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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 70만원으로 살아가는 스무살의 이야기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① 야간대학생 현진 

 

 

※ 직업이라고 하기엔 불안정하고 열악하며, 아르바이트라고 하기엔 장시간 일하고 급여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른바 ‘생계형 알바’를 하는 10대,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가끔씩 생존신호 같은 문자를 보내오는 그녀들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는 10대, 20대 여성들을 인터뷰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문득 어떤 얼굴들이 떠올랐다. 고 2, 고 3, 그리고 스무 살로 접어들면서 급 얼굴 보기 힘들어진, 아주 가끔 생존신호 같은 문자메시지 “보고 싶어요”, “한번 놀러갈게요”를 보내는 그녀들. 그리고 <십 대 밑바닥 노동>,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같은 책을 함께 읽다가 한 챕터가 끝나면 말없이 긴 숨을 내쉬던, 나를 포함한 우리 동네 ‘청소년 지원’ 실무자들이었다.

 

우리는 서로 만나야 했다. 리더십이나 문화지원 같은 이름을 단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계’라는 주제로, ‘인터뷰’라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세상에 대고 나지막이 말하기’라는 목표를 품고서. 조금은, 아니 큰 도전이었다. 인터뷰이가 되어보고 인터뷰어가 되어보는 새로운 관계 맺기가. ‘생계’에 대해서 추상적이지만 서로에게 ‘알’ 책임과 ‘알릴’ 권리가 시작된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그녀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3년 동안 동네에서 청소년 참여활동과 기획단을 하던 현진(가명)은 스무 살이 되고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다가 2주일 만에 사임했다. 사유는 “알바를 하고 학교에 다녀야 해서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 신나는애프터센터’ 실무자(오매, 윤미희)와 은평 지역에서 일하는 청년활동가(조미리), 이렇게 세 사람이 토요일 오전 어느 카페에서 현진을 만났다. 우리 중 두 사람은 현진이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면서 현진에 대해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알바? 그리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현진은 작년에 대학에 진학했다.  ⓒ촬영: 윤미희 
 

“알바, 몇 개나 했었어요?”

집안이 어려웠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알바를 시작했다는 막연하고 단순한 전제를 깔았던 첫 질문은 곧 쭈그러졌다. 현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3개월간의 알바 한번, 대학생이 되고 나서 현재 두 번째 알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적은 횟수의 경험.

 

그러나 인터뷰를 이어가며 ‘알바는 누구나 어떤 때만 되면 쉽게, 당연하게 시작한다’는 생각이 꽤 많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단 걸 알게 되었다. 현진은 10대에 돈이 매우 필요했지만 한편 필요하지 않았고, 아르바이트가 무척 필요했지만 아르바이트를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덟 살 때 할머니한테 맡겨졌어요. 언니는 열네 살이었어요. 할머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서시장 안 포장마차를 하고 계세요. 술도 팔고, 안주도 팔고, 명절에 전도 팔고요. 수입이 일정한 건 아니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도와주는 정도이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차비는 일주일에 한번 주시고, 밥값은 매일 주시고. 그냥 (제가) 말하기 전에 먼저 주시는데… (친구들이랑 놀 때는?) 그럴 때는 언니에게 말했어요. ‘언니, 나 친구들이랑 놀기로 했는데’ 그러면 언니가 알아서 줬어요. (액수는?) 넉넉히.”

 

현진에게 용돈을 챙겨주곤 했던 언니는 고등학생 때부터 알바를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알바를 쉬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뭐 갖고 싶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갖고 싶은 것도 그닥 없어요. 키워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중학생 때는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생각해보다가 그쳤고, 그 후엔 뭘 갖고 싶다는 생각도 거의 안한 것 같아요. 부러운 게 있다면, 친구들이 엄마 아빠랑 무슨 이야기했다, 그런 거였지 뭘 샀다고 자랑하는 거는 안 부러웠어요. 지금도 알바로 돈을 버는데, 옷 몇 벌이랑 화장품 정도만 사요.”

