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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울 수 없는 어른들의 기대>
 
며칠 전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말했다.
 
“나는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반에서 5등을 했어. 정말 잘했다고 흡족해서 성적표를 들고 집에 갔는데, 그걸 보고 부모님은 뭐라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찌나 실망하시던지! 난 이건 잘 본 성적이 아니구나 했지.”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준영이 생각이 났다. 준영이는 학원이나 그룹과외에는 적응을 못했다. 실력이 오르기는커녕 도움도 되지 않아, 모두 개인교습으로 공부하는 학생이다. 현재 4학년인 그가 이렇게 개인교습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건 2학년 중반부터였고, 그때 만난 선생님과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운 좋게도 준영이의 과외선생님은 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은 물론, 인내심 많고 다정하기까지 해, 준영이는 그 선생님을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얼마나 좋으면 자기 부모님께 ‘과외선생님 집으로 입양을 갔으면 좋겠다’고까지 했을까.
 
그 선생님과 공부를 시작할 당시, 평균 50~60점이었던 성적은 몇 달 안 되어 70점대로, 또 그 다음해는 80점대로 오르다, 급기야 4학년이 끝나가는 지난겨울 기말고사에서는 평균 90점이 넘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준영이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먼저 내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왔다. 나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함께 흥분을 나누던 중, 그녀는 웃으며 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준영이가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발표되자마자, 그 기쁜 소식을 최초로 알린 사람은 과외선생님이었단다. 기쁨을 누르지 못하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전화해서는 사회 100점, 과학 95점, 수학 85점, 국어 85점을 받아 평균 91점을 맞았다고 말했는데, 그 얘길 듣자 마자 선생님의 첫 반응은 “수학이랑 국어성적이 그게 뭐냐?”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준영이 어머니도, 나도, 정말 대단한 선생님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뭐 그리 크게 생각지는 않았다. 바로 이어 준영이가 우리 집에 공부하러 오면서는 성적이 적혀 있는 작은 띠지를 가져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과목별로 성적이 적혀있는 손가락만한 띠지를 내 앞에 내놓으며,
“선생님이 믿지 않으실까 봐, 이걸 가지고 왔어요.” 한다.
“정말 대단한데! 우~와, 대단해! 선생님은 준영이가 너무 자랑스럽다.”
라고 말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준영이도 그날은 정말 으쓱해 했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나 다시 공부하러 와서 준영이가 말한다.
“선생님, 제가 이번 시험을 너무 못 본 것 같아요.”
나는 그때는 좀 안타까웠다.
“준영아, 그렇게 생각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도 들지 않고 “네”하고 대답하는 준영이를 불러 세웠다.
 
“준영아, 선생님 좀 봐! 준영이가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한번도 평균 90점 넘은 적 없었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준영이의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
“네.” 준영이도 내 눈에 시선을 맞추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주위에서 1학년, 2학년, 뭐 3학년 때도 계속해서 평균 90점 이상 받는 사람들은 많이 봐왔어. 그런데 1, 2, 3학년 때도 90점을 받지 못한 사람이 4학년이 되어서 90점 넘은 건 준영이가 처음이야! 그게 얼마나 힘든 건데! 선생님은 그래서 준영이가 정말 잘했다는 거야.”
내 말에 격려를 받은 준영이는 시무룩함은 조금 가셨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싹 좋아져서 돌아가지는 않았다.
 
물론, 그 선생님은 준영이가 기쁨에 들뜬 나머지 자신감만 높아져 공부는 하지 않게 될까 봐 염려하여 칭찬을 아끼셨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몇 년째 준영이를 봐 와, 나도 준영이의 성격을 잘 아는 터라 그 선생님의 태도가 납득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어쩜 선생님의 그런 태도가 준영이에게 더 잘 먹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감에만 들떠 공부를 하지 않아서 다음에는 성적이 그만큼 못 나온다 하더라도, ‘아! 이렇게 자만해서는 안 되는구나!’ 바로 생각하게 될 텐데 뭐가 문제일까? 도리어 이런 경험을 통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구나!’ 깨닫고 스스로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선생님의 의도대로 준영이는 다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공부하는 어린이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한참 들어도 그때 그 선생님의 시큰둥한 반응과 그때의 실망감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이런 부정적 에너지가 사람을 진정으로 성장시키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자긍심을 꺾어놓는 이런 에너지는 얼마간 힘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인생을 관통해 의미 있게 작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내딛게 하는 긍정적 에너지는 아낌없는 칭찬과 진지한 격려와 믿음에 찬 시선이라고 중얼거려본다.
 일다▣ 정인진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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