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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588, 그 많던 여성들은 어디로 갔나
[르포] 재개발 착공 앞둔 청량리 4구역 일대를 가다
일명 청량리 588. 한국 성매매 집결지역의 상징인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일대에 ‘청량리 4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이 시작됐다. 이 자리에는 65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 4동과 42층 랜드마크 타워 1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십수 년 간 말만 무성했던 재개발이 작년 7월부터 급속도로 진행됐다. 성매매 업소들이 폐쇄되고 종사자들의 이주가 이어졌고 일부 지역은 철거가 시작됐다.
▶ 한국 성매매 집결지 상징이었던 ‘청량리 588’ 일대에 재개발이 시작됐다. ⓒ일다
3월말에 찾은 청량리 588은 어수선하고 황량했다. 유리방의 유리가 곳곳에 깨져있고 벽에는 빨간색 스프레이로 X자가 가득 그려져 있다. 여기저기 “성매매는 불법입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커다랗게 써져있다. 불이 켜져 있는 일부 업소에도 주인 없는 의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집결지 내부에서 속칭 ‘깔래길’, ‘중앙통’, ‘시장통’이라 불리며 밤에도 환했던 골목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에는 아직 남아있는 여성들이 있다.
39세 수정씨, “가게가 빠질 때까지 일하게 해달라”
밤 10시쯤, 아웃리치(거리상담)에 나선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활동가들과 동행했다. 이룸은 2004년부터 청량리 아웃리치를 하며 성매매 여성들과 만나왔다. 최근에는 ‘청량리 재개발 대응팀’을 꾸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와 여성인권센터 ‘보다’, 다시함께상담센터와 함께 청량리 집결지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2013년 ‘이룸’에서 실태조사를 했을 때만 해도 유리방, 쪽방, 여인숙, 찻집 등 4백 여명의 여성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금은 불을 켜 놓고 있는 가게가 극소수다.
20대로 추정되는 일본인 남성 4명이 유리방 앞에서 한참을 기웃댄다. 몇 년 전부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에 오는 성구매자 중에는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과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이룸 활동가들이 귀띔해 준다.
활동가들이 종합비타민 통을 들고 “언니, 계세요?” 문을 두드리자 불 꺼진 유리방에서 홀복을 입은 여성들이 나왔다.
“이 앞에 남자들이 지키고 서 있어서 불 꺼놓고 있는 거야. 어제도 공쳤어.”
▶ 황량하고 어수선한 청량리 집결지에 아직 남아있는 여성들이 있다. ⓒ일다
며칠 후, 낮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유리방에서 먹고 자며 일도 하는 수정(가명. 39세)씨를 만났다. 수정씨는 “가게가 빠질 때까지는 이곳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정씨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의 업주는 아직 재개발을 추진하는 측과 보상에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가게를 빼지 않은 상태다.
수정씨가 일하는 가게 바로 근처에서 포크레인으로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숨 쉬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매캐했다. 수정씨는 공사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낮에 잠도 제대로 자기 힘들다면서 “요즘 죽지 못해 산다”고 말했다.
22살에 성판매 일을 시작한 수정씨는 다른 집결지와 다방, 신림동 ‘여관발이’(성구매자가 여관에 오면 여관에서 여성을 부르는 방식의 성매매) 등을 거쳐 2008년부터 청량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수정씨는 10년을 머문 이곳 청량리가 다른 집결지보다 조건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남아있는 아가씨들은 여기에 최소 5년, 저처럼 10년씩 있던 사람들이고 이미 여기 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당장 다른 데 가면 튕겨져 나올 수밖에 없어요. 청량리는 다른 곳에 비해 룰이 좀 프리한 편이에요. 어차피 없어질 거라고 해서 그런지 (여성들을) 많이 풀어놔 줬는데 다른 집결지는 더 타이트해요. 한 달에 며칠만 쉴 수 있고 지각하면 벌금도 내야하고, 그런 게 딱 정해져 있죠. 돈 분배도 다른 곳은 5대 5 정도라면 여기는 6대 4에요. 또 이런 ‘나눠먹기’가 아닌 월 ‘깔세’라는 게 있어요.”
‘깔세’란 업주와 여성이 성구매자로부터 받는 돈을 분배하는 방식이 아니라, 월세 명목으로 다달이 4백~5백만 원의 돈을 일괄 납부하는 방식이다. 업주 입장에서는 자신과 관련 없는, 마치 독립적인 장사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깔세를 내기 위해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말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수정씨는 ‘깔세’를 내는 방식이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여기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일을 하다 가겠다는 거죠.”
▶ 수정씨는 갈 곳이 없다며,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다고 말한다. ⓒ일다
‘재개발 삼촌’이 된 업주들…“성매매는 불법이야”
그러나 수정씨는 이미 3주 넘게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청량리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추진위원회(이하 ‘재개발 추진위’) 측의 방해 때문이다. 재개발 추진위원회에는 한때 이곳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했던 업주들도 속해 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성매매업소 업주들은 재개발 추진위원회와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4구역 비상대책위(이하 ‘비상대책위’)로 갈렸다. 자신이 건물주이거나 세입자인 경우는 다수가 전자 편에, 보상금을 적게 받았거나 전전세로 장사를 하던 업주들은 후자 편에 섰다.
일부 업주들은 재개발 추진위 편에 서서 보상금 관련 분쟁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일명 ‘재개발 삼촌’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성판매 여성들에게 “너희들은 불법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상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업소 앞에 치안유지 명목으로 CCTV를 달아놓고 “가게를 그만두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여성들은 자신들로 인해 밥 벌어먹던 업주들이 결국 돈 앞에서 자신들을 이용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여성들을 팔아 불법 성매매 영업을 하던 업주들이 이제는 “성매매가 불법”이라면서 경찰에 신고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 것.