 

현진은 오랫동안 서서히 돈을 적게 쓰는 방식으로 적응해왔다. 돈이 필요한 순간은 손을 벌리고 입을 열어야 하는 순간이고, 미안함과 고마움, 궁색함이 흐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살아온 걸까. 생계벌이를 하는 가족구성원은 고생하는 고마운 존재지만, 그들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속으로 소리죽여 울거나, 울음마저 참게 되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아픔과 힘듦이 쌓이면, 그것은 가족에게 더 꺼내놓기 어려운 것이 된다.

 

“우울증이요. 중학교 때부터 서서히 시작됐나 봐요. 혼자 참는 성격 때문에 그런 건지…. 고등학교 상담실에서 검사받고 연결해주셔서 상담센터에도 가고, 약도 오래 먹었어요. 언니는 약 먹을 때 보호자 동의 필요하다니까 그때 (내가 아프단 걸) 알게 됐는데, 본인은 웬만한 어려운 건 이겨냈는데 동생이 그러니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했었죠.”

 

고등 1학년, 두근두근 첫 알바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중학교 때부터 제일 친한 친구가 알바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 연락을 해왔다. “자리가 났는데, 같이 할래? 너랑 하고 싶어!” 체력도 안 좋고, 심리적으로도 그닥 에너자이저 스타일이 아닌 현진에게 ‘누가 옆에서 같이 하자고 말한 것’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힘들게 지내느라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알바, 첫 알바는 그렇게 시작됐다.

 

“재밌었어요. 학교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여태까지 안 해봤던 걸 하고. 고등학생 알바들이 많았는데, 피자를 휙휙 만들어내는 게 멋있더라구요. 친한 친구랑 같이 하니까 더 재밌고. 그리고 내가 일해서 돈을 버니까 너무 좋고! 마트 푸드코트 피자 코너는 해야 할 일이 딱딱 정해져 있는 곳이에요. 초벌 설거지해서 설거지 기계에 넣고, 삶아져 있는 스파게티 면에 소스 붓고 치즈 올리는 등 간단한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부르는 일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 스트레스’가 더 폭넓게 다가오기도 했다. 원래 사람을 깊이 믿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람에 치이는 날엔 집에서 길게 쉬어야 하는 성격인데, 그 일터에서는 ‘세상에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었다.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더라구요. 무시하듯이 말하는 사람, 남은 거 포장해 달라고 하면서 쟁반을 던지듯 하는 사람, 엄청 더럽게 쓰레기와 그릇을 섞어 쌓아놓는 사람, 주문받는 사람 괴롭게 너무 까다롭게 말하는 사람, 예의 없게 말하는 사람, 따지는 사람, 자기 멋대로 하려는 사람… 일을 해보니 제가 그런 제멋대로인 사람에게 계속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 받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학교 상담실, 교육복지실에서 지원해준 우울증 치료가 마침 시작되던 때였다. 조금만 쉬려고 했지만, 상태가 악화되어 다시 알바를 할 생각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경험이었던 첫 알바는 3개월 만에 끝이 났다.

 

대학 학생조교, 특권 또는 전담마크 같았던

 

현진은 작년에 대학에 진학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학교사회복지사 쌤을 보고 꿈이 생겼다.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곳 중 사회복지상담과가 있는 학교를 골랐는데, 안양에 있는 3년제 야간반이었다.

 

▶ 밤 10시, 수업 마치고 친구들과 맥주 마실 여유가 있었으면…  ⓒ현진 

 

대학생이 되니 나갈 돈이 점점 많아졌다. 밥 한번을 먹어도 그렇고, 교통비 지출도 크고.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보육교사로 일하는 언니에게 번번이 손을 벌리기도 쉽지 않았다. 이제는 진짜 알바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은 은평에 있고, 학교는 안양에 있고, 수업은 저녁에 시작하고, 끝나고 집에 오면 밤 12시.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몇 시에 어디에서 해야 하는 걸까? 너무 이른 아침이고, 아니면 너무 늦은 밤이고, 매일 반복하기엔 무리한 시간표지만, 무엇보다 그런 스케줄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여름방학에 학생조교 해볼래?” 들어보니 학교에 일자리가 있다는 거다. 알바를 하느라 시내를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다, 또래를 주로 상대한다, 학교 측에서 여러 가지를 일처리 한다, 그야말로 꿀이다. 학생조교는 시험지 유출 우려가 있어서 해당과에 다니는 학생은 뽑지 않고, 일반 알바 자리처럼 공고하고 신청자가 면접을 봐서 바로 결정되며, 하다가 그만두고 옮기기도 하는 방식이었다. 학교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과 여름방학 학생조교 자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알바, 복도 게시판이나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도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정보였던 걸까? 그렇게 꿀이면 이미 누군가 일하고 있거나 경쟁률도 높지 않을까? 실상은 평일 낮 시간에 주 5일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주간에 수업이 있는 학생은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야간반이 있는 몇몇 과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낮 일’이었던 것. 그래서 이 학교의 학생조교는 대부분 야간과 학생들이 하고 있다.

