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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냉장고, 차갑지는 않지만 시원합니다!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펠티에소자를 이용한 냉장고를 만들다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비전화카페의 사계절은 변화무쌍하다. 많은 질문을 받기도 했고 실제 운영하면서도 가장 우려했던 점은 더운 여름 무탈하게 보내기였다. 아무리 대책을 마련한다 해도 막상 당면하지 않고서는 불안감이 잘 가시지 않았다.


냉장고 없는 카페의 한여름, 가능할까?


창문을 활짝 열어 바람이 드나들도록 길을 만들고, 앉을 자리마다 부채를 놓아 더위를 몰아낼 채비를 갖췄다. 식기를 매번 삶고 혹여나 해충이 번식하지 않도록 매일 식기를 삶는 등 위생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냉장고.


▶ 식재료를 보관하는 방법은 냉장, 냉동 말고도 건조, 발효, 절임 등 다양하다. ⓒ비전화공방서울


가능한 텃밭에서 바로 수확한 식재료를 쓰고 필요한 그 외 재료는 가능한 소량으로 인근 가게에서 구매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손님들은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두통이 오도록 차가운 냉방기가 상시 돌아가고, 들이키는 순간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음료를 내주는 카페에 익숙했다.


비전화카페는 이와 다른 취지로 운영하고 있다는 걸 방문하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지나친 불편함조차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님뿐만 아니라 매일의 식재료 재고를 관리하는 카페지기들도 언제 식재료가 상할지 모른다는 부담감을 안으며 식음료를 만들어 손님에게 내놓을 수는 없었다.


채소저장고는 실온에는 유용했지만 무더위에는 속수무책이고, 카페 뜰 옆면에 짓고 있는 식품저장고도 현재진행형이라 써볼 틈이 없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냉장고를 들여놓기로. 대신 비전화카페의 성격을 해치지 않게 최소한의 전력을 사용하면서 쓸 수 있는 방식을 찾기로 했다. 방향을 정하니 방법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펠티에소자 냉장고를 만들기로 했다.


태양광 자가전력의 펠티에 냉장고가 들어오다


매일매일 시간대별로 해가 뜨고 지는 위치를 확인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 빛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선정했다. 계절별로 해의 위치는 달라지겠지만 전력소모가 가장 많을 여름을 기준으로 했다. 평소에도 전망을 해치는 주변의 고층건물이었으나 이때만큼 얄미울 때가 없었다. 가능한 그림자가 지는 곳을 피해 위치를 잡았다.


비전화냉장고를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냉장고 안 저장물의 열을 밖으로 빼내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열을 차단하는 자연대류 방식의 냉장고는 일교차가 큰 기후의 지역에 적절하지 사계절이 변화무쌍하고 고온다습한 한반도의 여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펠티에 효과(Peltier 效果)를 활용한 전자식 냉장고를 만들기로 했다.


▶ 여러 형태의 저장고. 식재료의 특성에 맞게 보관하면 꼭 냉장고가 없어도 저장 기간을 늘릴 수 있다. ⓒ비전화공방서울


펠티에 냉장고는 생각보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열전 반도체 안에 들어있는 전자는 전류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자가 기본적으로 가지는 열에너지로 인해 물체에 전기가 흐르면 한쪽은 발열하고 반대쪽은 냉각되는 현상을 펠티에 효과라고 한다. 이 방식이 초기 각광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냉매를 사용하지 않아도 돼 가스압축식 냉장고가 갖는 환경오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존의 열교환기와 같은 기계적 설비 없이 작은 크기로도 충분히 열 교환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에너지 효율이 낮고 발열부를 충분히 냉각시키지 못하며 회로가 파열될 수 있는 단점이 있어, 주로 작은 용량의 냉각에 사용한다. 와인냉장고, 정수기, 컵홀더, 자동차의 냉온시트 등 소형가전에 이미 활용되고 있고, 소음과 진동이 적어 조용한 공간에 두는 가전으로 주로 이용한다.


차가운 거 말고 시원한 음료 주세요!


펠티에 냉장고를 만드는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아이스박스 상단에 모듈 형태의 펠티에 소자를 부착하는 것만으로도 냉장 기능을 할 수 있다. 아이스박스 안에 비열이 큰 물을 가득 채워두면 효율이 훨씬 높아진다. 얼음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냉각은 아니지만 식품을 좀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을 정도의 시원함은 유지되며, 한여름에도 통상 외부온도보다 늘 10℃ 이하를 유지할 수 있다.


▶ 펠티에 냉장고는 원리만 이해하면 제작방식은 단순하다.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이 펠티어 소자 모듈이다. ⓒ비전화제작자


평소에 마시는 식수도 비전화정수기로 거른 물을 병에 담아 비전화냉장고에 넣어두면 한결 시원해졌다. 물론 여전히 ‘시원함’의 기준은 각기 달라서 “저희 음료는 시원해요”라고 안내하지만, “이게 뭐가 시원해요?”라는 이의를 제기 받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시원하다는 말은 더위를 식힐 정도로 선선하다는 뜻이랍니다”라는 사전적 정의가 목 끝까지 치밀 때도 있다.


비전화 냉장고에서 꺼낸 물과 정수기에서 갓 받은 물을 동시에 마셔보면 시원함의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매번 설명할 수도 없고 바로 납득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란 생각이 든다.


냉장고 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의 앎은 닫힌다


국내에서 최초로 냉장고를 제작해 출시한 게 1965년. 한국에서 냉장고 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30년가량 지났다고 하니, 냉장고가 필수가전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집집마다 대형냉장고가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김치냉장고 등 기능성 냉장고에서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1대 이상 냉장고가 있는 장면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요즘이다.


▶ 벌목한 나뭇가지를 주워 틀을 세우고 흙 미장과 너와, 볏짚으로 덮은 식품저장고. 입구는 왕겨마대로 막아 내부에 보관한 김장채소를 외기로부터 보호한다. ⓒ촬영: 이민영


냉장고는 안전하고 편리한 식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한 동시에 선조들이 오랜 경험으로 축적해온 다양한 식재료 보관 및 관리법을 잊어버리게 하는데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비전화공방서울에서 자급자족하는 방식에 주안점을 두는 까닭 역시 각자의 삶이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고 가꿀 수 있어야 일상의 만족도와 행복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냉장고를 언급하기에 앞서, 거주지 인근에서 먹을거리를 쉽게 생산하고 가공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산물마저 순환의 생태 고리 안에 담길 수 있는 과정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여전히 믿는다. 냉장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면 구비할 법한 삶의 도구이며, 그 방식 또한 여러 선택항 중의 하나여야 하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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