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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영역, 여성의 범주를 깬 여성들

<페미니즘과 논다>⑥ 넷플릭스에서 페미니즘 발견하기 Ⅲ



흔히 ‘여성의 것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것들이 있다. 여성이 있어야 하는 가정, 부엌과 여성이 해야 하는 가사노동, 육아, 돌봄 외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그렇게 취급된다. 특히 감정을 써야 하는 일이 아닌 논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 육체적 힘이 필요한 일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영역이 아닌 것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여성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인형놀이, 소꿉놀이보다 레고 쌓기와 라디오 조립을 하며 과학자가 되길 원하는 아이의 꿈은, 여성이어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그런 꿈을 꾸는 아이가 덜 여성스러운 것일까?

 

페미니즘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유는 이렇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여성의 이미지, 능력, 역할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줌으로써 그 여성이라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해준다.

 

이번에 소개할 넷플릭스 콘텐츠들은 사회적 관습과 편견을 깨고 여성의 것 혹은 여성이라는 범위를 부수는 인물이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앞서 소개했던 다큐멘터리 <그녀는 분노할 때 아름답다>에서 나온 말처럼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 F로 시작하지만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딧세이> 공식 이미지

 

TV 시리즈,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딧세이> 8화 (Cosmos: A spacetime odyssey ep.8)

 

요즘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저 별들이 우리와 얼마큼 떨어져 있는지 저 별들은 다 똑같은 건지 궁금했던 적이 있을 거다. 그 물음에 해답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평생을 바쳐 연구를 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피커링의 하렘’으로 불리며 드러나지 못한 채 일했던 여성들이다.

 

여성이 입학할 수 없었던 1901년의 하버드 대학에서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Edward Charles Pickering)은 자신의 계산수(computers)로 여성을 고용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연구에 여성들을 참여시키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일이 ‘지루하고 전문화되지 않은 일’로 여겨져서, 계산수로 일하길 원하는 남성들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에겐 저임금을 줘도 괜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여성들은 단순한 계산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가치와 능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별의 분류법을 만들어 냈고, ‘별의 스펙트럼이 별의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천문학 역사상 위대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일컬어지는 태양의 구성 물질을 밝혀내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 계산수들의 팀 리더였던 ‘애니 점프 캐넌’(Annie Jump Cannon)은 25만개가 넘는 항성 목록을 작성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청각장애인이기도 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위를 받지 못한 채 미국으로 건너와 하버드에서 계산수 팀에 들어갔으며, 이후 여성 최초로 천문학 대학원 과정에 들어간 세실리아 페인(Cecilia Payne)도 있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박사 논문으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회는 이 여성들에게 ‘계산수’의 역할을 주었다. 그게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 어떤 사람도 하지 못한 위대한 발견이었다. 얼마 전, 세계 상위 1% 우수 논문 연구자(HCR)에 2년 연속 오른 박은정 연구 교수의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결혼, 출산, 육아로 어렵게 학업을 마치고 교수 임용이 되지 못한 채 연구교수로 지낼 수밖에 없던 그에게 사회가 준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TV 시리즈, 드라마 <더 블렛츨리 서클>(The Bletchley Circle)

 

▶ TV 시리즈 <더 블렛츨리 서클> 공식 이미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 영국엔 전쟁 중 오고 가는 암호를 해독하는 ‘암호 해독자’(Codebreaker)들이 모여 일하는 블렛츨리 공원(Bletchley Park)이 있었다. 암호 해독자들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그들은 가정을 꾸려야 했고 부인, 엄마의 역할 혹은 미스터리한 싱글 여성의 역할을 부여 받았다. 그 여성들 중 한 명이었던 수잔은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된 어느 살인 사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연쇄 살인범에 의한 것이며, 어떤 패턴이 있다는 걸 알아낸다.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하지만 ‘평범한 주부’로 보이는 수잔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결국 수잔은 7년 만에 친구들을 소집하게 되고 그들의 진짜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추리는 셜록 홈즈 및 남성탐정들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콘텐츠에 조금 질렸다면 <더 블렛츨리 서클>은 분명 신선한 재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남편에게 자신들이 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하고 ‘책모임’이라고 둘러대는 모습이나 경찰들이 수잔의 말을 무시하는 장면에서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서클 멤버들이 모여서 각자의 능력을 펼치고 범인과 관련된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사건을 해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경력단절 여성’으로 불려지곤 하는 그들은 단순히 일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무 일이나 막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각각의 특출한 경험과 능력이 있다. 역할을 제대로 부여 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가 너무 쉽게 부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그리고 여성들이 활약하는 추리물에 ‘삘을 받았다면’ <엘레멘트리>(Elementary)도 볼만 하다. 영화 <미녀삼총사>로 알려져 있는 루시 리우(Lucy Liu)가 셜록의 파트너 ‘왓슨’으로 출연한다. 그렇다, 남성 왓슨이 아니라 여성 왓슨이다. 시즌 초반에는 셜록의 불안정한 상태를 감시 감독하면서 그를 보살피지만, 시즌이 더해갈수록 또 한 명의 특출한 탐정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션 블루>(Mission Blue, 피셔 스티븐스, 로버트 닉슨 감독, 2014)

 

별을 바라봤던 여성들이 있었다면 바다 속을 탐험한 여성도 있다. 1998년 타임지가 꼽은 지구의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한 실비아 얼(Sylvia Earle)은 과학자, 해양 생물학자, 탐험가이자 환경운동가이다.

