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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으면 가벼운, 흙집

[도시에서 자급자족 생활기] 생태건축⑦ 초·재벌 흙 미장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버스를 타고 창밖 빼곡하게 펼쳐지는 아파트 숲을 보다 보면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 저 많고 많은 옥사 중에 왜 내 마음 편히 발 뻗고 누워 잘 제집 하나 없을까. 2019년 서울 주택보급률은 98% 선이고 전국은 110%에 가까워 160만 가구나 남는다는데, 어찌 내 주변엔 온통 2%만 가득한 걸까. 이 도시에서 엉덩이 비집고 앉아 한 자리 차지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 비싼 땅과 건물의 한 평을 자기 이름 석 자 소유로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어 살 수 있었던 걸까.


이 많은 집에서, 어떻게 이 많은 집을


그런데 집을 짓다 보면 관점이 바뀐다. 집 한 채 짓는 일이 이토록 수고스러운데 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물들은 어느새 세운 걸까. 이 건축물들을 짓는데 필요한 흙과 모래는 어디에서부터 가져온 걸까. 얼마만큼의 땀을 흘려야, 혹은 그 땀을 대체할 기계를 움직일 석유는 얼마나 써야 이 넓은 도시를 건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걸까.


지푸라기 집을 짓는데 가장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작업은 바로 미장이었다.


▶ 흙 반죽은 마지막으로 손으로 짓이기고 으깨 미장용 흙으로 태어난다. ⓒ촬영: 비전화공방서울


미장용 흙을 만들고 숙성하고 붙이는 작업은 가마와 유사하지만, 규모는 남다르다. 15평 남짓한 건축물쯤이야 싶겠지만 들통이나 대야로 흙을 반죽하기엔 그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단열을 하고 남은 압축볏짚으로 네모난 틀을 임시로 만들고 그 위에 방수포를 덮어 흙과 모래, 볏짚, 물을 붓고 발로 밟아가며 뒤섞어 미장용 흙을 만들었다.


흙과 모래의 비율은 2대 1을 기준으로 하지만, 수식대로 배합하기 어려워 충분히 섞었다 싶으면 공 모양으로 흙을 뭉친 뒤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 던져봐서 형태가 무너지지 않을 묽기면 합격이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 역할분담은 필수다. 한두 명에서 서너 명으로 적당히 나뉘어 구성된 조 중 한 조는 흙을 준비하고 만드는 작업을 맡고 어느 한 조는 만들어진 흙을 작업장까지 옮기며 다른 한 조는 옮겨온 흙을 공 모양으로 만든 뒤 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꼭꼭 누르며 붙인다. 전신을 모두 자유롭게 써야 하는 활동인데 각 역할별로 주로 쓰는 신체 부위가 달라 지칠만하면 알아서 조를 바꿔가며 일했다.


‘미장’이란 이름의 다양한 공정


흙을 준비하는 일만 해도 공정이 여러 가지다. 볏짚을 10~15cm가량으로 잘라 이삼일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들고 포대 안 흙과 모래를 손수레로 밀어 옮겨 다시 삽으로 퍼 나른다. 교반기의 진동을 견디면서 흙을 섞는 작업도 꽤 많은 체력을 소모하지만, 장화를 신고 모래와 흙과 볏짚을 섞는 일 역시 펄을 가로지르는 근력과 균형감 이상의 기운이 필요하다.


▶ 흙 공을 던지면 벽과 마찰 시 공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미장 흙의 부착력이 좋아진다. ⓒ촬영: 비전화공방서울 


미장용 흙 안의 공기를 최대한 빼야 하기 때문에 흙을 벽에 바르기 전 손으로 여러 차례 치대고, 바를 때에도 다섯 손가락을 이용해 가능한 빈틈 없이 붙여준다. 초벌미장은 볏짚으로 된 벽면과 흙이 잘 붙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별다른 도구 없이 장갑을 낀 손으로 흙을 발라준다. 라텍스 장갑을 먼저 낀 후 위에 목장갑을 덧끼면 손이 불지 않으면서도 흙이 장갑에 잘 붙어 작업하기 쉽다. 2~3cm 두께로 흙을 바르는데 볏짚이 보이지 않으면서 재벌미장을 고려해 요철이 있다 싶으면 대략 그만큼 두께가 된다.