 

▶ 학생조교로 야간학생을 구하는 어느 과 구인광고.  ⓒ현진 
  

일 많고 바쁜 것보다 ‘사람 스트레스’가 힘들어

 

첫 학생조교를 하게 된 과사무실은 다른 과와 달리 방학에도 많은 교구를 만들어야 하고, 창고정리도 계속해야 하는 바쁜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는 무엇보다 ‘사람 스트레스’였다.

 

“학과장님이 성격이 되게 급하고 아랫사람들을 많이 깔봤어요. 높은 사람한테는 되게 잘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한테는 막 하는 스타일 있잖아요. 학생들 모두 있는 데서 조교에게 큰 소리를 지르고 화내고. 조교님 중에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생긴 분도 있을 정도였고, 그 과 학생들은 덩달아 조교를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같이 일하던 학생조교 한 명은 복학생 남자였는데, 창고정리를 하면 물건을 던지듯이 놔요. 창고도 자기만 알아보게 항상 배열을 바꾸고. ‘여자가 뭘 들겠어? 여자는 힘을 못 쓰지…’ 그런 말을 자주 했어요. 당연히 엄청 무거운 물건도 아니었죠. 자기는 배려한다고 말해도 무시하면서 말하는 거 있잖아요. 왜인지 그 과의 조교들이랑 교수들도 그 사람을 어려워했어요.”

 

현진은 그 공간에 있으면서 때로는 학과장을, 때로는 학생들을, 때로는 복학생 남자 학생조교를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가 늘어갔다. 면전에서 티를 내기보다는 참았다가 친구에게 잠깐씩 털어놓곤 했다. 이러다가 또 멘탈이 상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다른 자리가 났고, 빨리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그 과사무실 일을 그만두고, 스포츠센터로 옮겼다.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

 

지금 스포츠센터는 꽤 좋은 일자리다. 조교 한두 명과 함께 데스크를 지키면서, 운동기구를 정리하고 빌려주는 일을 한다. 여기서도 ‘예의 없는’ 이용자들은 꼭 있다. 공지를 걸어두었는데도 그걸 읽지 않고, 재차 어기고 제멋대로인. 그래도 시험공부도 할 수 있고, 조교님이랑 말도 잘 통하고, 그냥 편하다. 편한 마음과 일터환경 때문에 가끔 스포츠센터에서 운동도 조금씩 해보고 있다.

 

현진이 한 달 동안 일해서 받는 급여는 70만원. 지출은 식비가 제일 많이 나가고, 그 다음이 차비다. 생필품을 사고, 친구들 만날 때 돈을 쓴다. 저금은 한 달에 10만원씩은 꼭 하려고 하지만 못 지킬 때도 있다. 모은 돈으로는? 방학에 사회복지 실습을 해야 하는데, 그 때 내야 할 실습비, 밥값, 차비, 그리고 그 때는 돈을 못 벌 것이기 때문에 생활비로 쓰게 될 것 같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이제 손을 안 벌린다는 것뿐이지. 가족들에게 손 안 벌리고 내가 알아서 해결한다는 게 뿌듯해요. 오랜만에 집에 갈 때는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롤케잌이나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아메리카노를 사 가요. 가족들도 내가 돈을 버는 걸 말리거나 그러지 않고 열심히 하라고 하죠. 같이 뿌듯해하는 것 같아요.”

