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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성소수자 합창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아는 언니들’

<핸드인핸드 서울 2017> 열린다



아시아 성소수자들의 합창 페스티벌이 서울에서 열린다. 2015년 대만에서 처음 열린데 이어 두 번째로 ‘HAND IN HAND SEOUL 2017’(핸드인핸드 서울 2017)이 개최된다. 국내에서 해외 성소수자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160여명의 해외 성소수자들이 내한한다. 대만의 지메이저(G-Major) 합창단, 홍콩의 하모닉스(Harmonics) 합창단, 중국의 베이징 퀴어 코러스(Beijing Queer Chorus)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 성소수자 합창단의 연합 팀인 프라우드 보이시스(Proud Voices)도 함께 한다.

 

주최국인 한국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 <위켄즈>(이동하 감독, 2016)로 잘 알려져 있는 게이코러스 ‘지보이스’(G-Voice)와 레인보우 페미니스트 비혼여성코러스 ‘아는 언니들’이 참가한다.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아는 언니들’의 막바지 연습 공간을 찾았다.

 

▶ 레인보우 페미니스트 비혼여성코러스 ‘아는 언니들’ 2016년 정기공연 리허설  ⓒ아는 언니들 제공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운동에 노래로 연대한 5년

 

이번 공연에서 ‘아는 언니들’은 벼르고 별러온 레퍼토리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연습실에서 한창 연습 중인 곡은 개사한 ‘최진사댁 셋째 딸’!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멜로디에 이 가사를 붙여 한번 불러 보시라.

 

“건너 마을에 최진사 댁에 딸이 셋 있는데

그 중에서도 셋째따님이 제일 멋있다던데

아따 그 따님 강부치라고 소문이 나서

머리도 아니 길고 치마도 아니 입고 장작 팬다대

아 머리도 아니 길고 치마도 아니 입고 장작 팬다대

 

그렇다면 내가 최진사 만나 뵙고 넙죽 절하고

아랫마을 사는 이난이년이라고 말씀 드리고 나서

염치없지만 셋째 따님을 사랑하오니

따님의 옆지기로 이 몸이 어떠냐고 졸라봐야지

 

다음날 아침 용기를 내어 뛰어갔더니만 

나기란 놈이 눈물 흘리며 엉금엉금 기면서

아침 일찌기 최진사 댁에 문을 두드리니

얘기도 꺼내기 전 비투빈* 안된다고 쫓겨났다네

 

그렇지만 나는 대문을 활짝 열고 뛰어 들어가

요즘 보기 드문 티부** 좋아하노라 말씀 드리고 나서

어으어허 어으어허 어으어허 허야 어 허 야어야

육간대청에 무릎 꿇고서 머리 조아리니

최진사 호탕하게 호호호 웃으시며 좋아하셨네” (이하 생략)

 

*비투비(B to B): 부치와 부치가 커플인 경우를 뜻함. **티부: 티나는 부치

 

이 곡은 “최진사댁 ‘존멋’ 셋째딸과 아랫마을 펨의 고군분투 로맨스를 그린 본격 레즈비언 마당극”이라고 단장 이난씨는 설명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여성퀴어풍물패 ‘바람소리’와 협연으로 선보일 거라는 귀띔과 함께.

 

‘레인보우 페미니스트 비혼여성코러스’를 표방하는 ‘아는 언니들’은 2011년 언니네트워크 후원호프를 앞두고 결성된 ‘묻지마 중창단’에서 탄생했다. 매년 연말 정기공연을 거듭하며 어느덧 올해 5번째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다.

 

단원인 스무 명의 20~30대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성소수자가 많다. 하지만 ‘성소수자’, ‘퀴어’ 합창단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은 이유는 페미니스트라면, 그리고 ‘비혼’을 지향한다면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에 상관없이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 동안 ‘아는 언니들’은 이름에 걸맞게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있는 곳이면 힘닿는 대로 달려가 노래로 연대했다. 2014년 서울시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에서 의결한 인권헌장을 수용하지 않아 성소수자들이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하고 벌인 일명 ‘무지개 농성’ 때 여러 차례 노래했다. 올해엔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3월 4일 청계광장에 열린 문화제 ‘페미답게 쭉쭉간다’(범페미네트워크 주최)에서 노래했다.

 

뿐만 아니다. 2015년 2월에는 팽목항에 가서 ‘지보이스’와 함께 ‘세월호 인양 촉구 범국민대회’ 무대에 섰다. 상경한 밀양 할매들의 집회에 달려가 노래로 흥을 돋우기도 했다.

 

▶ 3월 4일 청계광장, 문화제 <페미답게 쭉쭉간다>(범페미네트워크 주최)에서 노래하는 ‘아는 언니들’ ⓒ아는 언니들

 

온전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노래!

 

스무 명이 각자의 소리를 충실하게 내고 그것을 조화롭게 화음으로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다. 매주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여야 하고 공연을 앞두고는 더 자주 모여야 하니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소화하기 쉬운 스케줄은 아니다. 알토 파트 몬씨는 “생업보다 ‘아는 언니들’을 더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는 언니들’에 와서 저의 정체성을 찾게 됐어요. 26년간 남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온 것 같아요. 원치 않는 옷을 입었고 목소리도 꾸며냈고 여대생 역할에 맞춰서 자랑스러운 딸로, 훌륭한 학생으로. 그런데 여기 와서 ‘부치’라는 정체성을 접하게 됐고 ‘아, 내가 부치구나’ 하고 확 와 닿았죠.”

