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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혼자가 아니야…일본에선 ‘위투’(#WeToo) 운동

성폭력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는 사회를!



작년 미국 헐리우드의 성희롱을 고발한 여성들의 목소리에서 시작해 ‘미투’(#MeToo)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일본에선 올 2월 ‘위투 재팬’(#WeToo Japan)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발기인 중 한 명이자, 페미니즘에 대해 활발하게 발언하고 있는 후쿠오카현의 20대 여성 모니카 씨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나의 페미니즘 ‘내 삶의 방식은 내가 정한다’


안녕하세요! 모니카라고 합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라고 공표하며 SNS를 통해 젠더와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25살의 일반인입니다.


작년 8월 1일, 저는 “페미에라”(feminism.jp)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Feminism Era’를 줄여 ‘페미에라’. ‘이제부터는 페미니즘의 시대다’ 라는 생각을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먼저 저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평범한 일본 청년인 제가 왜 페미니즘을 표방하고 활동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요.


▶ “저는 앞으로도 성폭력,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발언을 계속하겠습니다.” 피켓을 든 모니카 씨. (필자 제공 사진)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여자는 이런 거 하면 안 돼”, “여자는 이런 걸 해야 해”라는 말에 강한 위화감을 느꼈고, 그 말을 따르기가 죽기만큼 싫었거든요. 그땐 ‘남자가 되고 싶어. 나는 남자야’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OO니까 ~해야 해”라는 말은 절대 따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나의 페미니즘은 거기서 출발합니다. “나에게 가치관을 강요하지 마. 내 삶의 방식은 내가 정해.”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서, 점점 바빠진 저는 그런 생각을 할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뉴스가 포착되었습니다. 브라질에서 16살 여자아이가 33명의 남성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뉴스를 떠올리면 당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 ‘뭔가 이상해’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텔레비전이나 광고에 넘쳐나는 여성혐오와 젠더 차별의 언어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휘말리는 수많은 범죄, 그때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젠더의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뭔가 이상해’라는 마음은 점점 커졌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로 바뀌었습니다. 왜 지금까지도 이런 차별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심지어 그게 문제란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조차 많다니…. 어떻게든 해야 해, 뭔가 해야 해. 그래서 저는 블로그나 SNS를 통해 발언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성차별적이라고 생각되는 방송 광고들. 시대착오적 연상 게임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페민> 제공


분노를 표출하면 안 된다고? 화 내도 괜찮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나 지인이 성차별적인 표현과 생각을 드러냈을 때, 나는 기본적으로 그 자리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그럴 때의 마음가짐은 우선 공들여 설명하는 것이죠. 왜 그런 표현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왜 그런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가능한 똑바로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겨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금세 감정적이 되었었죠. 그런 발언을 들은 순간 “뭔 소리야! 불쾌해!”라고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공들여 설명해보기로 방식을 바꾼 것은, 아마도 파트너의 존재가 클 것입니다. 남자친구는 “남자니까, 여자니까”라는 인식을 깊게 내면화하지 않은 사람으로 “스스로 즐길 수 있으면 그만” 유형입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의 성차별 현황을 알지 못했고, 내가 페미니즘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특히 몇 차례나 충돌했습니다. 그가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충돌을 반복하던 중 그가 “모를 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통계자료 등을 보여주며 공들여 설명하면 대부분 잘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거 정말 이상하다”며, 이따금 같이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의 변화하는 태도를 보면서, “현실을 제대로 알면 동료가 되어줄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 분명하게 말해두고 싶은 것은 ‘화를 내는 것은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설명을 해주려고 해도 듣기조차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을 때, 또 너무도 심각한 성차별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가만 두지 않겠어!” 상태가 됩니다. 엄청나게 화를 내죠.