 

▶ 현진이 현재스포츠센터에서 일하며 받는 급여는 월 70만원이다. ⓒ촬영: 윤미희 
 

현진은 지금 고모네 집에서 거주하고 있다. 작년 9월, 학생조교를 하게 된 후 오전 9시 출근에 맞춰 은평에서 안양까지 오가는 생활이 힘겨울 무렵, 자취를 고민하던 현진에게 고모와 고모부는 함께 살자고 말해주었다. 고모부는 여자 혼자 살면 위험하다는 이유였고, 고모는 자취하면 돈을 못 모으겠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중1, 초3인 남자 사촌들은 고모부처럼 ‘여자가 늦게 다닌다고’ 걱정하며 현진에게 자주 전화나 문자로 확인을 하지만, 고모는 귀가 시간 같은 걸 편안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반은 눈치보고, 반은 구애 안 받는 모드로 지내고 있다. 고모네 얹혀살기는 아마 졸업 때까지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씩 운신의 폭 넓히기, 세상과 교신을 끄지 않기

 

현진은 “이제는 그래도 일은 못 쉴 거 같다”고 한다. 벌어서 쓰는 돈이 있고, 그걸 그만두면 쓸 돈이 없는 거니까.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 대신 그걸 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거나,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또래의 다른 사람들은 “힘들 때 그걸 어떻게 이겨내고 있나” 궁금하다고도 했다.

 

현진네 과 친구들은 대부분 낮 동안 일을 하다가 학교에 온다. 좀 힘들게 사는 것 같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주간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든지, 낮에 공부하고 밤에 일하든지. 여유를 가질 시간도 없이 평일에는 다 그렇게 보내고, 시험 기간이 되면 더 짬이 없다.

 

“대학생이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 시급은 진짜 늘어야 해요. 최저임금 1만원이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소득 분위로 나오는 국가장학금을 받으려고 해도 80점 이상 학점이 되어야하는데,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고, 그 점수에 못 미치면 안 되니까 스트레스가 크다. 그래도 과 친구들은 시험 예상문제도 서로 알려주고, 필기 정리한 것도, 알바 자리도 공유한다. 단합이 엄청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주간 수업들이 다 끝나고 건물들에 하나씩 불이 꺼질 때쯤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이는 과 친구들이 공유하는 공동의 정서는 확실히 있다.

 

“그런 욕심은 있죠. 사람들 관계, 친구, 그런 거에서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고, 얘는 내 친구로 하고 싶고. 그런데 또 사람을 못 믿고 무서워하는 상태도 있거든요, 제가. 그래서 지금은 친한 친구 몇 명만 있어도 좋은 거다, 그런 거 같아요.”

 

현진은 욕심은 조금 낮추고, 힘든 것은 조금 끌어올리며, 조금씩 조금씩 ‘이 정도로 살아볼까’ 하는 자기만의 폭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제 또래들이, 일하는 또래들이 많이 부정적인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부정적이면 더 그렇게 되고, 그럼 점점 힘들어지는데… 괜찮아지겠지, 더 좋은 일 있겠지, 하면 그 상황을 계속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딱 거기에서 일단 끝내는 거. 그게 좋더라구요. 아무리 힘들어도 덜 스트레스를 받는 방법을 찾는 거. 너무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도… 예전에는 많이 우울해졌는데, 지금은 일단 내가 힘들어지면서까지 신경 쓰지는 말아야지, 생각해요.”

 

이 정도까지야, 라고 자기 울타리를 튼튼히 하면서도 현진은 계속 그 너머와의 교신도 끄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좌절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지만, 불신은 그래도 쌍둥이마냥 신뢰를 찾아 헤맨다. 세상이, 사람들이 현진이 보내는 신뢰의 생존신호만큼이나 신뢰를 가지고 응답했으면 좋겠다.

 

“동네에서 하는 활동(청소년사업 기획단), 하고 싶어요. 바쁘게 산다고… 일 년이나 활동을 쉬어서, 이제 기회가 없는 건 아니죠? 일주일에 한번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끈을 놓지 않고, 한 달에 한번은 꼭 할 수 있을 걸요. 활동할 수 있는 동네 일, 그런 게 있으면 꼬옥 알려주세요.” -인터뷰: 오매, 조미리, 윤미희 정리: 오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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