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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게 된 신입생들에게 길잡이를…
‘2018 신입생 페미니즘 캠프’ 기획단을 만나다(상)
벚꽃 날리는 봄날의 대학은 새로운 얼굴들로 북적거린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미투(#MeToo) 운동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열기가 뜨거운 2018년, 이 시기에 대학 생활을 시작한 신입생들에게 대학이라는 공간은 조금 특별할지 모른다. 특히 페미니스트 신입생이라면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2018 신입생 페미니즘 캠프’가 3월 31일, 4월 1일 양일간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강의와 ‘모두를 위한 월경권 워크샵’ 등 프로그램을 담은 캠프를 준비한 건 연세대, 동국대,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총여학생회 및 여성주의 학회와 소모임들로 이루어진 기획단이다.
▶ 2018 신입생 페미니즘 캠프 <페미니스트가 떴다!> 포스터. (캠프 기획단 &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주최)
과연 어떤 페미니스트들이 신입생 페미니스트들을 위해 이런 행사를 준비했을까,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대학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궁금해졌다. 지난 16일 홍대 근처 한 카페에서 이번 캠프 기획단으로 활동한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이수빈씨,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 윤원정씨, 성균관대학교 여성주의 소모임 ‘나은’의 퍼포린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신입생 페미니즘 캠프’는 어떻게, 왜 기획하게 되었나요?
이수빈(연세대 총여학생회): “처음엔 우리 학교 총여학생회 정책으로 시작을 했어요. 기획 단계에서 논의를 하다가 ‘이제는 대학끼리 연대도 조금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연대가 신입생으로 대학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이뤄지면 더 의미있을 것 같다’는 의견들이 나오게 됐어요. 공동기획단을 모으려고 단톡방(수도권 대학 총여학생회, 페미니스트 동아리, 소모임 활동가가 모여 있음)에 제안서를 올렸는데, 다들 참여하겠다고 응해주었어요.”
퍼포린(성균관대 여성주의 소모임 ‘나은’): “제안서를 받았을 때가 1월쯤이었는데, 사실 그 때 제가 주변에 농담처럼 ‘2018년 목표는 탈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닐 때였어요. 취준생이어서 이제 취업 준비해야 하니까, 그런 투정을 부리고 다니는 시점이었죠. 제안서 처음 봤을 땐 ‘난 안 해야지’ 생각했는데 친구가 자기가 다 할 테니 같이 하자고 해서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또 재미있더라구요.(웃음)”
윤원정(동국대 총여학생회): “우리 총여학생회도 연세대랑 비슷한 걸 논의하고 있었어요. 신입생들 상대로 학기 초부터 ‘무언가를 빵’하고 보여주면 학내 분위기가 잡힐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거든요. 캠프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건, 신입생들이 ‘내가 혼자가 아니고 나 같은 사람들,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외부에서 ‘너 페미니즘 그런 거 해?’ 이런 질문 많이 받을 텐데 겁낼 필요 없다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었어요.”
이수빈: “맞아요. 그런 임파워링이 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라는 프로그램을 넣은 거고요.”
▶ <페미니스트가 떴다!> 캠프에서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이정주 크리에이티브 다양성 센터 대표 강의 중. ⓒ2018 신입생 페미니즘 캠프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강의를 주요하게 프로그램에 넣은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이수빈: “사실 저 스스로 ‘우리(페미니스트)에게 역사가 있나?’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냥 삽질이 아닐까?’ 창세기 쓴다고 표현할 정도로요.(웃음) (페미니즘 운동) 역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새로웠고 신기했고 그렇기 때문에 또 약간 거리감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캠프에서 우리에게 역사가 없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원정: “여성의 역사는 늘 지워졌잖아요. 그래서 페미니즘을 접하면, 마치 내가 이 고민을 처음 하는 사람 같고, 또 뭔가를 해도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0’에서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 역사를 알기 힘들고, 그래서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임파워링 측면에서도 운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을 것 같았고요.”
이수빈: “근데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는 역사를 알아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동의하며 다 같이 웃음), ‘우리에겐 너무 필요한데 신입생 참가자도 그렇게 느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윤원정: “그래서 강사님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강사 초빙에 중요한 조건이었어요.(웃음)”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영페미(1990년대 중후반), 영영페미(현재)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요, 세대 간에 단절을 많이 느끼나요?
윤원정: “최근에 느꼈어요. 인터넷 상에서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주로 접하는 분들, 저는 어쩌면 그 분들이 ‘영영페미’를 대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도 SNS 상에서 기혼여성 관련된 비난이랄까 비판이 일었는데, 그런 논란들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지난 페미니즘 운동 역사를 알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이수빈: “가끔 오랫동안 페미니즘 활동이나 연구를 한 선생님들을 만나면, 우릴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뭐 특별한 게 있나 싶은데도 계속 궁금해하는 거예요.(웃음) 그분들은 SNS 상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담론들을 듣고 싶어하시는데, 트위터나 페북 그런 걸 직접 하기는 어려우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소통이 쉽지 않지만, 서로를 비슷하게 궁금해 하는구나 싶어요. 저의 경우에는, 총여학생회가 그래도 공식 기구니까 (윗 세대와) 다양한 접촉이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런 기구가 없는 학교도 많고, 그런 게 없으면 누군가와 연결되기 어렵죠. 저도 소모임 할 땐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2,3 학번 위인 선배 정도였어요.