 

“처음에 ‘아는 언니들’에 올 때는 머리가 긴 상태였다”고 말하는 몬씨는 작년 연말 정기공연에서 ‘키 작은 부치 이야기’라는 곡을 불렀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정준하가 부른 ‘키 큰 노총각 이야기’를 개사해서 다른 ‘부치’들과 같이 부른 것. 가사는 이렇다.

 

“키도 작고 부피는 넉넉

가진 것도 별로 없지만

부치로 사는 내가 참 좋아

조금 다르지만 몇 배 더 

행복할테니까 매일 설레요 (중략)

 

너 앞에서 나는 짐꾼부치

널 위해서 난 살림부치

24시간 매너 장착

사랑 앞에서 난 바보부치

 

성별 대체 무엇이냐고

부치라면 당연하다고 

이런 말 자꾸 들리죠

 

너가 알 바 없는데

당연한 건 없는데

그러니 그만들 해요

 

인생이란 정글이라고

평범한 게 제일이라고

제발 오지랖 부리지마요

내인생 까리하게 살고 싶으니까

상관 말아요” (이하 생략)

 

몬씨는 “요즘도 가끔 힘들면 그 노래를 흥얼거린다”고 말하면서 이 노래의 의미를 설명했다.

 

“26년 만에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는데, 그 기쁨과는 별개로 사실 살아가는 매 순간은 힘들어요. 외모가 튀니까 거기서 오는 불편한 시선들 감내해야 되고 내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읽혀지기도 하고요. 저 같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서 개사해서 불렀죠.”

 

작년에 입단한 메조 파트 호수씨는 학교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이성애자로 살아가고 있다. 호수씨는 “작년 정기공연 때 엄청 떨면서 무대에 섰다.” 불이 켜졌을 때 쿵쾅거리는 심장을 안정시켜 준 건 맨 앞자리에서 환호하고 박수쳐 준 ‘지보이스’ 단원들이었다. 호수씨는 “‘아는 언니들’ 활동을 하면서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퀴어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 2016년 12월 ‘아는 언니들’ 네 번째 정기공연 <언니들의 방> ⓒ아는 언니들 제공

 

‘아는 언니들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할 때

 

단장 이난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가결한 날,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한 공연을 꼽았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나중에’ 발언에 성소수자들은 분노했고, 문화제는 차기 대선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2월 16일 싱크탱크 국민성장 주최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고 항의했다. 당시 문 전 대표는 ‘나중에’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고, 포럼 참석자 상당수가 ‘나중에!’를 거듭 외치며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의 항의 소리를 막았다. 관련기사 : 나중에? 지금 아니면 언제?)

 

“저 개인적으로는 그날 행사에서 노래 부르는 게 큰 결심이었어요. 물론 성소수자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광화문은 제가 다니는 회사 근처고 우리 회사 사람들 중에서도 몇 명은 촛불집회에 참가하러 나왔을 텐데 내 얼굴을 보지 않을까 긴장했죠. 또 (성소수자들이 문재인 전 대표에게 항의한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일 수 있잖아요.”

 

이날 성소수자 촛불문화제에서 ‘아는 언니들’이 ‘지보이스’와 함께 부른 노래는 ‘나중에 타령’이라는 노래였다. 함께 촛불을 들었지만, 촛불이 가져온 세상에 성소수자의 자리는 없다는 분노와 씁쓸함, 믿을 건 우리 자신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노래는 매번 존재를 삭제당하는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였다.

 

“노래하는 저도 해방감을 느끼고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그 해방감을 전달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아는 언니들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죠.”

 

이난씨는 “노래에는 단순한 구호 이상의 힘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불러본 페미니스트라면, 퀴어퍼레이드에서 ‘Born this way’(본디스웨이)를 떼창해 본 성소수자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우리를 휘감는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핸드인핸드’에서 재밌고 아름다운 무대 만들 것

 

‘아는 언니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페미니즘을 지향하지만 각자의 페미니즘도 조금씩 다르다. 페미니즘 활동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퀴어 커뮤니티에만 속해 있던 사람, 활동이라는 걸 처음 해 보는 사람 등 경험은 균일하지 않다. 누군가는 음악적인 욕심을 더 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활동에 중점을 두다보니 때로는 투닥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함께 입을 맞춰 노래할 수 있는 건 “노래로 합을 맞추는 만큼 서로의 관계가 숙성되어 가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몬)일 테다. 반주자 뽑씨는 창작의 즐거움도 빼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얘기를 우리가 직접 쓰는 창작의 기쁨이 있어요. 우리 노래는 기존에 다른 사람들의 입으로 잘 말해지지 않던 것들이잖아요? 내 얘기를 내 입으로 노래하는 쾌감이 있는 거죠.”

 

‘아는 언니들’은 이번 ‘핸드인핸드 서울 2017’ 공연에서 ‘최진사댁 셋째 딸’ 말고도 다양한 곡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참가팀 중 유일한 여성 합창단으로서의 하모니를 뽐낼 여성 3부 합창곡 ‘Dona Novis Pacem’, 이제는 페미니스트들의 명실상부한 투쟁가가 된 ‘다시 만난 세계’ 등.

 

페미니스트로 퀴어로 살아가면서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당신! 6월 4일 아시아 성소수자들의 아름다운 공연을 놓치지 말자.  (나랑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핸드인핸드 서울 2017 공연>

장소: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일시: 2017년 6월 4일(일) 17시

티켓: 전석 1만원 (예매처: 인터파크 https://goo.gl/7sCZPd)

‘HAND IN HAND SEOUL 2017’ 관련 소식 및 정보를 볼 수 있는 곳: hihseo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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