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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의 학교’ 이야기

지역민이 함께 만드는 오조라학교 초대 교장 기무라 야스코 강연



“오조라 초등학교에는 ‘괴물 학부모’(몬스터 페어런츠)가 한 분도 없습니다. 모두의 학교를 아이, 보호자, 지역 주민, 교직원들이 직접 만들고 있기 때문이죠.”


‘모두가 함께 만드는 모두의 학교’를 슬로건을 내건 초등학교가 있다. 영화 <모두의 학교>는 특별지원이 필요한 아동, 그렇지 않은 아동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오사카시립 오조라초등학교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일본에서 2015년에 극장 개봉 후,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공동체 상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기사는 작년 11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열린, 오조라학교의 초대 교장 기무라 야스코 씨 강연(세야구 장애인지역자립지원협의회 주최)을 정리한 것이다.


장애란 말도, 특별지원이란 말도 쓰지 않는 학교


안녕하세요. 복국을 좋아하는 기무라 야스코입니다! 어머, 요코하마에서는 별로 반응이 신통치 않네요. (웃음) 오조라의 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 소개를 곁들여 인사합니다. 오조라에 처음 온 분들은 깜짝 놀라지만, 이렇게 소개하면 벌써 대화의 물꼬가 트이지 않나요? 진솔한 대화야말로 사회를 바꾸는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무라 야스코. ‘모든 어린이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신념하에 2006년 개교한 오사카시립 오조라초등학교의 초대 교장을 지냈다. 2015년에 퇴직. <‘모두의 학교’가 가르쳐준 것>(쇼가쿠칸)이라는 책을 펴냈다.


오조라는 개교 당시엔 ‘모두의 학교’라는 이념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취학 지원이나 생활보호 대상인 가정도 많고, 지역 내 차별도 있어서 신설학교 개교까지 20년간이나 설립 반대 운동도 있었습니다.


개교 1년 차 시업식에서 “자, 이제 다 함께 좋은 학교를 만들어봅시다!”라고 하자마자, 오조라 지역 외부에서 두 명의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한 명은 <모두의 학교> 영화에도 나온 ‘쇼고’라는 중증 지적장애와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였고, 또 한 명은 ‘가나타’입니다. 가나타는 ‘광범성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2주만에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었던 아이죠. 우리 학교에 6학년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우리는 쇼고와 가나타 덕분에, 두 아이와 주변의 아이들이 연결되며 함께 배우고 함께 자란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조라 개교 9년 차에는 전교생 260명 중에서 소위 ‘장애’가 있다고 진단을 받은 어린이가 52명이었죠. 장애인 수첩을 가지고 있는 아이보다 훨씬 더 난폭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장애’라는 말도, ‘인클루시브(포용) 교육’이라는 말도 쓴 적이 없습니다. ‘특별지원’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특별’이라는 게 대체 뭘까요? 라고 반문합니다.


예전 학교에는 다니지 못했지만, 오조라에서는 매일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많습니다. 제가 “왜?”라고 물으면 대부분 학생들이 “분위기가 다르다”고 대답합니다.


ⓒ간사이TV방송 <모두의 학교> 텔레비전 버전은 “현장으로부터의 교육개혁”이라는 평을 받고 제68회 문화청예술제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일본 전역에서 공동체상영이 진행 중이다. 웹사이트 http://minnamovie.jp


어떤 가르침은 폭력이 된다


가나타는 흰 쌀밥밖에 먹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급식이 시작된 지 이틀째에 오이가 나왔다고 합니다. 담임선생님은 가나타의 편식을 고치겠다며 열심히 가르쳐 억지로 오이를 먹게 하려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가나타는 엄마에게 “학교에 귀신이 나왔다”고 하더니,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증상이 나타나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가나타의 의무교육이 2주만에 끝나버리고 만 것이죠.


