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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메이크업, 찌찌해방…‘#탈코르셋’ 침묵을 깬 여성들

다큐멘터리 영화 <임브레이스>와 <바디토크> 이야기



‘여성과 남성이 반반인 이 세상에서 싸우지 말고 조화롭게 잘 살아보자’는 식의 말을 들을 때 종종 떠오르는 숫자들이 있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피해자 98.4%가 여성(김현아 변호사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등 실태 및 판례 분석’ 참조)인 것이나, 6.13 지방선거의 17개 전국 시도 광역단체장 후보 중 여성 비율이 8%인 것과 같이 매우 젠더 불균형한 숫자들 말이다. 거기에는 거식증 및 폭식 후 토하기를 반복하는 섭식장애 환자의 90%가 여성이라는 숫자도 포함된다.


음식을 거부하거나 갑자기 한 번에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등의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 중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뭘까?


SNS에서 ‘#학생이_겪는_코르셋’을 검색해 보면 중고등학교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여성들이 ‘군살 없이 날씬한 몸과 메이크업한 예쁜 얼굴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있으며 자신의 얼굴과 몸 이미지를 검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냥 여자들이 예뻐 보이고 싶어서 하는 거 아냐?’라고 무심히 지나가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 불균형하고 또한 불합리하다. 화장을 안 했다는 이유로 ‘어디 아프냐?’는 말을 듣는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여성들은 학교, 직장, 사회 그리고 심지어 집에서도 ‘여성이 갖춰야 하는 미(美)와 여성스러움’을 강요 받고 있다.


특히 십대들이 겪는 외모 스트레스가 심각해졌다. 예전엔 ‘대학 가면 이뻐진다더라, 살 빠진다더라’는 말들이 여성청소년들에게 외모보다는 공부에 집중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학생이_겪는_코르셋’을 외쳐야 할 만큼 말이다.


여성들의 부정적 몸 이미지는 미디어가 조장한 것


▶ 타린이 만든 ‘비포/애프터’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반향을 이끌고 왔다 (출처: <임브레이스> 장면 중)


다큐멘터리 영화 <임브레이스>(Embrace, 타린 브럼핏 감독, 2016년)는 타린 브럼핏이 자신의 ‘비포/애프터’ 사진을 올리고 난 후 일어난 격정적 반응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시작한다. 그 사진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포/애프터’ 이미지가 아니라, 타린이 출산 후 변해버린 몸에 대해 자책하다가 바디 빌더(body-builder) 대회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 결과가 ‘비포’이고 현재 자신의 몸이 ‘애프터’였다.


타린은 목표를 이루고 대회에 나갔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 하나를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 부었고, 대회에 나온 멋진 몸매를 가진 여성들이 서로 ‘난 아직 안 예뻐. 여긴 더 빼야 해’ 라는 말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거다.


운동에만 매달리던 생활에서 벗어나 적당히 운동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족들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만들어진 몸인 ‘애프터’ 사진을 본 사람들 중엔 인신공격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타린의 용기에 감흥을 받은 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댓글, 메시지, 이메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던 타린은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그동안 진짜 자신과 마주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미워했는지 알아내고자 움직인다.


타린이 호주에서 만난 코스모폴리탄 편집장 미아 프리드만(Mia Freedman)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잡지를 너무 좋아했지만, 거기에 나오는 여성들이 자신과 다르며 그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그래서 자신이 이 잡지의 편집장이 되었을 때, 다이어트 지면을 없애고 ‘다양한 피부색, 몸매, 얼굴의 모델’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화보를 찍는다고 하니 디자이너들이 옷을 제공해 주지 않았다. ‘큰 사이즈 옷’이라고 인식되기 싫다는 이유였다. 응당 실리는 사진작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이름도 화보에 실리지 않았다. 자기들의 이름을 빼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호주 여성의 ‘평균’ 신체 사이즈와 같은 사이즈임에도 오히려 키가 큰 모델 스테파니아 페라리오(Stefania Ferrario)는 모델 업계에 진입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평균’이 ‘플러스 사이즈’가 되는 이 상황이 놀랍냐고? 아니, 사실 놀랍지 않다. 사회와 미디어로부터 ‘자신이 과하거나 부족하다’는 부정적 메시지를 주입 받는 여성들에게 이미 그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 스테파니아가 길에서 당당하게 워킹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임브레이스> 장면 중)


