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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존재의 생존법

글그림책 <코끼리 가면>이 아름다운 이유  (술술씨)  Feminist Journal ILDA


나는 한 뭉치의 약값 영수증을 놈의 얼굴에 들이밀다 공중에 뿌렸다. “내가 왜 상담 받아야 되는데? 동생한테 좆이나 빨게 하는 너는 왜 멀쩡하게 세상 잘 사는데? 엄마 아빠는 왜 너만 감싸는데?” (후략) 


“착각하나 본데, 니가 병원에 간 건 약해서야.” “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억울하면 강해지라고. 엄마가 그랬어. 우리 가족 다 멀쩡한데 니 정신이 약해서 병원에 간 거라고.” 놈이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맥이 탁 풀렸다. 

-<코끼리 가면> 노유다 글그림책 중에서


▶ 노유다 글그림책 <코끼리 가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단어는 ‘약함’이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약함이 있다. 표준대국어사전의 도움을 받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약함을 분류하자면 이러하다. 어린 시절, 친오빠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혜경은 ‘연약’하다. 오빠들의 강압적인 폭력을 뿌리칠 수 없는 ‘무르고 약한’ 존재다. 반면 호기심과 욕망을 이기지 못해 친동생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오빠라는 족속들은 ‘유약’하다. 그건 나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할 정도로 ‘의지가 굳세지 못하다’는 뜻이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유독 가해자의 ‘유약’함에는 관대하면서 피해자의 ‘연약’함에는 가혹하다. 폭력의 기억 때문에 흔들리며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혜경에게 “니가 약해서야”라고 소리칠 수 있는 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연한 존재, 약한 존재에게 심각한 폭력을 저질러놓고 ‘크면서 누구나 한번쯤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정도로 덮어버린다고 해서, 그 존재가 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자기 잘못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비겁한 겁쟁이고, 영원히 약하고 악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반면 혜경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함으로써 강함으로 나아가는 토대를 가진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스스로가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찜질방에서 자는데 옆자리 남자가 내 바지에 손을 넣고 성기를 만졌을 때, 한여름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내 알몸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십대였다. 이미 다 컸고, 또래에 비해 꽤 똑똑하고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폭력에 노출된 순간 나는 무력했다. 하지만 그 무력함은 어린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는 순간

 

<코끼리 가면>을 읽고, 나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열한 살 혹은 열두 살 즈음이었나. 한창 홍콩 느와르가 유행하던 시절, 명절 때면 사촌들이 한방에 모여 비디오를 감상했다. 빨간 딱지가 붙은 테이프도 있었지만 그건 사촌오빠들의 몫이었고, 다 같이 보는 비디오는 분명 청색이었다. 그날도 사촌끼리 옹기종기 둘러앉아 비디오를 보고 있었는데, 날이 추워 그랬는지 두꺼운 이불을 나누어 덮고 있었다.(아마도 설날 연휴였겠지.)

 

비디오를 보다 보면 모로 누워서 팔을 괴고 보기도 하고, 베개를 쌓아서 눕기도 하고, 서로 이리저리 뒤엉키기 마련이다. 내 바로 옆에는 나보다 다섯 살인가 많은 사촌오빠가 앉아 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사촌이라고 해도 일 년에 두 번 보는 사이여서 어색했지만 ‘사촌오빠’니까 가만히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내 손을 끌어다 자기 입속에 넣고 빨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나도, 그도 앞을 보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성룡인지 주성치인지가 날아다니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내 엄지를, 그다음엔 검지를, 그다음엔, 그다음엔, 계속 빨아댔다. 그게 명백한 잘못이라는 걸 깨달은 건, 고모가 방문을 열고 “얘들아, 떡볶이 먹어라” 하는 순간, 그가 황급히 이불 속으로 내 손을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순간 직감했다. 아, 이거 더러운 짓이구나.

그다음엔 이런 자괴감이 들었다. 어떻게 내가 이런 짓을 당할 수 있지?

나는 고작해야 열한 살 혹은 열두 살 여자애였는데, 그때도 나는 내가 꽤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더러운 짓’을 당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았고, 언제고 그런 짓을 당할 수 있는 ‘약한 존재’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이 기억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주 깊숙이 넣어두었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그래야 내가 강해진다고 믿었던 것 같다.