우리는 가나타에 대해 가나타의 어머니에게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이 접시에 바퀴벌레가 두 마리 있어요. 몸에 좋으니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겠어요? 가나타에게 오이는 바퀴벌레예요.”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교무실에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가나타가 마음 놓고 학교에 올 수 있다면 다른 아이들도 마음 놓고 올 수 있다. 가나타가 마음 놓고 올 수 없는 학교라면 다른 아이들도 마음을 놓은 척하고 있을 뿐”이라고. ‘가르침’을 직업으로 삼는 우리지만, 어떤 ‘가르침’은 한순간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애초에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다른 사람의 힘을 활용하자, “팀의 힘으로 아이들을 만나자”는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무리하게 아이들에게 힘을 썼을 때, 그 힘에 굴복한 아이는 학교에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 힘을 뛰어넘은 아이가 있으면 학급 전체가 무너집니다. 학교 내부를 열고, 전체 교직원의 팀과 서포터와 지역주민 등 아이들 주변에 있는 ‘어른 팀’의 힘으로 아이들을 길렀습니다.


영화에서 4학년인 ‘세시로’가 나와서 저에게 “죽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죠? 세시로는 다른 초등학교의 특별지원학급에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둔 아이였습니다. 저는 반쯤 진심을 담아 “그럼 안녕히~”라고 하고는(웃음), 동료와 교대했죠. “죽어!”라고 말하게 한 것은 저니까요. 동료가 다가가자 세시로는 천사 같은 얼굴을 했다죠. “죽어”라는 말은 세시로가 이전 학교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죽어”와 세시로의 “죽어”는 같은 말이지만 다르다는 것을 주변 아이들이 배울 수 있게 해야 아이들의 소중한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간사이TV방송 <모두의 학교> 텔레비전 버전은 “현장으로부터의 교육개혁”이라는 평을 받고 제68회 문화청예술제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일본 전역에서 공동체상영이 진행 중이다. 웹사이트 http://minnamovie.jp


‘매일 함께’ 배운 아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힘


6학년으로 전학 왔던 가나타는 첫 등교를 제가 있는 교장실로 하더니, 좀 익숙해지자 교무실, 사무실, 그리고 1학년 교실로 옮겨갔습니다. 가나타는 “다시 설명해줘!”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1학년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스스로 6학년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가을에는 학교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운동회란 건 일상이 아니니, 가나타와 상의해 본부석에 저와 함께 앉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1학년들의 공 넣기 게임을 보더니 “나도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겁니다. 보내줬더니, 1학년 아이들은 현명하기도 하죠, 키가 큰 가나타에게 속속 공을 건네더라고요.(웃음) 결국 가나타가 있는 팀이 이겼습니다.


보호자와 지역 주민들이 모두 그 광경을 보고 있었죠. 개중에는 “왜 6학년 아이가 1학년 속에 들어가 있어?”라고 얘기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나타는 1학년 때 2주밖에 학교에 가지 못했으니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더군요. 이것이 매일을 함께 보내는 아이들의 성장입니다. 어른을 바꾸는 것은 이 아이들의 힘입니다.


‘받아들인다’는 말의 이면


가나타는 수업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매일 조회부터 종례까지 6학년 교실에 있었습니다. 모두의 분위기, 목소리를 한껏 빨아들여 말이 굉장히 늘었습니다. 어느 날 담임선생이 연락장에 “가나타는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교실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받아들일 자세를 잘 갖추고 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가나타의 어머니가 기뻐하리라 생각했지만, 어머니로부터 온 답장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받아들여지는 동안에 가나타가 다시 학교에 귀신이 나왔다고 말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지 불안합니다”라는 내용이었죠.


아시겠어요, 여러분? ‘받아들인다’라는 말은 받아들여 주는 쪽이 없어지면 가나타가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받아들인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배제를 만드는 말도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말썽을 피우면 ‘발달장애’라는 이름을 붙여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런 특성이 생기는 것이죠. 주변이 ‘함께 키우면’ 모두가 마음 놓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됩니다. 모든 아이가 지역 사회의 보물입니다. 아이 주변에 있는 여러 ‘어른 팀’의 힘으로, 누구 하나 배제하지 않는 지역의 학교를 만듭시다.

학교가 바뀌면 지역이 바뀝니다. 

지역이 바뀌면 사회가 바뀝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가시와라 도키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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