일본에서는 일상 속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금기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평화주의라는 이름의 무사안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윗사람을 공경하자, 모두 사이좋게 지내자, 그리고 때로는 “여자는 정숙하게 행동하자”는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화를 내도 됩니다. “감정적이 되지 말라”고들 하지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발로 걷어차여도 침착할 수 있어?”라고. 우리는 화를 내도 괜찮습니다.


왜 #WeToo인가?


저는 전 TBS기자의 성폭력을 고발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 씨를 지지하기 위해 올해 초, 온라인 서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구제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오리 씨와 함께 목소리를 냅시다!”라는 제목으로 2만5천319명의 서명을 받아 시오리 씨에게 전달했습니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연대하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느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평범한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지만, 수만 명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 이토 시오리 씨의 저서 <블랙박스>를 손에 든 모니카 씨. 이 책은 일본 사회가 성폭력 피해를 밝힌 여성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필자 제공)


그리고 2월 22일, 이토 시오리 씨를 비롯해 UN Women 아시아태평양지부장 가토 미와 씨, 사단법인 밥상엎기여성행동 오자와 쇼코 대표 등이 ‘#WeToo Japan’ 프로젝트를 설립하였습니다. 저도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는데요.


#WeToo Japan이란 성폭력과 성희롱, 권력형 괴롭힘, SOGI 괴롭힘(성적 지향,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적 언행) 등 모든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앞으로’를 만들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한 플랫폼입니다. #WeToo Japan은 캠페인과 심포지엄 개최, 정보 제공을 중심으로 활동해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모든 폭력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나가야 할지 기업이나 단체, 대학, 지자체 등이 선언하도록 하는 ‘#WeToo 선언’에 주력하려 합니다.


“아직 일본에서는 #MeToo조차 확산되지 못했는데, 왜 지금 #WeToo인가?” 적지 않은 분들이 그런 의문을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에서는 #MeToo라고 목소리를 높이기엔 그 벽이 아직 너무 높습니다. 회사에서 목소리를 냈다가 해고될 수 있고,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냈다가 심각한 악플과 공격에 시달리는 현재 상황에서 #MeToo라고 목소리를 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우선은 #MeToo라고 소리 내고 싶은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MeToo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WeToo로 그 토대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 성폭력이나 권력형 괴롭힘 문제는 당사자들 간의 사적인 문제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극히 소수의 피해자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만 목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온 제도와 문화, 분위기가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역시 언제 피해를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WeToo Japan은 지금까지 이러한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만들고, 함께 움직이게 하기 위한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 모니카 씨가 모은 온라인 서명(일부 손글씨)을 무릎에 놓고 이야기하는 이토 시오리 씨. (필자 제공)


누군가의 담요가 되어주세요


‘#WeToo Japan’은 3월 3일에 도쿄 시내에서 창설 기념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주제는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고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발언자로 나섰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글쓰기를 좋아해서 성차별이나 성폭력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가령 전철이나 버스에 탔을 때 “치한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 없나, 괜찮은가”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에게 맞는 목소리 내는 방식과 행동의 방식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면 됩니다.>


행사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하고 싶네요. 그때 약 2만5천명의 지지 서명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인쇄하여 시오리 씨에게 전달했습니다. 시오리 씨는 제가 전달한 서명을 받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서명을 지금 한 시간 정도 무릎에 놓아두었는데, 굉장히 따뜻하네요.”

“항상 밖에 혼자 서서 덜덜 떨고 있는데 누군가 담요를 덮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서명을 무릎에 놓고 있으니 2만5천장의 담요가 내 무릎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따뜻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시오리 씨의 말을 들으면서, 서명운동을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오리 씨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제아무리 강해보이는 사람이라도 괴로워하는 사람을 절대로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오리 씨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추워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담요가 되어주세요. 여러분도 누군가의 담요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담요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려고 합니다.



-페미에라 블로그 feminism.jp

-모니카 씨의 트위터 계정 @monimonica_san

-#WeToo Japan 트위터 계정 @wetoo_japan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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