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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편에 서지 않기 위하여

[페미니스트의 책장]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정치적 조건 속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진보와 보수가 견지해온 전통적 전선은 무너졌다. 특정 표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 표현의 자유는 편의적으로 치켜세워졌다가 또 다른 국면에선 한순간에 버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말이 칼이 될 때』는 전반적인 표현의 규제 확대가 아닌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키워드로 ‘혐오표현’을 소개한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혐오표현 또는 차별에 대해 지금까지 쌓아올려온 합의의 수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한국에 왜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설득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모욕·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다. 표현과 행위는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표현이 곧 차별의 사회 현실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국내에서 2006년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그 이름 때문에 혐오표현을 형사범죄화하는 ‘혐오표현 금지법’으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차별 행태를 금지하고 예방하는 포괄적인 조치에 가깝다.


규제에는 ‘금지하는 규제’뿐 아니라 ‘지지하는 규제’, 즉 형성적 규제가 포함되는데, 후자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반차별 정책을 시행하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인식을 제고하며 소수자 집단에 대한 각종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야말로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약속인 셈이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국제기구의 권고와 시민사회의 요구에도 한국은 10년째 묵묵부답이다.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어크로스, 2018)


표현의 자유인가 혐오의 자유인가


“교내 자경단 만들어서 진압봉으로 때리고 구둣발로 짓이겨야함”


우리 학교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잔존 세력이 지금 경영관 앞에 있다”라는 게시물이 올라오자마자 달린 댓글이었다. 매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가 총여 재건 운동을 했던 나와 친구들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저 글을 경영관 앞에 서서 읽었다. 속으로 한숨을 한 번 쉬고 겉으로는 비웃었다. 그건 직접적인 위해가 아닌 표현에 불과하니까. 이 자식 이렇게 써놓고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할걸. 우리는 여럿이고 아직 대낮이니까, 무섭지 않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은 며칠 전 학생 총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총여를 폐지시킨 익명의 동창생들이었다. ‘총여 함락 기념’으로 ‘야동’을 보겠다는 글도, 총여가 폐지되지 않았어도 볼 거라는 댓글도 나에겐 아직 생생했다. 우리가 놓여 있는 맥락이 날 초조하게 했다.


‘ㅋ’자가 잔뜩 붙은 화면 속의 글들을 웃어넘길 수 없었던 건, 그것이 여성 또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이들에 대한 ‘혐오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말에 불과했지만, 칼이 되어 1년도 더 된 지금까지도 나를 마구 가르고 다닌다. 나는 더 이상 학교에 전혀 소속감을 갖지 못한다.


혹자는 게시판에 반대 의견을 올려 정정당당하게 토론에 임했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신고에 의해 자동으로 삭제 처리가 되는 시스템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즘이나 총여에 대한 의견을 게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페미니스트들이 의견을 올리면 단 몇 분 만에 게시물이 신고 누적으로 삭제되고 경고를 받아 게시판 접근 권한이 제한되기 일쑤였다.


가끔 삭제되지 않는 경우에는 “피싸개년”과 같은 모욕적 댓글 테러가 이어졌다. 혐오표현은 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승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기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열릴 리가 없었다. 이곳에서 철저하게 보장되고 있는 건 학내 모든 구성원의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소수자들을 혐오할 자유였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대학에도 차별금지 학칙과 차별시정기구가 제 기능을 했다면 어땠을까. 오프라인에서 직접 들은 혐오표현에 대해서도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무력한 인권센터―인권센터가 없는 대학도 많다―, 그리고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혐오발언이 난무해도 사기업의 어플리케이션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 학교 당국과 학생회 사이에서 어쩌면 소수자들은 갈 곳을 잃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2018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는 미국과 영국 대학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는 대학 규정의 일부로 ‘불관용 행위 프로토콜’(Acts of Intolerance Proctocol)을 마련해, 차별 행위로 의심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신고하고 판단하는 절차를 갖추고 있다. 시카고 대학은 기본 원칙으로서 ‘대학 환경에서의 정중한 행동’과 ‘차별금지선언’을 채택하고 있으며 ‘괴롭힘, 차별, 성적 부당행위에 관한 정책’을 두고 신고 및 처리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편견 교육 지원팀’을 따로 두어 신고 접수 이후 피해자를 지원한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도 ‘표현의 자유 정책’을 펼침과 동시에, 그 한계를 지적하며 ‘평등 정책’(Equality Policy)을 천명하고 있고, 캠브리지 대학은 강령에서 “차별이 없고 모든 구성원이 존엄성과 존중으로 대우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환경을 제공할 것”과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에 의하여 괴롭힘을 당하거나 성적으로 부당한 행위를 겪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 등을 약속한다.


차별의 편에 설 것인가, 평등의 곁에 설 것인가


 2019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 버라이어티 여자 부문'을 수상한 송은이 씨의 수상소감 중에서.  ©MBC


얼마 전이었던 2019 MBC 연예대상에서 각각 최우수상과 대상을 수상한 송은이 씨와 박나래 씨는 “말이 칼이 되지 않도록”, “선한 웃음 줄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회 구성원이 함께할 수 있는 ‘공존의 조건’을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약속이었다. 외모나 장애, 성, 인종 비하를 개그 소재로 삼고 중년-미혼-여성들은 부르지 않는 예능계에서 ‘말이 칼이 될 때’를 잘 알고 있는 여성 예능인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말이 칼이 되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앞으로 더 나은 합의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차별의 편에 설 것인가, 평등의 곁에 설 것인가.


※ [페미니스트의 책장]은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UnivFemi) 회원들의 글로 채워집니다. 이 기사의 필자 서영 님은 유니브페미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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