영화에 등장하는 마리카 티거만(Marika Tggemann) 교수는 “풍만한 몸매가 미의 기준이었던 피지에 TV가 보급된 이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마른 몸이 유행하고 섭식장애가 발견되었던 사실을 지적하며 미디어의 영향이 막대하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 아이돌 그룹이 마른 몸에 예쁜 화장을 하고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무해한 얼굴로 TV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에 나오고, 유튜브에서 ‘초등학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다이어트’와 ‘메이크업’이 연관 검색어로 뜨는 지금의 상황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성들이 ‘자신을 향한 부정적 바디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만든다.


유방을 둘러싼 터부, ‘그게 뭐라고’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공개된 <바디토크>(Body Talk, 천 신징 감독, 2018년)는 30여명의 대만 여성들이 자신이 몸과 관련해서 2차성징, 월경, 출산, 질병과 장애, 성적 대상화, 자위 등에 대해 터놓고 말한다.


천 신징 감독은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어느 만화를 본 게 계기였다”고 했다. 여성이 주인공이었는데 어느 날 일어났을 때 가슴이 사라졌고, 그러자 가족과 주변인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거다. 단지 가슴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말이다. 감독은 “그 때부터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터뷰이 중에서도 ‘가슴’과 관련된 사연을 말하는 이들이 나온다. 어렸을 때 민소매 상의를 입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쟤 엄마는 속옷도 안 챙겨주고…’ 등의 말을 소곤거리는 걸 듣고 그 뒤로 민소매를 못 입게 되었다거나, 자신을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게 너무 싫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평평했던 가슴이 조금이라도 솟아 오른 후부터 그러니까 ‘여성’이라고 하는 몸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면서 온갖 제약들이 등장했다. 브래지어 끈이라도 보이면 ‘여자가 칠칠맞지 못하게…’라는 훈계를 들어야 하고(그래서 투명 끈을 따로 사서 한 적도 있다), 가슴골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 혹은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얼마 전, SNS에서는 모 학교의 ‘검은색 브래지어를 금지한다’는 속옷 규제에 대해 학생들이 항의 목소리를 내었을 정도로, 가슴은 그 자체뿐 아니라 속옷까지 규제 당하는 신성하고도 문란한 몸의 부분으로 취급된다.


지난 5월 26일 열린 월경페스티벌에서 ‘찌찌해방’ 퍼포먼스를 한 불꽃페미액션의 사진 포스팅이 페이스북에서 삭제된 사건이 있었고, 그에 항의하기 위해 해당 단체 여성들은 6월 2일 페이스북코리아 본사 앞에서 다시 한 번 퍼포먼스를 벌였다. ‘공연음란죄’에 해당될지 모른다며 퍼포먼스를 말린 경찰의 행동도 의아했지만, 언론 보도 이후 퍼포먼스 사진에 달린 댓글들도 ‘감히 여자가 가슴을 내보이다니’라는 격분부터 가슴을 품평하는 성희롱과 인신공격까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임브레이스>에선 ‘나체 수영’을 하는 행사에 초대 받은 타린이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영을 시작하기 전 나체로 해변에 서 있는데 옆에 있던 여성이 밝고 큰 목소리로 “저기 나처럼 가슴이 하나뿐인 여자가 있네” 라고 외친 후 그 여성에게 다가가서 껴안았다는 거다. 두 여성 중 한 명과 인터뷰 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 여성은 올해 40살이 되었고 “자신을 받아들이는(embrace) 좋은 기회라서 참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뭐 어때, 그냥 가슴인데.”