“재개발 추진위 쪽에서 저희가 손님(구매자)을 받으면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어쩔 때는 손님이 아닌 다른 관계자 남자가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남자가 들어오기만 하면 다 신고를 하더라고요. 신고할 때마다 경찰이 출동했는데, 손님이 아니면 경찰도 짜증나잖아요. 경찰이 자꾸 ‘오인신고’하지 말라고 한 거죠. 그 후로는 신고를 안 하는 대신 아예 영업을 못 하게 저희 가게 바로 앞이나 옆에 앉아서 쳐다보고 있어요. 손님이 와서 말 걸려고 하면 ‘성매매로 신고할 겁니다’ 이래요. 아예 대화 자체를 막아버려요.”
‘이룸’ 활동가들은 최근 며칠 사이에도 재개발 추진위 측의 신고로, 성매매 여성 두 명이 경찰 조사를 받았고 그 중 한 명은 입건되어 검찰 조사 단계까지 갔다고 전했다. 구매 남성은 중국, 대만 관광객이어서 다음날 출국해버렸다. 결국 여성만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 한때 성매매 업주였던 이들이 ‘재개발 삼촌’이 되어 여성들에게 나가라고 위협한다. ⓒ일다
재개발 분쟁에 동원되고 이용당한 여성들
재개발 추진위 편에 선 업주와 ‘삼촌’의 이 같은 행태에 여성들이 반발하면서, 비상대책위 측인 일부 업주들과 여성들의 이해관계는 때로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개발 추진위와 비상대책위의 알력 다툼에 여성들이 이용당하는 측면이 있다. 비상대책위에 속한 업주들 역시 여성들 편은 아니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업소 수는 줄고 일하려는 여성들은 많으니까 경쟁이 붙었어요. 그러니까 남아있는 업주들이 ‘깔세’를 올린 거예요. ‘깔세 더 많이 낼 거 아니면 나가라’는 식으로요. 업주들이 여성들을 상대로 담합을 했고, 그 와중에 자기들 투쟁에도 동원을 했어요. ‘강제 집행(철거) 들어오면 너희들이 몸으로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남아있는 업주들은 자신들이 가게 문 열어놓고 있는 것도 ‘다 아가씨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 업주들 입장에서는 ‘내가 못 나간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 여성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유리하거든요.” (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수정씨도 처음엔 업주를 따라 집회에 나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비상대책위에서는 하는 집회에 열심히 나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것도 없고, 오히려 집회를 하고 오면 재개발 추진위 쪽에서 탄압하고 신고하는 수위가 더 높아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4백 명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여성가족부는 2015년 ‘성매매집결지 폐쇄 추진 방안(로드맵)’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시달하여, 지자체가 실정에 맞게 집결지 폐쇄를 추진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지자체별로 성매매집결지 폐쇄 TF팀을 구성하고, 집결지 내 업소에 대한 합동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탈성매매 여성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번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의 경우, 동대문구 내 TF(태스크포스)도 꾸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나 동대문구 차원에서 여성들의 생계 지원 방안이 제시된 바 없다.
급작스레 쫓겨난 청량리 여성들이 성매매에서 벗어난 경우는 드물다. 수정씨는 “내가 알고 지냈던 유리방 성판매 여성들은 대부분 영등포나 천호동의 집결지 유리방으로 옮겨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쪽방 여성들 많은 수가 업주를 따라 동두천으로 함께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쪽방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게 ‘이룸’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여성들은 다른 성매매 집결지로 이주하거나, 다른 방식의 성매매를 하고 있다. 빚이 없거나 주거지가 있는 여성들은 집결지 생활을 벗어나 오피스텔 성매매나 노래방 도우미 등 성매매 ‘알바’를 해 돈을 벌고, 빚이 있는 여성들은 계속 집결지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 성매매 여성에 대한 지원 없이 집결지를 폐쇄하면, 성매매가 근절되는 게 아니라 빈곤이 확산될 뿐이다. ⓒ일다
재개발 과정에서 백만 원 안팎의 이주비를 받은 여성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있다. 쪽방에서 오래 일한 여성들 중 쪽방으로 주소지가 되어 있는 여성들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행운을 잡았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일 뿐이다. 청량리 4구역 일대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1996년 이전부터 거주하던 입주민만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이혼을 안 해줘서, 다른 사정이 있어서, 이곳에 살면서도 주소지가 다른 곳으로 되어 있는 여성들은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이룸’ 활동가들은 특히 60대 이상이 대부분인 쪽방 성판매 여성들의 생계와 건강을 가장 많이 우려하고 있다. 당장 일을 중단하면 나이와 건강 문제로 다른 벌이를 구할 수 없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청량리에서 나가면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더 열악한 형태의 성매매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저희한테 제일 많이 물어보시는 게 ‘기초생활수급자 되는 방법이 뭐냐’에요. 굉장히 취약한데, 자식이 있거나 보험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안 되는 거죠. 사회복지 제도로만 봤을 때는 이 분들은 사회복지의 도움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거잖아요. 성매매라는 배경을 깔고 이해해야만 이 분들의 취약한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별 활동가)
수정씨 얘기로는 유리방만 따지면 대략 15명의 여성들이 현재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이룸 활동가들은 쪽방 쪽에 5명의 여성들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약 스무 명의 여성들이 이미 철거 작업이 시작된 청량리에 아직 남아있는 셈이다.
이제 몇 달 뒷면 ‘청량리 588’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청량리와 같은 방식으로 집결지를 폐쇄한들, 과연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을까? 청량리 588 재개발은, 성판매 여성에 대한 뚜렷한 지원책 없이 진행된 집결지 폐쇄가 성산업 가장 말단에 있는 여성들의 빈곤과 차별을 극대할 뿐이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랑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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