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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페미니스트들 “일터의 성평등”을 묻다

민주노총과 페미니즘의 만남, 그 뜨거운 열기 속으로



“젊은 여성 조합원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제가 뜨끔할 정도로, 민주노총에 요구하는 사항들을 이야기해 달라.”


“Feminist”(페미니스트)라는 글씨가 쓰인 민주노총 티셔츠를 입은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의 인사말로 시작한 청년여성 집담회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가 지난 달 28일 저녁 서울 마포 창비서교빌딩 50주년 홀에서 열렸다.


주로 ‘남성노동자’의 얼굴로 대변되어 왔던 민주노총을 떠올려보면 민주노총과 페미니즘의 조합은 아직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최근 여성노동자와 여성조합원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그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고자 노력해오고 있다.


작년엔 흔히 ‘여성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 일터에서 젠더 고정관념을 깨며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집담회 <젠더를 뭉갠 언니들: 여성의 일이 궁금하다>를 열었다.(관련기사: ‘남자직업, 여자직업’ 고정관념을 깨라 http://ildaro.com/7938) 지난 3월엔 여성노동자에 대한 사상 검증과 탄압에 항의하며 “IMC 게임즈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페미니스트 사상 검증과 전향 강요 중단하라”는 성명을 내며, ‘성평등한 일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민주노총이 주최한 청년여성 집담회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 현장에서 배부된 홍보 엽서. ⓒ일다(박주연)


이번 집담회는 조금 더 나아가 “페미니즘을 외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제가 패널로 나간다고) 집담회 홍보 웹자보를 조합원 단톡방에 올렸더니 잠시 분위기가 싸해지더라고요.(웃음)”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이 이렇게 말한 것처럼, 여전히 페미니즘은 노동운동계 내에서도 낯설고, 불편한, 뜨거운 감자다.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했던 이 자리. 민주노총에서 청년여성들이 모여 자신의 일터 생활과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경험, 그리고 노동조합이 스스로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는 청중들과 함께한 집담회의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이력서에 가족 사항을 적지 않고 제출했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회 김민지 조합원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포기하고 쓰리 잡을 하면서 월 백십만 원을 벌면서 살던 시기가 있었어요. 이렇게 계속 일을 할 수 없겠다 싶어서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기 시작했고, SK텔레콤 자회사 콜센터에 들어갔어요.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에 속하게 되었다는 설렘이 있었죠.”


“그렇게 일하면서 결혼하고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일한 부서는 보통 콜센터에 전화하면 1번으로 연결되는 일반 부서였거든요. 임신하고 나니 욕이나 성희롱 언어를 듣는 일자리를 지속하기가 더 힘들더라고요. 여자가 결혼, 출산, 육아를 일과 병행하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힘들어서 퇴사했는데, 둘째를 낳고 나니까 경제적인 부분이 힘든 거예요. 출산한 지 40일 만에 구직에 나섰는데 11 곳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대부분 ‘아이가 아프면 달려가야 되는 거 아니냐’, 애 엄마는 부담스럽다는 이유였죠. 결국 이력서에 가족 사항을 빼고 냈어요. 그렇게 지금 SK브로드밴드 하청업체인 회사에 들어왔어요.”


▶ 청년여성 집담회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에 참가한 패널들. 왼쪽부터 김민지 조합원(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회), 임종린 지회장(파리바게트지회), 홍신애 조합원(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회), 김다민 조합원(영화산업노조), 우지영 조합원(서울대병원지부) ⓒ일다(박주연)


□ “계약 조건도 모른 채 일했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회 홍신애 조합원


“어렸을 땐 나름 유복한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가 스무 살로 넘어가는 시점에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어요. 이력서를 엄청 냈는데 이유는 모른 채 불합격 통보만 계속 받았었죠.”


“SK브로드밴드 지역센터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권유로 일을 하게 시작되었어요. 면접 본다고 해서 회사에 갔는데 내일부터 나오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노동 조건이나 계약 관련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고, 1년이 다 되도록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태로 일했어요.”


“센터에 보통 여성 직원이 4~5명인데 임금이 최저임금이에요. 제가 처음 들어갔을 때, 10년 정도 일하시는 분들과도 비슷한 수준이더라고요. 임금협상 이런 게 없으니까 ‘월급 올리려면 이직밖에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센터를 옮긴 게 벌써 5번 정도인데, 아주 조금 올랐어요.”


□ “병원은 간호사를 소모품처럼 생각한다” 

-서울대병원노조 우지영 조합원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공대 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여자는 간호사 괜찮다’며 공대보다 더 학벌이 좋은 대학의 간호학과를 가라고 한 거예요. 부모님도 동의하셨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간호과에 가서 졸업하고 병원에 취업하게 되었죠.”


“병원들에서 1년에 간호사를 보통 3백 명 뽑아요. 그만큼 사직을 많이 한다는 뜻이에요. ‘응급사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세요. 그래서 병원에서도 간호사를 소모품처럼 생각해요. 고작 5일 전에 출근하라고 연락을 하기도 해요. 먼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죠.”


“병동에서 근무하면 활동 범위가 정해져 있으니까 사실 답답해요. 또 간호사 사회가 굉장히 권위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일 해보겠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선뜻 하겠다고 했죠.”