그래, 가슴. 두 개였다가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우리 몸의 일부분이라는 거다. 품평해도 되는 물건이 아니고, 음란물도 아니다.


‘탈코르셋’, 다양한 해방의 시작


▶ 다큐멘터리 영화 <바디토크>(Body Talk, 천 신징 감독, 2018년)에 등장하는 인터뷰이


<바디토크>에는 다양한 인터뷰이가 나오지만 스크린에 좀 더 자주 등장하는 여성이 있다. 풍만한 몸을 가진 이 여성은 뷰티(메이크업) 인터넷방송을 하는데, 라이브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멋있어요~’라는 응원과 ‘뚱보가 어디서 나대냐’는 공격을 둘 다 받는다. 이 여성은 누드모델로도 활동하는데 인터뷰에서 “뚱뚱한 몸에도 성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며 “성적 요소를 찾고 싶다면 찾아보라”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비튼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매일 싸우면서 자신을 드러내며 당당히 살아가고 있지만 “제 안엔 괴물이 있어요.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라며 내적으론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는, 그래도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과정은 아름다워지기 때문이 아니라 날기 위해서잖아요” 라고 말한다. 그는 탈코르셋에 성공한 걸까, 아님 아직 진한 화장을 하며 거리로 나서니까 아닌 걸까?


물론 노메이크업, 노브라, 노다이어트 등의 행위를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다. 미국의 유명 가수인 알리시아 키스(Alicia Keys)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무대 및 다양한 행사에 서는 행위를 2016년부터 해 오고 있다. 화려한 시상식과 무대에서 화장하지 않은 여성이 말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목격함으로써 대중들이 ‘화장을 꼭 안 해도 되는 거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여짐’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실천에 연대할 때 사회적 영향력도 더 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나의 어떤 모습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 말이다.


‘탈코르셋’이라고 부르는 행위/운동을 단순히 노메이크업, 노브라, 노다이어트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액션의 목표가 사회가 규정하는 일방적인 이미지에 저항하고, 그것을 거부하며 각 개인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숏커트를 하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가슴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다녔을 때에도 ‘여자야 남자야?’라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지 않고 그냥 ‘나’로 있을 수 있을 수 있어야 하니까.


▶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임브레이스>의 등급은 놀랍게도 ‘청소년 관람불가’다. 여성 성기 사진이 나와서일까? 하나 밖에 없는 가슴을 노출했기 때문일까? 다양한 몸의 여성들이 누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와서일까? 우리 딸은 내가 겪은 그 고통을 겪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타린의 말이 무색해지는 현실이다.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얼굴/몸과 관련된 이미지에 대한 편견과 금기에 대해 해야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이쁜이 수술’이라 불리는 여성 성기의 모습을 일반화하는 의료 행위나, 더 심각하게는 여성할례와 같이 잔혹한 행위도 있다. 여전히 지금도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백화점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사회가 규정한 여성노동자의 이미지를 강요받고 있다.


<바디토크>의 천 신징 감독은 “인터뷰이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였냐”는 질문에 “한번 다같이 모여서 편집본을 봤는데 인터뷰이 중엔 ‘나는 저 사람이 한 얘기 못했다, 나도 저 얘기 하고 싶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사람 당 거의 2~3시간씩 인터뷰를 했는데 영화에선 몇 마디밖에 쓸 수 없다는 점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다. 더 많은 여성들이 어떤 제약이나 규제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뱉어내고 서로 공유하면서 함께 부정적 바디 이미지를 깰 수 있도록 서로를 응원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오늘부터 친구든 가족이든 누구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붙잡고 ‘바디토크’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사회가 그동안 금기시하며 알려주지 않았던 그 문 앞에서 침묵을 깨고 소리를 내는 거다. ‘이제 이 문을 내가 열 거니까, 부숴버리기 전에 열쇠를 내어 놓으라’고 말이다. 아름다운 내 몸을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는 건 나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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