무엇보다 최근 몇 년 간은 페미니즘 이슈가 워낙 많았고, 그때 그때 나오는 이슈에 대응하기 바빠서 당장의 일 처리가 우선이었어요. 2015년 이후의 소위 영영페미니스트들에겐 기존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지금 당장이 너무 급했으니까요. 지금 당장의 내 문제에 분노하고 그걸 해결하느라,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그런 걸 찾아볼 여유가 없었던 거죠. 결과적으로는 단절이 생기거나 느껴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어요.”
퍼포린: “전 세대 간 단절보다 페미니스트들 간의 단절을 느끼고 있어요. 윗세대와 특별히 단절된 게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서도 다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그걸 제가 많이 느끼는데요, 우리 학교는 수원에 있거든요. 다른 학교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서울에 있는 대학들이랑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소모임에서 대자보를 붙이면 ‘여성주의래, 그걸 뭐 하려고 읽고 있어, 그냥 찢어버려!’ 이러는데요. 숙명여대 경우에는 퀴어 관련 대자보가 붙으면 일종의 ‘안티 퀴어’ 내용의 반박 대자보가 붙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찢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래도 반박을 한다는 얘길 듣고, 대학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우린 전업 활동가가 아니니까. 먹고 살 거, 학점, 이런 거 다 챙겨야 하는데… 그래서 멀리까지 외부 모임에 나가서 참여하고 소통하는 게 힘든 거죠. 학업 병행으로 인한 시간 부족도 있고.”
▶2018 신입생 페미니즘 캠프 <페미니스트가 떴다!> 현장. ⓒ2018 신입생 페미니즘 캠프
-일각에선 요즘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에 관심은 가지지만 활동은 안 하려고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수빈: “제가 그 이야기 많이 하거든요. 친구들이 계속 페미니즘 활동 할 거냐고 물어보면 ‘돈 주면 하지’ 말해요. 친구들은 ‘돈 주면 활동가를 한다고? 그거 말도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하죠. 하지만 돈 걱정 안하면서 살 순 없잖아요. 저는 캠프 준비하면서도 사실 돈 걱정이 제일 컸어요. 총여학생회 활동하면서도 예산 확보하러 다니는 게 일이에요. ‘돈 주세요’ 하면서.(웃음) 개인적으로는 총여학생회 활동이 페미니스트로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퍼포린: “총여학생회가 없는 학교도 많아요. 우리 학교도 2013년에 학생 투표로 총여를 없애는 걸로 결정이 났거든요. 활동을 할 수도 없는 거죠.”
윤원정: “그런데 누군가는 그 역할을 또 해오고 있어요. 얼마 전에 대학 대담회 자리에 갔을 때 ‘성대문과대여성위원회’ 분이 오셨는데 거의 총여학생회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총여가 하는 일들이 여전히 꼭 필요한 일이고, 그래서 누군가가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권한은 없는 거죠.”
퍼포린: “사실 우린 어릴 때부터 ‘입신양명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잖아요. 그냥 학교에서 시키는 거 열심히 하고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교육이요. 전 취업이 잘 된다고 하는 학과에 다니는데, 취업률이 높다고 하는 만큼 공부도 많이 시켜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시간이 없죠. 학과 공부하면 ‘보통’ 사람들이 가는 길인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나의 신념을 따를 수 있을까? 전 그렇게 하기 힘들 것 같아요.”
윤원정: “활동가라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직업인지 모르겠어요. 전 사실 학점 관리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곳에 취업하긴 글렀거든요.(웃음) 그렇지만 저의 행복을 위해서 일정 정도의 자원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것만 충족되면 되는데, 하지만 과연 활동가를 했을 때 그걸 맞출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어요.”
대학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것과, 활동가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도 듣게 되었다. “나서는 게 미덕인 아닌 세상”을 살다 보니 “나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는 거였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서 다시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대면 정말 죽이려고 드니까요.”
“누가 집에 쫓아오거나 뒤통수를 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한동안은 그게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포기했어요. 제가 죽으면 광화문에서 집회 해 주겠지(웃음), 그런 생각이에요.”
담배를 핀다고 욕을 먹기도 하고, 학교 주변에서 페미니즘 소모임 이야기를 꺼냈다거나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어딘가에 인상착의가 서술된 글이 올라오거나, 사진이 찍혀서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얼평(외모 지적) 당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닌 되어버린 그들.
“그래서 (페미니즘 캠프로) 신입생의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때론 학교에 가는 것이 무섭고, 솔직히 비난과 공격을 받으면 상처받기 때문에 스스로의 정신건강이 걱정된다고 하면서도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을 위해 캠프를 기획한 이들이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다음 기사에서 이번 신입생 페미니즘 캠프 후일담과, 현재 뜨거운 감자인 미투(#Metoo)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편에 이어집니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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