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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자랑할 건 대포동이 아니라 ‘대동강 맥주’죠
『맥주와 대포동』의 저자, 재일한국인 2세 문성희 씨
북한에 ‘대동강 맥주’라는, 감칠맛 도는 훌륭한 맥주가 있다! 작년 12월에 일본에서 출간된 『맥주와 대포동-경제로 풀어보는 북한』(헤이본샤)이라는 눈길을 끄는 제목의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책의 저자는, 북한을 지지하는 조선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일했던 문성희 씨다. “실은 제목의 麦酒라는 단어에 ‘비어’(beer)가 아니라 조선어인 ‘맥주’라는 발음을 붙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문 씨는 엄청난 맥주 애호가. 퇴직하고 일반인들의 일상에 기반한 북한의 경제실태를 연구한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다시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맥주와 대포동-경제로 풀어보는 북한』의 저자, 재일한국인 2세 문성희 씨. (사진: 오치아이 유리코)
북한의 수해와 굶주림 실태를 보도해야 하지 않을까?
도쿄에서 자란 자이니치(在日)한국인 2세인 문성희 씨는 총련에서 활동하던 아버지, 편집자였던 어머니를 본받아 저널리스트를 꿈꿨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조선학교를 다녔고, 일본의 대학을 졸업한 후, 희망하던 [조선신보]에 입사했다. 학생 시절이던 1984년에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래 취재를 위해 몇 번이나 북한을 방문했고, 두 번이나 특파원 생활도 했다.
1996년에 북한에 갔을 때는, 전년에 발생한 대홍수의 영향 등으로 경제가 밑바닥이었다. 매일 정전이 이어지고, 평양이 아닌 지방에서는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을 봤다. 그때까지 [조선신보]에는 “(북한에서는) 모두가 행복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많았고, 부정적인 기사는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수해 실태를 보도해야 하지 않을까.
회사와 조선총련이 북한 정부 측과 어떤 기사든 쓸 수 있도록 협상했고, 문 씨의 보도는 결과적으로 유엔과 자이니치코리안(재일조선인) 비정부기구의 북한 지원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농작물이 불황이고, 에너지도 부족하고, 러시아나 인근 국가로부터의 지원도 어려운 시대였어요. 우리가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안내원이 우리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데려갔죠. 저는 취재가 끝나면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현지 사람들은 최악의 기아 상태에 놓인 채죠.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응원하는 기사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쓸 수 없는 점 등의 의문도 있었지만, 존경하는 상사도 있었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어요.”
사실로 드러난 북한의 일본인 납치…‘내 안의 둑이 무너졌다’
하지만, 2002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실이 밝혀졌을 때, 믿음이 무너졌다.
이전부터 문성희 씨는 북한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납치는 없다”는 기사를 써왔다. “제 안에서 둑이 무너지는 느낌이 엄습했습니다. 아버지는 총련 활동에 평생을 바쳤고, 그 때문에 어머니도 고생했는데, 그것은 모두 무엇이었을까!”
나아가 “일방적인 정보만을 믿고 썼던 나 역시 언론인으로서 실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선신보에서도) 연이어 퇴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문 씨는 ‘사죄해야 한다, 이 일을 어딘가에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갈등했다.
대동강 맥주를 평화의 상징으로!
2003년, 특파원으로 다시 평양에 건너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등 밝은 소재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안내원이 알려준 것이 바로 대동강 맥주다. 마셔보니 너무 맛있는 것이 아닌가.
“공장에서 직접 구매해, 지국에 항상 100병을 쟁여놨어요.”
『맥주와 대포동-경제로 풀어보는 북한』(平凡社, 2018년 12월 출간) 표지.
아픈 어머니를 돌봐야 해서 퇴직한 것이 3년 후. 다음 일로 연결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조선신보] 특파원이었던 시절부터, 계획경제 국가임에도 평양에는 암시장이 존재했다. (그곳에서는) 여성들이 씩씩하고 부지런하게 일했고, 없는 물건이 없이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생활이나 경제활동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동포이지만 외국에서 온 저는 쇼핑할 때 달러나 엔 등 외화를 쓰는데, 왜 평양에서 외화를 쓸 수 있는 걸까. 거스름돈에도 외화가 섞여 있다. 그렇다면 이 이상한 시스템과 경제를 연구해보자.”
필드워크에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학적인 조사연구를 하기 위해, 재학 중에 네 차례 평양을 찾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7년 걸려 논문을 완성했다.
2008년, 평양에는 대동강 맥주 비어홀도 생겼다. “맥주는 개혁개방의 상징입니다. 맛있는 맥주가 있으니, 북한이 자랑할만한 것은 대포동 미사일이나 핵실험보다 맥주여야죠. 다른 나라에 수출해도 손색이 없고,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만드는 데도 공헌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맥주와 대포동』에는 [조선신보] 시절에는 쓸 수 없었던 것을 새삼스레 다시 썼기 때문에, 평가가 걱정이었습니다. 굶어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호텔에서 수상한 노크 소리가 들렸던 일…. 하지만 제 글에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일본에 살고, 북한을 잘 알며, 한국에 큰 관심을 가진
작년에는 이동의 자유와 보다 수월하게 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주간 금요일]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등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주간 금요일]에서 일하며 몇 번이나 한국에 취재를 위해 오기도 했다.
”내년은 민주화운동이 짓밟혔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인데, 지금도 한국에는 5·18이 북한 정부의 지령이었다고 발언하는 국회의원이 있으니… 해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일본에 살고, 북한을 잘 알고, 한국에 높은 관심을 가진 저널리스트 문성희 씨.
“북한의 위협을 쓸데없이 북돋우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정말 의문입니다. 민중의 입장에서 북한과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한다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술은 에너지의 원천 중 하나”라고 말하는 문 씨의 눈빛은 듬직하다. 언젠가 우리도 대동강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맥주와 대포동』은 곧 한국어로 출간될 예정이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시미즈 사츠키 님이 정리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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