□ “담배피고 당구치는 남자들이 진급하는 구나”

-파리바게트지회 임종린 지회장


“이십대 초반에 친구가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해서 따라 갔다가 다단계에 들어가게 되었고 빚을 지게 되었어요. 돈을 빌려줬던 친구가 돈 갚으라고 파리바게트 알바를 알려주더라고요.(웃음)”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렇게 11년을 다녔죠. 종종 (회사가) 이상하다 싶은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제가 중간관리자가 되었을 땐 회사 논리를 적용해서 후배들한테 ‘회사가 싫으면 네가 떠나라’ 식의 말을 하기도 했었죠. 모범사원으로 뽑히기도 했고 핵심인재로 선발되기도 했고, 애사심 폭발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실력도 안 되고 경력도 안 되는 남자들이 줄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후배였던 남자 기사가 진급해서 내 위로 올라가는 걸 보고, 열심히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기술만 쌓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자기들끼리) 같이 담배 피고 당구 치는 남자들이 진급하는 구나.’ 우리 노조가 근로수당 문제로 만들어진 걸로 알려졌고 물론 그것도 맞는 얘기지만, 남녀차별적인 진급 등 불합리한 일들을 겪으면서 노조를 만들게 된 거에요.”


▶ 민주노총 청년여성 집담회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 사회를 본 박인화(화물연대본부)씨와 민주노총 정나위씨. ⓒ일다(박주연)


일터에서 “여성은 항상 차순위”


영화산업노조의 김다민 조합원은 “애니고등학교 영화과를 나왔는데 그 땐 여성 비율이 훨씬 높았고, 대학에선 여남 비율이 비슷하거나 여성이 높은데, 현장에 나가면 대부분이 남성”인 현실을 지적했다. “여성은 항상 차순위”인 것 같다며, “막내를 남성으로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일하는 걸 보면 그냥 비슷한 일을 한다”고 토로했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회 유일한 여성 교섭위원이기도 한 김민지 조합원은 “같은 직종을 비교했을 때 남자보다 여자가 월급이 많이 받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동일노동을 하면서도 임금 불평등을 겪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스스로에게는 (노동운동을 해나가는) ‘결의’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김민지 조합원은 “우리는 위축되어 있을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며 청중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파리바게트지회 임종린 지회장은 지회 특성상 “여성조합원이 70~80% 비율을 차지하고, 간부 비율도 여성이 높기 때문에 ‘여성’지회장으로 겪는 어려움은 특별히 느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인권 문제, 노동인권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서 만든 노조인데 아직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어서 매우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파리바게트 노동인권 침해 근절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제소와 관련하여 내부 논의할 때 ‘여성 승진차별 문제’를 넣겠다고 했더니 그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다’며 꺼려하는 모습을 보며, 여성노동자가 직면하는 이슈에 대한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원도, 제도도 없이 외로운 워킹맘들


워킹맘으로서의 경험도 공유되었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회 김민지 조합원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탓에 남편이 아직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 청중들이 탄식하기도 했다. “남편이 군대 갈 때를 대비해서 생활 자금을 지금 모아둬야 하는 거예요. 그 때 제가 4인 가족을 책임져야 하잖아요.”


김민지 조합원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더 좋은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노조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고 하면서도 자녀를 둔 여성이 비난 받지 않고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를 탄탄히 마련해주지 않는 사회를 대신해서, 스스로 행동에 나서야만 하는 워킹맘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노조 우지영 조합원은 “운이 좋게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환경이었고 지금 육아휴직 중”이라고 밝혔지만, “많은 간호사들이 육아휴직에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3교대를 해야 하는 환경인데 동료 중에 누가 임신을 하면 그 사람을 나이트 근무에서 빼야 하고, 그럼 나머지 사람들이 그걸 나눠서 해야 하는 거죠. 사실 회사에서 이런 부분을 인력을 보강하면서 커버해줘야 하는데, 일하는 사람들끼리 나눠서 하라고 하니까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같은 여성으로서 임신과 출산 후의 상황들이 이해가 되지만, 막상 그로 인해 자신의 일이 배가 되거나 대신 맡아야 하는 업무가 생긴다면 피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현실은 ‘여성이 다른 여성을 탓해야 하는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우지영 조합원은 또 “육아휴직을 끝내고 병원으로 돌아가면 수습 기간을 이틀 정도밖에 주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시 일에 적응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함에도 ‘일도 못하는데 왜 일터로 돌아왔냐?’는 눈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 민주노총 청년여성 집담회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 ⓒ일다(박주연)


미투 이후, 성평등한 일터는 만들어지고 있나?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서울대병원노조 우지영 조합원은 “남성 간호사가 신입 여성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술을 먹여서 집에 데리고 가는 등의 성희롱/성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수간호사에게 밝혔지만, 남녀 사이의 일로 치부하자 피해자들이 노조로 문제 제기를 했던 사건”을 언급했다. 그리고 “인사위원회로 회부해 징계 처리를 할 수 있었던 건, 노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지영 조합원은 “이런 사건의 경우 여성간부가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게 되는데, 여성간부들이 더 다양한 일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음에도 성폭력 해결 문제에만 매달리게 되는 환경에 대한 고민과 우려”를 털어놓기도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져야 여성들이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중요한 지적이었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회 김민지 조합원은 미투(#MeToo) 운동 이후 “상사가 미투 공화국이라는 농담을 해서 화가 났었던 경험”을 토로하며 “미투는 가해자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지치지 않도록 “소신을 가지고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며 “페미니즘 관련 서적도 읽고, 다양한 실천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또 홍신애 조합원은 “개인적으론 민주노총의 성평등 인식과 관련해서 더 바라는 점들이 있고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다른 조직들에 비해) 미세한 정도로 낫다”고 당근과 채찍을 주는 발언을 하여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말한 영화산업노조 김다민 조합원은 “요즘 고위직이라고 할 수 있는 실장급, 조감독 이상 급에 여성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위계권력이 지배했던 노동환경이 변화하는 걸 보면서, 그런 환경을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으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청년여성 패널들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노조란 무엇?’이라는 질문에 대해 ‘자유’, ‘등대’, ‘학교’, ‘새로운 세상’, ‘빽’이라고 답하며 노조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에겐 동지가 있다”는 말로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 집담회를 마무리했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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