미장의 핵심은 역시 물이다. 미장용 흙을 오래 방치하면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에 한 회 작업 분량을 만들었으면 그날 소진하는 편이 좋다. 전날 미리 미장용 흙을 만들었더라도 방수포를 덮어 가능한 계획한 수분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초벌 후 재벌을 할 때도 그전 미장과의 시간 차가 크면 벽이 굳어버리기 때문에 이후 작업하기가 어렵다. 가능한 미장 기간에는 집중해 일을 마무리하는 편이 좋다. 간혹 며칠 동안 미장을 하지 못하게 돼 흙벽이 마르면 호스로 전체적으로 물을 뿌린 뒤 중간에 분무기를 사용해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미장에서의 주의사항


미장을 하다 보면 미처 챙기지 못한 단열의 빈틈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단면보다는 모서리나 지붕과 벽, 벽과 창틀 사이의 틈새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미장하기에 앞서 남은 짚을 모아 동그랗게 말아 틈에 쑤셔 넣었다. 창문 테두리와 만나는 벽면은 혹여 창문을 여닫을 때 흙이 두껍게 발려 열리지 않을 사태를 고려해 볏짚을 약간 깎고 흙은 좀 더 얇게 펴 발라 주었다.


▶ 자기 요령껏 요철을 만들다 보니 한 벽의 오목볼록 모양새가 가지각색이다. ⓒ촬영: 박혜윤


미장은 비바람 같은 외부환경으로부터 벽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초벌미장은 틈새를 메워 벽이 갈라지지 않고 튼튼하게 하는데 주안점을 둔다면 재벌미장은 깔끔하게 보이는 미적 기능에 집중하기 때문에 모래의 비율을 초벌미장에 비해 줄인다. 초벌미장보다는 더 두껍게 하되 미장판과 흙손을 이용해 벽의 두께가 고르도록 벽면의 평을 잡은 후 다음 미장 흙이 잘 붙게 하려 일부러 거칠게 흔적을 남긴다. 면적이 넓다 보니 나중엔 써레로 벽면을 긁기도 했다.


실상 미장은 넓은 면적에 흙을 뭉쳐 붙이는 작업의 연속이다. 쉽게 지루해질 수 있지만 여럿이 함께하면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흥겨운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거나 옆 사람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하다 보면 자연스레 여기저기서 웃음이 퍼진다.


건축 벽면 중 사다리를 설치해 올라가야 할 만큼 높은 위치에서 미장을 할 때엔 구호를 외치며 둥글게 만든 흙 공을 던져 전달하고, 흙을 바르다 가끔 부스러기가 비계 아래에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떨어지기도 하는데 워낙 흙투성이다 보니 모자 쓰기도 잊고 헤헤 머리 한 번 흔들고 나면 그만인 날도 제법이었다.


이웃과 함께 짓는 집을 꿈꾸며


어릴 적 휴가철 해수욕장에서 실컷 모래장난을 한 이후로 이렇게 흙을 마음껏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제였는지. 고되지만 흙을 손발로 반죽하고 종종 장난도 치며 아무리 열심히 털어도 작업화와 호주머니 그리고 머리카락 속속들이 남아있는 모래를 털고 또 털면서 가끔은 이게 현실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 집은 동네 중간쯤에 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지은 집이지요.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님은 초가삼간 집을 짓고 살면서 새로 지을 집 나무들을 산에 베어두었다가 말린 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산에서 베어낸 기둥감이며 서까랫감이며 중방(기둥과 기둥을 가로로 연결하는 나무)감들을 골짜기 아래로 굴려 쌓아 놓았다가 큰 비가 와서 골짜기 물이 불어나면 나무들을 물에 띄워 마을로 떠내려 보냈지요. 그렇게 한 개 두 개 모아놓은 나무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내 사색의 시원…화해와 사랑의 우물” 중에서. 김용택, 한겨레, 2008년 12월 21일)


김용택 시인은 ‘해와 달과 바람과 비와 새와 작은 벌레들과 동네 사람들이 손을 모아 도면 없이도 풀과 나무와 흙으로 지은 4칸 홑집에서 자랐고, 그의 아버지는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살다 자기가 지은 집 방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지붕에 흙을 얹고 벽을 붙여 집을 지었다는데, 어쩌다 우리는 집을 사서(buy) 살(live) 생각만 하게 되었을까.


▶ 초벌미장은 인해전술이 필수다. ⓒ촬영: 이한나


한 알 한 알은 숨결에도 날아갈 정도로 가볍지만 물을 머금어 뭉치면 무거워지는 흙처럼 개개인에게 지워지는 도시 속 내 집 마련이라는 과제는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도록 무겁기만 하다. 미장하듯 여럿이 으라차차 힘을 모아 내 힘으로 함께 짓는 집(Self-build)이라면 누구에게나 건축이 삶의 즐거운 과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미장하다 종종 상상해보곤 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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