쾌히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귀족 빌라 친구들은 영적 존재가 여전히 무섭고 낯설지만, 단순히 미지의 존재나 적으로만 치부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언어와 지식을 매개로 삶에서 부딪치는 무언가로 인식하며 그 현상을 각자의 일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귀족 빌라 친구들의 이러한 태도는 귀신이라는 영적 존재나 공포의 대상에 한해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귀곡의 문』은 귀족 빌라 친구들이 일상에서 심령현상을 마주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작 『이런 영웅은 싫어』와 마찬가지로 영매사 연맹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여기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를 다루기도 한다. 일반인인 귀족 빌라 친구들은 그들의 일상뿐 아니라 영매사와 같은 초월적 존재들의 거시적, 메타적인 고민 앞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활상이 바뀌고 인간들이 타협하며 사는 이상 신도 어느 정도 타협을 해줘야 해.” / “뭐야, 난 옛날부터 쭉 가만히 있었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 “그럼 사바세계 인간들은 가만히 안 있어서 집도 절도 없나? 다 똑같지.” 『귀곡의 문』 90화 혹시나 했던 것 中

 

영매사 연맹 회장인 ‘이산심’은 130대 중반의 나이로 죽었다. 하지만 수양을 쌓아 죽음으로도 소멸되지 않는 영혼의 크기를 가진 그는 영적 물질인 엑토플라즘을 통해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써 생전의 육체를 구현하고 여전히 현세에서 살아가고 있다. 영매사 연맹은 이산심의 영매 능력을 체계적으로 전승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으로, 사후 분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재현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산심은 의도적으로 몇 가지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첫 번째, 강한 영혼은 육체가 소멸한다고 해서 눈을 감지 못한다는 사실, 따라서 영매사들의 영혼은 사후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다는 사실. 두 번째, 분신이 수면욕도 감각도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상태인 것이 단지 그렇게 설계했기 때문이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세 번째, 사후 분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인신공양을 통해 능력을 이양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

 

이산심이 지금처럼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생전에 악귀에게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자 함께 수련하던 ‘맹목서’라는 동료가 이산심의 연구 내용대로 자기 자신을 제물로 이산심에게 공양했기 때문이다. 맹목서는 추후 분신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악귀의 일부가 영혼에 섞여버린 탓에 인격이 여러 개인 것처럼 불안정하고 감정적인 상태다. 비나와 친구들은 이산심과 영매사 연맹이 삼도천동에 무언가를 숨겨 놓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비밀을 파헤치다가 맹목서와 마주하게 되고, 이산심이 숨기고 있던 사실을 모두 알게 된다.

 


“몰라도 될 걸 알았을 때보단 티 나는 차별에서 더 쉽게 일어나는 것 같은데...” 『귀곡의 문』 100화 객관 中

 

그때부터 비나와 동료 영매사들은 고민에 휩싸인다. 감정도 감각도 없는 분신 상태는 과연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것을 차단하지 않으면 분신이 악귀가 되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평생 대중에게 이해받을 수 없고 자신의 육체마저도 능력을 감당하지 못해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영매사의 삶에서, 능력을 타인에게 이양하고 번뇌 없는 분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얼마나 존중받아야 할까? 영적 흐름이 깨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극복할 수 있을 만한 사소한(하지만 일면 사소하지 않은) 피해를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누군가의 영혼을 악귀와 함께 가둬둔 채로 방치하는 일은 과연 옳을까? 또, 이러한 고민에 휩싸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정보를 통제하고 사람을 가리는 것은 과연 현명한 처사일까?

 

전말을 함께 듣게 된 나랑과 기신은 이산심이 모두의 눈앞에서 비나에게만 정보를 전달하려는 모습을 보며, 그것은 ‘티 나는 차별’이며 오히려 이러한 태도가 일을 그르칠 것이라고 타이른다. 이산심이 찰나의 선택으로 오랜 세월 동안 고뇌하고 후회하며 판단력과 통제에 집착하게 됐다면, 현재의 일상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귀족 빌라 친구들이 그 중심을 잡아준 것이다. 산심은 바로 고집을 꺾지는 않지만, 옛날 일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태도에 대해 더 생각해보겠다고 답한다.

 

이들의 관점은 매 순간 활약한다. 비나는 감각과 감정을 느끼는 분신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순간 ‘이대로라면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이를 모두에게 공유하자 다들 알 수 없는 공포와 찝찝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충동 때문에 감정을 차단한 것 같다는 말에 기신은 단칼에 ‘위험한 충동이 들까 봐 감정 자체를 없애는 것은 21세기라곤 믿을 수 없는 발상’이라고 선을 긋는다. 충동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연구하되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귀족 빌라 친구들의 현실 감각은,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이 모호한 미지의 상황에서 비나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런 충동을 조절하는 거랑 없애버리는 건 아예 다르지. 아파할까 봐 미리 촉각을 없애둔다. 이성을 잃을까 봐 미리 감정을 없애둔다. 이걸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나 있나?” 『귀곡의 문』 138화 충동 中

 

이 현실 감각은 삼촌 작가가 전작에서부터 꾸준히 강조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압도적인 숫자의 해를 거듭하며 쌓은 경험, 후회, 지식. 죽음과 사후 같은 메타적인 고뇌. 옳고 그름과 같은 대의. 작은 존재를 압도하는 거대한 주제들에 개인의 삶이 잠식되지 않도록, 삼촌 작가는 오히려 현실과 일상이 해결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이는 공포의 대상을 지식과 언어만 있다면 삶과 조화될 수 있는 것으로 뒤집어 표현했던 전개와 적절히 어우러지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미지의 존재는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알려는 노력과 수용이 있다면 세상을 확장해주는 타자라는 것. 초월적인 존재와 거시적인 이야기들 사이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중요한 열쇠를 던져주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 자체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마주치는 무언가를 그대로 존중하면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항대립처럼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스펙트럼이나 새로운 축을 발견하는 것이 여성주의의 역할이었다면, 영적 존재에 대한 지식과 언어는 여성주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귀족 빌라 친구들이 지식과 언어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비나의 길잡이가 되어줬던 것처럼, 『귀곡의 문』을 통해 삼촌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여성주의를 어떻게 대해야(혹은 다뤄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원정. “문학이 언제나 약자를 대변하길 바라는, 유니브페미 활동가.” 페미니스트의 책장은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UnivFemi) 기획으로 채워집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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