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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가져온 민주주의 세상에, 성소수자의 자리는?>


 

어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13명이 국회에서 경찰에 의해 불법 연행됐다가 풀려났다.

 

4월 25일 생방송된 <JTBC 대선주자 초청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홍준표 후보가 “동성애가 군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홍준표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하는 것이냐”고 묻자 “반대한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문 후보는 “(동성혼) 합법화할 생각 없다.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발언도 했다.

 

대통령 유력 후보가 전 국민이 보는 TV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참담함과 분노에 잠을 못 이뤘다. 마침 이 날은 청소년 동성애자 故육우당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4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 4월 26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무지개 깃발을 들고 다가가 항의 의사를 표하는 모습.  ⓒ사진 제공: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박장군 운영위원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TV 토론회 다음날인 어제 오전, 국회 본관 앞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 행사에서 발언을 마친 문재인 후보에게 무지개 깃발을 펼치며 다가갔다. “나는 동성애자입니다! 나를 반대하십니까? 혐오 발언 사과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들은 경호원과 경찰들에 의해 곧바로 제지당했다.

 

문재인 후보가 떠나고 상황이 종료된 후, 경찰이 집에 가려고 가방을 찾으러 가는 성소수자들에게 다가오더니 사지를 들어 불법적으로 연행했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으며, 여경을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일부 성소수자들을 ‘이불로 둘둘 말아서 집어던지듯이’ 연행했다고, 연행됐던 이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어제 저녁, 경찰은 이들을 석방했다.

 

유력 대통령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 혐오 확산될 것

 

어제 오후 3시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총 27개 단체) 주최로 <동성애 반대 발언 문재인 후보 규탄! 연행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즉각 석방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저녁 7시에는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에서는 수백 명의 성소수자들이 모여 “존재가 모욕당했다”는 분노와 슬픔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했다. 연행됐던 인권활동가들이 석방되어 문화제에 합류할 때는 뜨거운 환호와 포옹으로 이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문재인 후보의 발언이 ‘명백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었다고 비판했다. 성소수자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동성애가 찬성-반대의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함으로써 ‘혐오’를 조장했다는 것.

 

▶ 어제 오후 3시 영등포경찰서 앞.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주최 <동성애 반대 발언 문재인 후보 규탄! 연행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즉각 석방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  ⓒ일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웅 공동운영위원장은 “문재인 후보는 어떻게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에 가담할 수 있습니까? 성소수자의 존재가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이 보인 입장은 분명한 혐오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단호함에 질렸습니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당신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당신에게 던지는 성소수자의 표가 사표(死票)가 될 거라는 것을,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판섹슈얼’(사람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 구분하지 않고 정체성 또한 신경 쓰지 않으며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 ‘시스젠더’(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성소수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동성애를 개인적으로 싫어할 수 있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 유력 후보가 사회적 약자들을 두고 ‘저는 약자가 싫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단순한 무례가 아니다. 권력을 통해서 약자를 짓밟는 폭력이고 차별이다. 그런 당신이 어떻게 ‘나는 차별에 반대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대통령 유력 후보의 발언인 만큼 그 파장이 커서, 누구든지 대놓고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해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진단도 나왔다. ‘서울여자대학교 성소수자인권모임 SwuQ(슉)’의 철수 씨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너무나 짧고 빨랐고, 일부에게는 사소하게 보일 수 있었겠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유력한 대선후보가 하는 말은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큽니다. 문재인 후보의 발언 이후, SNS에 수많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올라왔습니다. 우리 학교 게시판에도 ‘동성애 하면 감옥 보내는 나라도 있는데 (한국 동성애자들은) 동성혼 합법화 안 해준다고 난리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  어제 저녁 7시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항의가 이어졌다.  ⓒ일다

 

촛불 대선에 “성소수자 무시하는 대통령 필요 없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으나, 촛불 대선 국면에서 자신들이 무시당하고 삭제당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성소수자가 그렇게 만만한가. 소수자라고, 표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울분을 토했다.

 

연행되었다가 석방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활동가는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고 혐오하고 혐오하도록 선동하는 세력이 박근혜 정권을 만들어왔고, 자신들의 권력과 이득만을 챙기는 정치를 해왔다. 우리는 그 적폐를 청산하자고 촛불집회를 했다. 그런데 그 적폐 청산의 결과가 겨우 이것인가?” 물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백미순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촛불시민의 힘으로 만든 대선에 ‘동성애 반대한다’는 언사가 가당키나 한가”라며 문재인 후보를 규탄했다.

 

“대통령 후보로서 동성애자를 반대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 것은 향후 갖가지 이유로 우리 사회를 차별과 혐오, 배제로 분열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대선 후보는 성평등 운운할 자격이 없다. 문재인 후보는 소수자 혐오 세력에 기대어 성소수자들의 치열한 인정투쟁의 역사를 모욕하고 인권 수준을 퇴행시키는 저열한 선거 전략을 당장 멈춰야 한다.”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다른 세상,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좌절감만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 당신들이 촛불 광장의 과업을 완수하는 후보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라고 비판하면서, “성소수자가 적폐입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당신들이 적폐”라고 꼬집었다.

 

▶ 연행되었던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석방된 후, 촛불문화제 참가자들 앞에서 발언하는 모습.  ⓒ일다

 

“차기 대통령은 성소수자 평등권 과제 반드시 실현해야”

 

이날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차별에) 함께 싸우자”고 함께 다짐했다. 현재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문재인 후보가 보여준 행보가 성소수자 인권 탄압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2월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성향의 기독교 단체들을 만난 자리에서 “다른 성적지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돼서는 안 되도록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돼 있으므로, (차별금지법 등) 추가 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된다는 것이 입장”이라고 말했다. 즉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

 

또한 지난 3월 23일 새롭게 출범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대선후보들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공개 질의했을 때, 문 후보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설득과 협의를 통해 추진하겠다”고 답변하면서 유보 입장을 밝혔다. 2012년 대선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한 것에 비해서도 후퇴한 입장이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애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한 군형법 92조의6 폐지, 동성결혼의 법제화, 혐오폭력 및 증오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 등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성소수자 평등권 실현을 위한 10대 정책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성소수자 평등권 실현을 위한 10대 과제는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한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들이고, 숨 막히는 현실을 바꾸고 인권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최소의 제안들이다. ‘사회적 합의’ 뒤에 숨어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과 용기 속에서 결정해야 하는 책임이 정치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길 바란다.” (2017년 3월 28일 <우리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선 후보들은 응답하십시오!> 기자회견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오는 토요일에는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의 사전 집회로, 성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린다. 또한 매주 금요일 보신각 앞에서 군대 내 성소수자 색출을 규탄하고 군형법 92조의6 폐지를 요구하는 성소수자 촛불 문화제를 이어갈 예정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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