 

친족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도 아닌데 <코끼리 가면>이 유폐된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낸 이유는 뭘까. 나는 그 힘을 ‘시간, 아름다움,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찾고 싶다.

 

▶ 글그림책 <코끼리 가면>의 작가 노유다  ⓒ움직씨

 

벼리고 벼린 이야기, 벼르고 벼른 말들

 

<코끼리 가면>은 시간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 이야기 씨앗이 만들어진 이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가는 이 작품을 품어 왔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일 것이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생겨난 그 지점부터 작가의 몸속에는 ‘언젠간 해야지’ 하고 벼르고 벼른 말들이 쌓였을 것이다. 그 말들은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시간을 건너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어떤 날카로운 ‘칼날’이 몸과 마음과 정신을 난도질한 후, 부서진 채로 몸속에 남겨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 부서진 칼날이 몸속을, 마음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계속 생채기를 낸다면? 우리는 “어서 그 칼날을 뱉어!”라고 외칠 것이다. 어떤 칼날들은 그렇게 뱉어진다. 하지만 짐작컨대 작가 노유다는 제 안의 칼날을 ‘그렇게 날 것’으로 뱉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를 헤집어대는 그것을 품고 벼리면서, 그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되기를 인내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곁에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작가 노유다는 작품 초입에서 이 작품을 ‘낮잠에게’ 헌정한다. 둘은 동성 파트너이며, 도서출판 ‘움직씨’를 함께 만들고 함께 <코끼리 가면>을 세상에 내보냈다.)

 

글이 닿지 못하는 곳에 놓인 이미지, 글그림책이라는 장르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그림책은 그림의 비중이 큰 장르이다. 한 사람이 글 그림을 모두 진행하든, 글작가 그림작가가 나누어 작업을 하든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이미지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이 그려진 후, 그림으로 표현된 된 텍스트는 삭제하는 것이 그림책의 제작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 노유다가 ‘글그림책’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작품의 중심이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텍스트가 단독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그림은 ‘삽화’ 수준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 담긴 이미지들은 ‘언어(텍스트)가 가닿지 못하는 곳에 피어난 작가의 내적 이미지’로 읽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을 그림으로 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인데, 이런 방식의 작업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코끼리 가면>의 텍스트가 상당히 이미지적이기 때문이다.

 

▶ 노유다 글그림책 <코끼리 가면> 중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  ⓒ움직씨

 

어느 날 오빠들이 지하실에다 덫을 났어. 검정 비밀 봉투, 철사와 노끈으로 올가미를 만들고 안에 빵 부스러기를 넣어 뒀어. 열린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끈이 나부끼던 게 생각나. 마치 봉투가 목을 매단 것처럼 보였지. 


-<코끼리 가면> 노유다 글그림책 중에서

 

대다수의 책들이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게 구성되며, 판형이나 재질, 제목 글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도록 기획된다. 하지만 상업출판사의 경우, 작가가 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기 어렵다. 아주 오랫동안 벼리고 벼린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에 위해 작가 노유다와 파트너 나낮잠이 선택한 것은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가 아니었을까. 그것의 성패 여부와 별개로, 이 작품이 그 자체로 ‘생존’을 의미하는 것은 이런 주체적인 선택과 맞물린다.

 

언제까지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라는 말을 할 건데?

 

내 손가락을 야하게 빨아대며 (아마도 흥분했을) 그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때 자기 옆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더러운 짓’을 멋대로 해댄 그는, 한 여자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코끼리 가면>을 보고 난 뒤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니 딸도 그런 짓을 당하면서 살길 바래?” 그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무슨 짓?”이라고 되묻는다면 “니가 나한테 한 짓 말이야” 라고 쏘아주는 상상.

 

텔레비전도, 자동차도, 냉장도고, 핸드폰도 숨 가쁘게 업그레이드되는 세상인데, 언제까지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라는 구닥다리 소리를 해댈 셈인지. 예전에도 지금도, 약한 존재에게 가하는 폭력이 제일 나쁜 법이다. 그 나쁜 상황에서도 우리는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연약함이 더는 부끄럽지 않다. 인정했으므로, 나는, 우리는 강해질 수 있다. 유약해빠진 당신들도 진짜 강해지는 날이 감히 오면 좋겠다.   Feminist Journal ILDA

 

※ 필자 ‘술술씨’ 소개: 그림책을 애정하는 어른이. 페이스북 페이지 <날마다 그림책방>을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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