 

이 다큐는 실비아 얼의 삶과 활동을 집중 조명한다. 실비아 얼은 흔히 말하는 여성치고는 대담하게 탐험에 나섰다. 나아가 탐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바다의 변화를 감지하고서 왜 이렇게 되었으며, 이것이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했다. 소극적이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여성답지 않게’ 바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매우 적극적으로 말해왔다.

 

바다 보호에 대해 급진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실비아 얼은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걸 전 보기 때문일 거예요. 평생 다이빙하면서 보아온 것들과 몇 천 시간 수중에서 지내면서 얻게 된 시각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다면 제가 급진주의로 보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는 정말 여성치고는 대담한 것이었을까? 그런 유별남 덕분에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걸 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으며 그와 동시에 어떤 것에 대해 깊은 애정과 열정을 가졌던 것이다.

 

바다 속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안에서 날아다니듯이 헤엄을 치는 실비아 얼의 모습을 보면 압도된다. 그리고 설득력 있는 그의 야이기를 듣다 보면, 자연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존재로서 나의 보호 임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다큐멘터리 <미션 블루> 무비 트레일러 중에서 바다 속 실비아 얼의 모습

 

TV 시리즈, SF 드라마 <오펀 블랙>(Orphan Black)

 

<오펀 블랙>은 인간이 복제된다면 여성에게 주어진 출산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그래도 여전히 배 속에서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필요할까? 그렇다면 그 대리모는 엄마일 수 있는가?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기는 인간 복제를 주제로 한 SF 드라마다.

 

어떤 사고로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 사라가 자신의 복제인간 자매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그들을 만들어 낸 거대한 조직, 네오루션(Neolution)에 맞서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배우 타티아나 매슬래니(Tatiana Maslany)가 1인 다역을 하며(시즌 동안 총 14명을 연기한다)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그들이 어떻게 연대하며 적에 맞서는지 보여준다.

 

특별한 직업도, 무엇도 없이 방황하면서 살던 사라. 치마 바람을 일으키는 극성스런 엄마인 앨리슨. 당당한 레즈비언이며 과학자인 코지마. 종교단체에 이용당해 살인병기로 만들어진 헬레나. 네오루션의 일원인 레이첼 등. 삶과 성격이 모두 다른 여성들이 때로는 적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서로를 만나 변화한다. 그러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흥미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제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지겨운 프레임, 그 놈의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에서 벗어나자.

 

TV 시리즈, 드라마 <더 포스터즈>(The Fosters)

 

▶ TV 시리즈 <더 포스터즈> 포스터 


또 하나의 ‘문제적’ 질문을 던져보자. 레즈비언 커플은 부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그게 궁금하다면 <더 포스터즈>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교감 선생님과 경찰인 레즈비언 커플이 청소년인 다섯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2013년 첫 방영 이후 현재까지 방영되면서 가족과 성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10대의 성장과 사랑 그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이 주 스토리이지만 특히 비혼모, 낙태, 약물 중독, 입양가정 등 어떤 이들은 ‘사회 통념상’ 논란이 많다고 이야기할 부분에 대해 과감하게 다룬다. 총괄 제작자 중 한 명이며 유명 배우이자 가수인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이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평생 사회 편견에 맞서서 살아야 했던 자신의 이모에게 받은 영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드라마는 1인 가족 및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 사회의 진짜 모습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다큐멘터리 영화 <코이 이야기>(Growing up Coy, 에릭 주홀라 감독, 2016)

 

코이는 남자 아이로 태어났다. 하지만 코이는 18~19개월부터 자신이 여자 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조차 민감하게 반응했다. 엄마에게 자신의 성기(페니스, Penis)를 언제 잘라가냐고 묻기 시작했을 때 코이의 부모는 코이가 정말 자신을 여자 아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코이는 신체적 남자 아이로 태어났지만 남자 아이가 아니다. 이 다큐는 코이가 학교에서 ‘여자화장실’을 쓰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고 그 차별에 맞서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코이의 부모는 학교를 상대로 고소를 하고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큰 논쟁을 불러왔다.

 

아직 어린 코이에게 자신의 젠더를 선택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라는 주장부터, 여자 아이인 코이가 여자화장실을 쓰는데 문제가 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주장까지.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 관련 이슈는 트랜스젠더의 전반적인 삶에 관련된 논의까지 커져나갔다.

 

▶ 다큐멘터리 영화 <코이 이야기> 포스터


결과적으로 학교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법원은 학교가 코이의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화장실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코이에게 행한 폭력이 있다는 점을 짚어주며 코이의 손을 들어줬다. 이 일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큰 도약으로 기록되었다.(하지만 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랜스젠더의 군복무 금지를 지시하는 등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다시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코이가 어떤 인터뷰를 앞두고 ‘기분이 어떻냐’고 묻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실수로라도 나를 남자 아이(Boy)라고 말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코이에게는 잠시라도 자신이 여자 아이로 보이지 않은 것이 공포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여성으로 보이고 그 역할에 억매여야 한다는 것이 공포이다. 그렇다면 그 여성은 대체 무엇인걸까?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은 여성들은 그냥 태어나는 것만으로는 주어지는 게 없기 때문에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쟁취해서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사회가 ‘여성’을 만들게 내버려 두지 말자. 내가 원하는 여성을 내가 만들 수 있도록 사회에 던져야 할 질문들이 우리에게는 아직 많다. 지금까지 소개한 콘텐츠들이 그런 질문들을 떠올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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